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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Feb 19. 2024

자존감을 키우려면 ○○하라!

적당히 말고 충분히


5학년을 마치던 날, 큰 아이가 학급 문집을 가져왔습니다.

2학기 동안 틈틈히 쓰고 다듬기를 반복하더니 번듯하게 문집으로 만들어오니 기특하더군요.

아들이 쓴 글부터 찾아 읽어봅니다.

이미 모니터로 본 적는 구면인데도 종이로 만나 글에 무게감이 더해져 새삼스레 멋있네요.

재치있는 글이 기특하고 대견해서 한껏 칭찬하고 나서야 문집의 나머지 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후루룩 넘기며 아는 이름도 찾아보고 글도 읽어봅니다.

아이들 생각이 재미있어서 제법 진지하게 읽었답니다.

문집의 마지막은  <우리 반 앙케이트> ♪♩ 별별 시상식 ♬♪

우리 반에서 제일 웃긴 사람, 제일 오래 살 것 같은 사람, 무인도에 가더라도 혼자 잘 살 것 같은 사람 등등 재미있는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앙케이트는 결과와 함께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도 적혀있었는데 다양한 설문 중 제 눈에 가장 들어온 건 바로 '커서 돈을 많이 벌 것 같은 사람은?'이라는 항목이었답니다.  


'커서 돈을 많이 벌 것 같은 사람은?'라는 질문에 대한 아이들 생각


처음에는 우리 아들 이름도 있는가 싶어서 자세히 봤는데 나중에는 아이들의 응답 이유에 놀랐습니다.

서로를 평가하는 기준에 공부가 꾀나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새삼스럽지는 않았어요.

이미 고등학교에서 오랜 기간 봐왔던 일입니다.

모범학생을 추천하라고 하면 그 이유에 '공부를 잘해서'라고 쓰는 아이들입니다.

학기말에 서로에게 남기를 롤링페이퍼를 쓸 때에도 '공부 잘하는 누구야'라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듯 사람에 대한 평가에 느닷없이 공부를 들이대는 것을 수차례 겪어왔음에도 새삼 놀란 것은 초등은 상대평가 시험이 없음에도 똑같구나 싶어서 였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교실 속 수업 시간을 상상해 봅니다.


대다수의 아이들이 싫어하고 어렵다고 소문난 5학년 수학 시간입니다.


예습을 해온 준영이는 어렵지 않게 선생님의 설명을 이해하고 주어진 시간 내에 수학익힘책을 풀어냈습니다.

원래 수학을 좋아하는 석영이는 자신감 있게 선생님 질문에 대답을 하며 수업에 적극 참여합니다.

처음 듣는 내용이라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평소 학습에 적극적인 아영이는 모르는 것을 질문해 가며 주어진 과제를 해냅니다.


반면 이미 누적된 학습결손이 있었던 민아는 선생님 말씀이 외계어로 들리다 못해 졸리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자기도 모르게 꾸벅꾸벅 졸았으나 이제는 포기하고 엎드려 잠을 청합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라는 선생님 말씀이 자주 반복됩니다.

그러는 사이 주변 친구들도 민아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형성됩니다.


채경이는 수학이 너무 어렵습니다.

수업을 들어도 모르겠어서 학원도 다녀봤지만 도통 늘지 않습니다.

수학이라는 과목에 대해 자신감이 자꾸 낮아지니 수업 시간이 온통 가시방석입니다.

요즘은 수학 시간에도 모둠활동이 늘어나서 모둠원과 함께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모둠에서 내 역할을 해내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합니다.

활동 내내 친구들에게 수학 못하는 것을 들킬까 안절부절입니다.

수학을 잘해서 매번 모둠활동을 이끄는 석영이가 부럽고 질투 납니다.



초등교사가 아니기에 상상 속의 상황이지만, 고등학교 교실과 난이도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타고난 기질과 탤런트는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닙니다.

인생도 절대 성적대로 나뉘지 않습니다.

공부 잘했다고 성인이 된 이후의 삶이 평탄하거나 보장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런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적당히 말고 '충분히' 해내는 일은 중요합니다.

매우.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그러기에 더욱 공부를 적당히가 아닌 충분히 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 논리는 상당히 고리타분하고 고릿적 명제라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미래에 살지 않고 현재에 삽니다.

현재의 학교는 미래형이 아니라 여적 예전 그 수준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과 교육과정이 적용되는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의 교실은 부모 세대가 다녔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대단히 크고 거대한 논쟁 말고 내 아이가 매일 생활하는 현실의 교실을 즉시해야 합니다.

교육은 바뀌어야 하고,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내 아이는 현실의 교실에서 생활합니다.  

그리고 그곳의 본질은 배움입니다.  

5, 6학년군을 기준으로 40분씩 하루 5-6교시 동안 아이들은 난해하고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학습해야 합니다.

부족한 실력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수업 내내 주눅 들고 작아지기 일쑤입니다.

그런 아이들도 함께 가려고, 격려하고 북돋아주려고, 더 친절하게 알려주려고, 한 명씩 다가와 도와주시는 선생님의 행동이 누적되면 그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못하는 아이, 부족한 아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는 인식이 자랍니다.

수업 시간마다 하고 싶지만 해내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면, 작은 실패 경험이 누적되면서 아이는 학습된 무기력감에 빠져듭니다.


앞으로 세상은 바뀐다고 합니다.

바뀔겁니다.

공부는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니며 공부 잘하는 것이 쓸모없는 세상이 될 가능성도 큽니다.

그러므로 내 아이는 굳이 공부할 필요가 없거나 또는 억지로 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부모님이 계십니다.

아이들을 위 필요한 배려이고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미래가 아닌 현실의 교실을 삽니다.

매일 배우고 매순간 평가받는 학교를 다닙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을 단단히 살아내는 아이를 위해 적당히가 아닌 충분히 공부를 시킵니다.


공부를 못하지만 타고난 자기 효능감과 단단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씩씩하고 밝게 생활하는 아이들이 분명 있습니다.

허나 많지 않습니다.

저는 매년 백여명의 학생들과 수업하는데 한해에 한두 명 있을까 말까, 또는 없기도 합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매일 학습과 평가에 노출된 교에서 자존심 혹은 자기효능감에 영향을 받으며 자랍니다.

그래서 저는 적당히가 아닌 충분한 공부로 아이가 현실의 교실에서 잘 지내기를 바라는 겁니딘.


1등하는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수업 시간에 충분히 이해하고, 선생님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친구들로부터 잘하는 아이라는 평가를 받는 아이는 학교 생활을 해낼 힘이 있습니다.

반대로 수업 시간에 다뤄지는 모든 내용이 어렵고 힘들며, 선생님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고, 친구에게도 못하는 아이로 인식된 아이에게 학교는 가기 싫고 재미없는 곳입니다.

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 교사와 친구들로부터 받는 낮은 평가, 이미 잃어버린 학습에 대한 흥미는 무한한 부정적 피드백을 통해 아이를  지속적으로 괴롭힐 겁니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공간이 학교입니다.

부모보다는 또래 집단에서의 상호작용에 훨씬 많은 시간 노출됩니다.

가족이라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 된 울타리를 벗어나 필요와 조건, 혹은 질투와 견제 등에 노출된 학급이라는 사회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이상적인 모습의 교실 말고 내 아이가 겪고 있는 현실의 교실을 봅니다.

저는 그 안에서 내 아이가 괜찮은 존재감을 갖췄으면 합니다.

1등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이기라는 뜻은 더욱 아닙니다.

대회에서 상을 받아오거나 남보다 뛰어나서 돋보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저 아이가 매일, 상당 시간을 살아내는 공간과 사회에서 충분히 해내고 적당히 인정받으며 생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욕심냅니다.

학교 생활에서,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아이이었으면 합니다.  

(부모의 절대적이고 무한한 지지와 믿음은 당연한 전제이며 나아가) 학교와 또래집단으로부터 반복적인 긍정의 피드백을 받은 덕분에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아존중감이 커나가길 희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적당히 말고 충분히 학습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 아이의 학습정서를 지키고, 교실에서 자신감 있게 지낼 수 있는 힘이라 여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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