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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이는 잘 지내나요

비정기적 우편함

by 유수풀

1. 요새는 20대 초반이나 된 것처럼 철없고 이상하게 군다. 술을 먹고 대뜸 전화하면 안 되는 사람에게 전화하기도 하고, 냅다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우는소리도 하고, 잔소리를 들으면 화를 내고. 바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소리를 지르고. 발악인가? 그런 것 같다. 무엇을 위한 발악인가? 그건 모르겠다.


그러다가 청계천에 빠졌다. 말 그대로 그냥 천에 빠진 거다. 아 씨발 존나 차갑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놀라서 쉽게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영하 11도에 청계천에 빠진 여자를 봤으면 당신들은 뭐라고 할래요.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청계천은 얕아서 그깟 다리 좀 빠졌다고 죽진 않을 테지만 겨울이라 또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형처럼 부푼 감정이 언젠가는 터질 줄 알았지만 터진 모양이 너무 짜쳐서 눈물도 안 나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처벅처벅 소리를 내면서 물 묻은 운동화가 나 대신 울었다. 길에 젖은 발자국이 찍히는 것을 보다가 택시를 탔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현이랑 통화를 하면서 이 상황에 대해서 지겹도록 얘기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감정을 피했고, 아현이는 웃음을 참으면서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허벅지에 든 멍은 아프게 부풀었다. 아직 푸른 기가 올라오지도 않은 멍이 부서지고 나면 거짓말처럼 다 나아지면 좋겠다.


1-1. 경은이를 만나서 청계천에 빠진 이야기를 했다. 나 술 먹고 다쳐본 적도 없는데. 물건 잃어버린 적도 없어. 내가 내 것들을 준 적은 있어도. 근데 아무 이유 없이 다쳤어, 그리고 물에도 빠지고. 청계천 이야기를 듣고 조금 웃던 경은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술 먹을 때도 어쨌든 자제력을 잃지는 못하는 편이구나. 여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니까, 그건 조금 슬프다. 그런 말을 했다.


2. 사랑하면 안 된다고 해서 네 말을 들을 것 같았으면 나는 지금 몇 번의 이별을 했겠지. 나는 아직도 너랑 헤어진 적이 없다.


3. 선영이는 잘 지내느냐고 안부를 궁금해하던 가수는 더는 노래를 내지 않는다. 나는 그 사람의 노래와 함께 걷던 상수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여유 부리며 걷다가 차가 끊겼다. 다음 정류장까지 미친 듯이 뛰어서 한참을 돌아가는 심야버스를 타고 숨을 고르던 때도 그 사람은 끊어질 듯 담담하게 노래를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로 위로를 받던 때가 있었다.


4. 아침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없는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억지로 함께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지는 사람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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