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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풀 Feb 07. 2022

선영이는 잘 지내나요

비정기적 우편함

1. 요새는 20대 초반이나 된 것처럼 철없고 이상하게 군다. 술을 먹고 대뜸 전화하면 안 되는 사람에게 전화하기도 하고, 냅다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우는소리도 하고, 잔소리를 들으면 화를 내고. 바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소리를 지르고. 발악인가? 그런 것 같다. 무엇을 위한 발악인가? 그건 모르겠다.


그러다가 청계천에 빠졌다. 말 그대로 그냥 천에 빠진 거다. 아 씨발 존나 차갑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놀라서 쉽게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영하 11도에 청계천에 빠진 여자를 봤으면 당신들은 뭐라고 할래요.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청계천은 얕아서 그깟 다리 좀 빠졌다고 죽진 않을 테지만 겨울이라 또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형처럼 부푼 감정이 언젠가는 터질 줄 알았지만 터진 모양이 너무 짜쳐서 눈물도 안 나왔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처벅처벅 소리를 내면서 물 묻은 운동화가 나 대신 울었다. 길에 젖은 발자국이 찍히는 것을 보다가 택시를 탔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현이랑 통화를 하면서 이 상황에 대해서 지겹도록 얘기했다.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감정을 피했고, 아현이는 웃음을 참으면서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허벅지에 든 멍은 아프게 부풀었다. 아직 푸른 기가 올라오지도 않은 멍이 부서지고 나면 거짓말처럼 다 나아지면 좋겠다.


1-1. 경은이를 만나서 청계천에 빠진 이야기를 했다.   먹고 다쳐본 적도 없는데. 물건 잃어버린 적도 없어. 내가  것들을  적은 있어도. 근데 아무 이유 없이 다쳤어, 그리고 물에도 빠지고. 청계천 이야기를 듣고 조금 웃던 경은이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먹을 때도 어쨌든 자제력을 잃지는 못하는 편이구나. 여태  번도 그런 적이 없다니까, 그건 조금 슬프다. 그런 말을 했다.


2. 사랑하면 안 된다고 해서 네 말을 들을 것 같았으면 나는 지금 몇 번의 이별을 했겠지. 나는 아직도 너랑 헤어진 적이 없다.


3. 선영이는 잘 지내느냐고 안부를 궁금해하던 가수는 더는 노래를 내지 않는다. 나는 그 사람의 노래와 함께 걷던 상수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 여유 부리며 걷다가 차가 끊겼다. 다음 정류장까지 미친 듯이 뛰어서 한참을 돌아가는 심야버스를 타고 숨을 고르던 때도 그 사람은 끊어질 듯 담담하게 노래를 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목소리로 위로를 받던 때가 있었다.


4. 아침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없는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억지로 함께 사람이고, 누군가에게는 기다려지는 사람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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