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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풀 Feb 26. 2022

최종의 최종은 최종이 아니다

비정기적 우편함

1. 나는 지난해 몇 번의 고백을 했을까. 너의 몫만 스무 번, 아니 마흔 번, 아니 예순... 매 순간에 마지막으로 사랑하고 싶다고 외치던 갈라진 얼굴이 애달프다.


2. 길을 잘못 들어서 한참을 모르는 길을 걸었고 우리 이러다가 북한까지 가겠다. 그러게.


그런 시시한 말이 오고 갔다. 왜 여태 안 하던 이야기를 갑자기 했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때는 그러고 싶다고 생각했어. 알잖아 내 변덕이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너는 벌게진 눈으로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지. 춥지 않은 겨울이었는데 마주 잡은 손은 정신없이 떨렸고 우리는 멀어지는 막차의 뒤꽁무니를 보다가 그냥 새벽에 남기로 했다.


너는 울음을 참느라 쉬어버린 목소리로 네가 울지 않으니까 내가 대신 울고 싶은데. 네가 울지 않는데 내가 우는 것이 이상해, 그랬잖아.

그건 내가 들어본 위로 중에 제일 이상한 위로였는데, 지금도 가끔 생각이 나. 그러게 눈물이 마르나 봐. 아니면 평생 흘리기로 정해진 눈물 양을 너무 빨리 써버린 걸까? 가끔은 내 마음의 바닥이 궁금했는데,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란 게 한계가 있는지 늘 궁금했거든. 매년 이렇게 조금씩 말라 가다 보면 어느새 쩍 갈라진 바닥 같은 것과 마주할 때가 오지 않을까.


내 마음의 바닥은 그렇게 흉한 모습은 아니었으면 하지만, 바닥이 아름답기는 힘들 것 같지. 그런 날에는 내가 사람을 사랑하지 않게 될까? 그런 날이 오면 네가 뭐라고 할지 궁금해. 그게 내 마음의 최종 형태임을 누구보다 안타까워할 사람이 너인 것을 알기에. 내가 가장 사랑이 넘칠 때 만났던 네가 그날의 나를 보면 또 오늘처럼 와락 울어버릴까... 눈을 보고 싶다. 가장 많은 것을 말하는 네 눈을...


3. 너를 이 이상은 사랑하지 않을게. 마음에 선을 그어놓고 벌어지는 일들은 온통 배신자 같은 일들이야. 나의 최종 방어선은 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 시기를 정하지 못하니까.

나는 기억력이 좋지 못해. 너의 부분 부분을 기억하지 못할 거야. 너의 생일도, 우리가 만난 날 같은 것도 특별해질 수 없을 거야. 그렇게 정해놓은 선을 내 발로 넘어서 너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알아버리고 외워버린 것을 깨닫고 나서야 나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냥 몽땅 다 리셋.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데. 나는 우리 동네에 네가 발을 들인 날과 내 방문을 몇 번이고 열던 날을 지울 수 있다면 뭐든 할 것이 분명해. 연아 내가 밤새 울었던 것은 네가 대신 잊어버려줄래.


4. 사실은 나는 한 번도 걔가 좋았던 적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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