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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풀 May 22. 2022

진짜보다 더 진짜같은 가짜

비정기적 우편함

얼마 전에는 친한 대리님이 살아있는 줄 알고 한동안 물을 줬다는 가짜 화분의 이야기를 해줬다. 영영 자라지 않길래 흙을 드러내 보니 뿌리가 댕겅 잘린 플라스틱이더라고요. 대리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바보 같이 느껴지더라고요. 몇 달을 물을 줬는데 플라스틱이라니까. 곧 비슷한 경험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겹쳤다.


요새는 진짜 같은 가짜가 참 많죠.

그러게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것들이 많아요.


벌과 나비는 얼씬도 않는데 파리가 떡하니 앉아있는 조화를 본 적이 있다. 탐스럽게 꺾어진 꽃잎 끝에는 물방울이 송글 송글 맺혀있었다. 한참을 쳐다보고 나서야 알았다. 꺾일 수 없는 방향으로 목을 뉘인 꽃과 거꾸로 뒤집혔는데도 그대로 달려있는 물방울을 보고도 왜 이상한 것을 못 느꼈는지.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꽃이 있을 리가 없는데.


진짜를 닮게 만들어진 가짜를 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진짜와 유사함의 정도가 존재의 가장 큰 의의라는 게 가장 이상한 점이다. 그러니까 우와 진짜 같다! 가 칭찬이 된다는 점이.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짜들을 보면 경이로울 때가 있다. 수많은 문명이 쌓여 여러 발전이 이루어진 후에 태어난 나는 급기야 진짜로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시공간에서 살고 있다.


가짜가 나쁜 건 아니다. J는 소고기 알레르기가 있다. 굳이 구워 먹는 소고기는 필요 없지만, 미역국을 먹을 때는 꼭 소고기 맛이 필요하단다. 그럴 때면 콩고기 미역국을 먹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진짜로 소고기 맛이 난다. 진짜로 그 맛이 나서 웃겼다. 기술 많이 발전했네. 그렇게 가짜를 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가보지 못한 곳을 정교하게 재현한 미니어처 같은 것들도 재미있고 유쾌한 가짜다.


K에게 묻고 싶어졌다. K는 내가 순서 없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가만 듣다가 물었다.


그러면 진짜가 아니어도 돼?

그렇게 물으면 모르겠다. 상처 주지 않는 가짜, 속이지 않는 가짜라면 괜찮지.

그럼 선한 가짜는 괜찮아?

가짜는 어쨌든 가짠데 선악이 어딨어. 그냥...... 아니 모르겠다 그러게?


K는 잠자코 듣다가 진짜의 절대성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진짜가 불의의 사고로 사라지게 되면 세상에 진짜는 사라지는 걸까. 아니면 가짜 중에 제일 진짜 같은 것이 진짜의 자리를 대체하게 되는 걸까. 그러게 그건 진짜 궁금하다.


이야기의 시작은 그냥 평범한 플라스틱 화분이었는데 진짜와 가짜 사이의 존재의 논쟁으로 번져버렸다. 무거운 주제와 가벼워진 맥주를 짤랑거리면서 K와 손을 잡고 걸었다. 우리는 진짜였으면 좋겠다. 그게 뭐든 전부. 끝내 그 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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