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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니깐 청춘이다.

by 행복해지리



무료했다.

눈뜨면 출근하고, 퇴근하면 밥 하는 반복된 생활에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어른들은 이런 걸 배부른 소리라 한다.

먹고 살만 하고, 가족들도 모두 건강하고, 큰 탈 없이 사는 것을 무료하다니.

복에 겨워 투정이 늘어진다고 혼쭐날 일이다.

표면적으로는 분명 그랬다.

속을 들여다봐도 큰 문제가 없는 삶이었다.

탈 없는 삶에 싫증을 느끼는 것이 철이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허나 분명한 건, 나는 그랬다.

반복되는 일상이 답답증이 났다.


캔디처럼 시련을 극복하고 좌절을 딛고 일어서서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삶을 갈망하는 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뭐랄까.

성장 없이 멈춘 듯한 상태가 견디기 힘들었다.

남들처럼 공부해서 대학에 갔고, 임용고시라는 다들 어렵다는 시험을 통과해 교사가 되었다.

교단에 서기만 하면 끝인 줄 알았더니 이후의 삶은 꾀나 험난했으니 교사다워지기까지 꾀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했다.

결혼 후 아이를 낳아서는 처음 가져보는 부모라는 역할을 해내기 위해 온통 에너지를 쏟았다.

몸은 힘들었으나 성장이 있었기에 그 시절은 나름 좋은 추억으로 기억된다.

교사 나이, 부모 나이가 모두 10년이 지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익숙하고 편안한 궤도를 그렸다.

그때부터였다.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두루 업무를 경험해 보고 교사로서 가르치는 것이 능숙해지기 시작하니 학교 생활에 편안함을 느끼기보다는 부족함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자라서 육아 부담이 감소하면서 제법 몸이 편안해지니 홀가분한 마음보다는 오히려 허전했다.

익숙함에서 오는 지루함이 내 삶을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적당히'가 아닌 '충분히'를 추구한다는 것을 그쯤 어렴풋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삶의 매너리즘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건져준 건 다름 아닌 글쓰기였다.



계기는 명확하지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낙서에 가까운 끄적이기를 좋아했기에 글쓰기에 가 닿는 건 우연은 아니었을 거다.

뭐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적당히'에서 벗어나 '충분히' 괜찮아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시작으로 유명무실했던 블로그를 다시 살리기로 했다.

무엇이 되었든 하루에 하나씩 포스팅을 하기 시작했다.

글을 발행한다고 내게 주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신기하게도 한편을 완성하는 것 만으로 뿌듯하고 새삼 성취감이 생겨났다.

덕분에 일상에 온기가 돌았다.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는데 누군가 도움이 되었다는 댓글이 달리는 날이면 상금이라도 받은 듯 기뻤다.

공감수가 늘어나고 이웃이 늘어나는 재미에 빠져 매일 포스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사실 그간 느낀 일상의 지루함은 저녁 시간을 온건히 집공부하는 남매에게 할애한 탓이 크다.

초등 남매가 공부하고 있으면 나는 그 곁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잔업을 했었다.

그저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함께해 주자는 마음이었다.

저녁을 늘 이렇게 보내니 아이들에게는 도움 되는 일이나 난 도통 휴식을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남들처럼 좋아하는 드라마를 볼 수도 없고 산책을 하거나 또는 저녁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몸이 피곤해도 쉬지 않고 의무감으로 그저 묵묵히 아이들 곁을 지킬 뿐이었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니 불만스럽던 하루가 온통 글감이 되어주었다.

지루하다고 치부하던 시간들은 글의 소재가 되어주니 새삼 고맙고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반복이 따분하다 치부하던 날들은 글 속에서 루틴이 탄탄한 번듯한 생활로 변신했다.

그저 해야 한다는 당위성만 생각하며 묵묵히 해오던 공부를 글로 기록하고 나니 그 안에 성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루 안에 갇혀 아등바등하던 남매와의 학습은 '집공부 전문가'라는 내 브랜드로 키워나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얼마 전 누군가 내게 물었다.

"직업이 있는데 왜 블로그 하고 브런치 글 쓰며 사서 고생하냐"라고

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훗날 다시 내게 묻게 할 것이다.

"어떻게 해낸 거야? "라고

'처음에는 왜 하냐고 물을 것이고, 나중에는 어떻게 해낸 거냐고 물을 것이다. '

헤밍웨이 말이다.


글을 쓰며 나는 다시 성장을 꿈꾼다.

미약한 수준이지만 글쓰기가 모두 내 커리어를 쌓는 과정이라 여기며 늘 즐겁게 임한다.

현재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요즘은 반복되는 하루여도 그 안에 행복을 느낀다.

누군가는 아프니깐 청춘이라 했고, 또 다른 이는 아프면 환자라고 농을 던지더라.

나는 글을 쓰며 지금을 산다.

그리고 미래를 꿈꾼다.

그러니 글 쓰는 지금이 내게는 청춘이다.




▼ 하루하루 써내려간 제 청춘은 여기 ↓ 담겨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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