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

여덟 번째 글

by 도유영

침대에서도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폰. 릴스로 한 시간을 꼬박 채우고서야 잠이 든다. 우리는 어디에서든 연결된 듯하지만, 거미줄처럼 얇고 바람만 불어도 끊어질 듯하다.


주차장에 휴대폰을 두고 온 날이 있었다. 불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하루가 가볍고 편했다. 다양하게 쌓여가는 앱의 알림과 빨간 숫자는 눌어붙은 스티커 같다. 떼어내도 흔적이 남고, 열어보면 불필요한 정보로 가득 차 있다. 결국 관계도 이 빨간 숫자들처럼 쌓이고 방치되다가 무심히 사라진다. 사소한 것까지 연결된 세상이 되니 오히려 관계를 대하는 태도는 가벼워졌다.


이 시대의 단면일까?


기술은 우리를 촘촘하게 엮고 있지만 정작 진짜 대화는 줄었고, 혼자 있을 때 단절의 고독은 더 깊어졌다. 단톡방의 알림은 잦고, 읽음 표시만 가득한 채 아무도 대화를 이어가지 않는다. 물리적 거리는 줄었지만, 심리적 거리는 점점 멀어지는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모두가 연결의 환상에 빠져 있지만, 진짜 소통은 단절된 채 헤매고 있다.


'굳이 만나야 하나?'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방치된 관계는 다시 이어지기 여간 쉽지 않다. 이런 단절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새로운 방식의 관계를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주식 시장에서 "개미 털기"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투자자들이 큰손들에 의해 휘둘리다가 결국 손해 보고 떠나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요즘 관계도 개미 털기 같지 않나. 우리는 서로 신호를 주고받다가도 한순간 툭 끊긴다. 친했던 사이조차 가벼운 무관심에 밀려나고, 남은 자리엔 '그렇게 끝난 거야?'라는 허탈함만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절은 항상 상실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단절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연결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과 우연히 이어진 순간, 또는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잃어버린 나를 다시 찾게 되는 경험. 단절은 때로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한동안 멀어졌던 친구와 다시 만난 날,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기도 하는 것처럼.


이래저래 단절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끊어진 자리에는 민들레 홀씨가 자리 잡는다고 믿고 싶지만, 그 자리엔 또 다른 공허함이 자리할지 모른다. 관계는 점점 더 가벼워지고, 감당하기 힘든 연결은 단절을 낳는다.


우리는 그렇게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아무렇게 휘갈겨 놓은 백지 위의 낙서들. 선택의 연속이 난무하는 바다 위에서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채, 안개가 자욱한 머릿속에서 조명이 수없이 번쩍인다. 흑과 백 그사이 어딘가 깜빡이는 빛을 솔직히 마주하는 에세이. 이 글들이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라며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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