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니핑크(1995)
언니, 최근 들어 가장 많이 한 생각을 영화 주인공이 말하면 무슨 생각이 들 것 같아?
글쎄. 내가 영화 하나는 잘 골랐네. 근데 뭐 영화 주인공이 내 앞길까지 이야기해준다? 그럼 신내림이라고 생각할 거 같은데.
어느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냐고 묻기에 영화 제목을 말했더니, '제리야 WE LOVE YOU'라는 답장이 돌아와서 한참 웃었다.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니까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된 한 문장이 남았다.
나 자신조차도 날 사랑하는 건 힘들 것 같아요.
파니핑크는 지지직거리는 화면 속에서 관객들을 향해서 '나는 나를 사랑하기 어려워요'라고 말한다.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나 조차도 나를 사랑할 수 없어요. 다 맺지 못한 문장 끝에는 그런 울먹거림이 들렸다.
누군가의 인생에 내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파니 핑크의 말은 언뜻 들으면 별 거 아닌 소박한 소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엄청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는 남이 저를 사랑하고, 또 나도 기꺼이 그에 대해 응답할 수 있는 완전한 형태의 사랑을 하고 싶어요' 비꼬아 듣는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가능하기는 해요? 완벽하게 평등하고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형태의 사랑이?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랑이 가능은 하냐고요. 내가 하는 건 쉽지.
그러게, 남을 사랑하는 건 그렇게 쉬우면서 날 사랑하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 결국 최종적인 고민은 이거다. 날 어떻게 사랑하느냐. 위로가 되는 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쯤인 것 같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에세이는 매년 반복해서 쏟아진다. 사람들이 계속 찾으니까. 에세이가 읽고 싶지는 않았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결국 해내야 하는 것은 나니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작년에는 나랑 친해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라기엔 거창하지만 그래도 제목이 화려해서 나쁠 건 없으니 멋대로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미뤄놓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기록은 사진이든 글이든 어떤 것이든 좋다.
그렇게 첫 번째로 세운 목표는 운동이었다. 해보지 않은 운동하기.
- 새로 등록한 주짓수는 4월부터 12월까지 했다. 체력 소진과 함께 맡은 일이 너무 바빠져서 좀 쉬고 싶은 마음에 1월은 잠시 쉬는 중.
두 번째는 단편 소설 5개 마감하기
- 러프 원고로 3개는 마감했다. 2개는... 중반까지만 썼고 그 후에는 길을 잃었다. 올해 이야기를 더 보태주려고 한다.
세 번째는 찍은 필름 엽서로 현상하기
- 엽서로 제작해서 방에도 붙이고 친구들한테도 나눠줬다. 판매도 했다.
네 번째는 일본어 공부하기
- 2달 반 동안 일본어 공부를 했다. 12월에 jlpt3급을 봤고... 결과는 아직 안 나왔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7월에 2급 시험을 보려 한다.
올해는 따로 목표를 세우진 않았다. 저 목표들이 마음에 들어서 작년의 프로젝트는 연장선을 걷게 됐다.
마지막 목표는 뭐냐면 사랑이다.
늘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말은 너무 간지럽다.
사랑이 체질이 아닌 거 같아. 뭐 그런 소리도 했다. 왜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살아가지 못하게 만들어진 걸까. 아니 안 그런 사람도 있나. 최근 몇 년간 나의 목표는 사랑이었는데.
대상은 다 달랐다. 애인일 때도 있었고, 가족일 때도 있었고, 친구일 때도 있었다. 매번 성공하지는 않았다. 아니 사실 얼마 동안은 실패만 했다. 사랑인 줄 알고 마음을 열었더니 내가 빈 껍데기였고, 사랑인 줄 알고 안겼더니 품이 식어있었다.
몇몇과 이런 기현상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은 매번 같았다. 우리는 모르는 결론에 대해서는 이유를 붙일 수 없다. 영화는 결말이 있어서 어떻게든 그랬대요, 하고 끝을 맺어야 하지만 내 삶은 그렇지 않으니까 결말이 없다는 것이 또 우리의 결론이었다. 혹은 아직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못 만난 게 아닐까. 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다. 삶은 너무 무겁고 너무 가벼워서 가끔은 상처가 된다.
Keiner liebt mich?
who cares? If i d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