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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해지리 Mar 11. 2024

품 안의 자식이 불안하다


새 학년 첫날, 일찌감치 학급회장선거 공고를 했다.

입후보할 사람들은 미리 담임에게 말하고 자기소개서와 공약서 양식을 받아가라고 전달한다.

그러면 미리 마음먹고 온 아이들과 함께 아직 고민 중인 아이들도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담임 곁에 모여든다.

석희(가명)는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선거에 나가겠다는 말은 없이 그저 주변을 맴돌았다.

물려있던 아이들이 좀 흩어지고 나서 물었다.


석희도 이번에 선거 나올 거야?
아직 엄마한테 못 물어봤어요.


당시에는 아이 대답에 별다름을 느끼지 못했다.  

의문을 품기 시작한 건 한쯤 지나서 부터였을 거다.


외동인 석희는 엄마와 친구 같은 사이였다.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건너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금세 통화가 이루어져 둘의 대화가 시작되곤 했다.

석희 어머님의 목소리는 보통보다 훨씬 낭랑하고 톤이 높아서 굳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을 수 있을 만큼 또릿하게 전해졌다.

종례를 마치고 청소 지도를 하고 있거나 아이들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교실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 모녀의 대화가 들렸을 정도.

그렇게 몇번의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레 그들 모녀의 대화에서 특이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나 오늘 학원 가기 전에 친구들이랑 마라탕 먹어도 돼?
안돼. 그런 자극적인 음식은 안돼. 차라리 집으로 와. 엄마가 친구들 저녁까지 다 챙겨줄게.



엄마, 나 이제 선택과목 결정해야 하는데 뭐 할까?
그거 엄마가 좀 정해놨는데 이따가 집에 오면 알려줄게.



엄마, 점심시간에 과학책 읽는 활동이 있는데 이거 신청할까 말까?
신청하는 게 좋겠다. 책 읽고 점심 먹으러 가면 시간 활용에도 좋겠네.



석희는 모든 결정은 본인 선에서 끝내지 못하고 엄마를 통했다.  

보통의 고등학교 1학년이면 학교 생활에 대한 결정은 대부분은 혼자 한다.  

부모님과 의논할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언을 얻는 정도이고 주도권은 스스로 쥐고 있어야 맞다.

하지만 석희는 자기 뜻대로 정하는 것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작은 문제도 엄마를 통해서 결정을 했기 때문에 엄마와 통화가 되지 않으면 아이는 꾀나 불안해 했다.

석희와 만났던 해에는 아이들의 학습권을 위해 등교하자마자 스마트폰을 모두 걷었다.

그랬다가 종례 시간에 돌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일과 중에는 전화를 쓸 수 없었다.

석희는 일과 중에 전화를 쓰게 해달라고 찾아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이유는 이런 식이다.


면접을 본 두 개의 동아리에서 모두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점심시간까지 결정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고 싶다.  

국어 수업 시간에 진로독서를 위한 책을 선정해야 하는데 어제 결정하는 것을 깜박했다. 엄마와 통화를 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여러 번 지켜보다가 어느 날 넌지시 물었다.

석희야! 그런 건 스스로 선택해도 돼!
못 고르는 거야~ 아니면 꼭 엄마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야?



질문을 받은 아이는 한동안 얼어있었다.

당황한 듯도 했고 생각하는 듯도 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지나서야 대답을 이었다.

허락받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혼자 정할 수 없어요.
 혼자 해본 적이 없어요. 
바로 대답을 못한 건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질문을 들으니 당황스러웠어요.
지금까지 뭐든 엄마가 정해주셨거든요.
그게 맞는 길이니깐요.  






그날의 짧은 대화가 아이를 혼란스럽게 했던 모양이다.

며칠 후 종례가 끝나도 집에 가지 않고 교실에 남은 석희를 보았다.

할 말이 있어 보였지만 다가오지 않아서 일부러 일하는 척 기다렸다.

집에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다가와 말을 하지도 않은 채 머뭇거리기는 아이를 기다리기를 십여분,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걸었다.  

석희야, 무슨 일 있어?



머릿속이 복잡해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정리가 안돼서 머뭇거리고 있었단다.  

어렵게 이어 나간 이야기는 지난번 내 질문을 많이 생각해 봤다는 것이었다.

뭐든 엄마가 정해주는 것에 따라 살아오는 것에 문제 의식이 없었는데 질문을 받고 나서 평소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석희.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책 선정 같은 작은 것 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매번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답을 구하는 자신이 뭔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속상하다는 것이다.

이것밖에 안되나 싶어 우울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 자존감이 떨어진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그간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 엄마에게 미루는 것이 더 맘이 편했던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정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지 않고 불안하다고도 했다.

이것 때문에 속앓이를 하느라 요 며칠 집에서 학교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고 아이.

그래서였나 보다.

석희 어머님이 상의하실 일이 있다 방문 상담을 요청하신 게 오전이었고, 다음날 약속을 잡아놓은 터였다.

갑작스럽게 말수가 적어진 딸아이가 걱정돼서 오시는 거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석희와의 대화를 꾀 오랜 시간 이어졌다.

어머님과 석희 사이가 돈독한 것은 걱정할 일이 아니라 아주 감사할 일이라고 안심시켰다.

귀한 딸이 마음 다치는 일이 없도록, 기왕이면 편한 선택을 하도록, 어렵지 않은 쉬운 길을 가도록 고르고 재고 고민해서 지금껏 결정해 주던 것이라고 그간의 과정이 나쁜 의도는 아님을 알려줬다.

다만 석희 자신이 성장하는 만큼 스스로의 삶에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껏 엄마의 결정과 조언으로 살아왔다면 그건 혹시 엄마의 삶인지, 석희의 삶인지 구분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조언을 전했다.

다행히 석희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부모에 대한 원망이나 불평보다는 스스로 변해야 겠다는 긍정의 의지를 보여줬다.


다음날 어머님을 뵈었다.

다행히 전날 석희와 많은 이야기를 하신 후였다.

아직도 어린 아이 같은 생각에 스스로 선택하게 두지 않고 매사를 정해주던 것이 이렇게 길어졌다고 하시면서도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편한 길만 가도록 관여하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며 힘들어하셨다.

부모이시니 조언하고 같이 의논해 주시면 석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다만 지금이라도 최종 결정은 석희가 하도록 연습시켜야 고등학교 졸업하고 정말 성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을 때 석희가 나이에 맞는 준비가 될 것 같다고 의견을 나누고 그날 헤어졌었다.


이후 아이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습관을 없앴다.

그렇다고 모녀의 사이가 틀어지거나 소홀해지지는 않았다.

석희는 결정이 어려울 때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조언을 얻었고, 고민이 보통보다 길기는 했지만 스스로 정하려고 노력했다.

결정을 후회하는 일도 있었고, 결정 자체가 힘들어서 동동거리는 일도 있었다.

이미 초등학교부터 했어야 했던 당연한 성장통을 뒤늦게 경험하면서 요란한 고등학교 1학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원래 사람은 이렇게 성장하는 거다.

성인이 되어 더 큰 결정과 고민에 노출되기 전에 지금이라도 시행착오를 겪는 것이 맞다.

그렇게 다독이며 그 해를 보냈었다.

 





해가 바뀔 때마다 스스로 무언가 못하는 아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늘 부모님의 픽드롭으로만 움직여서 대중교통을 이용할 줄 모르는 아이.

본인 손으로 식사 준비나 과일 등을 챙겨본 적이 없는 아이

감기로 인해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혼자 가본 적이 없어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

학기 초 간단한 기초조사서를 나눠주면 집주소를 몰라 전화해서 물어보거나 아예 집에 가져가서 부모님께 써달라고 하겠다는 아이들도 제법 있다.


모두 고등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이다.


영아 시기 모든 것을 주 양육자가 챙겨주고 도와준다.

그러다 점차 성장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해보겠다고 강력한 의지를 표한다.

직접 만져보고, 입에 넣어도 보고, 온 신체를 움직여가며 탐색한다.

이 시기 부모도 아이의 성장을 돕고자 다양한 체험을 시켜주 노력한다.

그러나 아이가 학령기에 접어들면서 부모는 허용을 폭을 대폭 좁히는 모양새다.

기왕이면 쉬운 길을 택하도록,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남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모든 걸 정해놓은 길로 아이들을 이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을 행하다가 실패하거나, 또는 시간 낭비를 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으로 우회해보는 등의 경험이 결여된 채 크고 있다. 

석희도 그런 맥락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의도는 선할지 모르지만 옳은 방법은 아니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고 했다.

아직은 미숙해서 다소 여러운 것을, 잘못된 것을, 지 않은 것을 선택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불편을 겪는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의레 겪어야할 과정이다.

여러번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점차 나에게 맞는 결정을 찾는 법을 배울 것이고, 혹시 실수를 했더라도 털고 일어나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반면 모든 걸 부모 선에서 걸러내고, 막아내고, 선택해주게 되면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진짜 성인일 수 없다.  

어설픈 선택으로 인해 겪을 좌절감을 느끼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 내 품을 벗어나서 겪을 실패를 막아주는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하지 말이야 한다.

아이의 성장을 저해하는 일이다.

석희처럼 뒤늦게 부모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선택해야할 순간에 더 큰 불안 초조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한번씩 돌아보자.

혹시 내 아이를 품 안에 품고 뭐든 쉽고 편하고 안전한 길로 이끌고 있는 건 아닐까?

석희 같은 아이로 키우는 건 아닐까?

아이의 성장을 저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해봤으면 한다.

품안에 자식으로 키우는 일은 결코 아이를 돕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아이 성장에 방해꾼이다.

자기 삶의 주도권을 부모에게 빳기고 끌려가는 아이를 만드는 일이다.

품 안의 아이를 놓아주고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이 진정한 부모의 몫일 것이다.

그게 단단한 아이를 기르는 방법일것이고.

인생에 쓴맛도 있다는 걸 아이들도 경험하며 자라야 한다.

그래야 단단하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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