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가출

아홉 번째 글

by 도유영

봄이 올 듯하더니 눈이 내린다. 차를 두고 길을 나선다. 오랜만에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서니 길이 낯설다. 새로 이사 온 동네라서 그런 걸까. 길 너머 버스 정류장이 있는 것을 확인하며 신호를 기다린다. 다섯 갈래의 도로가 얽힌 교차로에는 차와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신호등들은 서로 등을 진 채 번갈아 점등된다. 반짝이는 신호를 바라보면 최면에 걸린 듯하다.


목적 없이 살던 때가 있다. 감정들이 파도처럼 밀려들던 시절, 길을 나서는 것은 단순한 놀이이자 모험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뛰어다니던 골목길, 어른들이 바삐 외출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저렇게 어딘가로 향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무작정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지금, 외출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라 계획과 책임 속에서 이루어진다. 해야 할 일들이 빼곡한 일정 속에서, 외출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하나의 의무가 되었다. 일정에 쫓기다 보면 생각할 틈도 없이 손과 발이 기계처럼 움직인다.


신호등이 주황불을 지나 초록불로 점등했다. 다리는 신호에 맞춰 자동으로 움직이며 길을 건넌다. 버스를 타고 회사로 가는 길에 친구에게 무작정 연락했다.


"이번 주말 시간 돼?"



주말 아침. 빼곡한 일정을 벗어나 마포 한강공원으로 가출했다. 한강을 바라보며 고기 굽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친구들과 마주 앉아 하염없이 웃고 떠들었다. 머릿속은 일 생각으로 꽉 막혀 오래된 하수구처럼 답답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거센 물살처럼 밀려와 그 막힌 틈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해는 어느새 아파트 너머로 사라지고 있다.


하늘에 주황불이 켜졌다. 우리는 말없이 쳐다보며, 잔잔한 숨소리만 흐를 뿐이다. 오늘의 가출을 응원하듯, 이 순간은 뭐든 해도 되는 순간이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작은 울림이 마음 한편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간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때때로 이런 순간을 맞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책임을 내려놓고 잘 도망쳐야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성장한다. 가출이라 불러도 좋다. 목적 없는 외출, 의무에서 벗어난 하루. 그것이야말로 어른에게 필요한 숨구멍일지도 모른다.



저한테 30대의 시작은 혼돈으로 가득했습니다. 이 나이가 되면 차든 집이든, 비록 좋지 않더라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물론 모든 걸 물질적인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만족의 기준을 재단하는 건 참 쉽지 않은 일임을 실감합니다.


저는 여전히 새로운 환경을 찾아 떠도는 물고기처럼 살아갑니다. 좀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바다를 헤엄치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도 많습니다. 하지만 아시나요? 물고기도 가끔 바다 위로 튀어 오른다는 사실을요.

그러니 우리도 가끔은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숨을 쉬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아무렇게 휘갈겨 놓은 백지 위의 낙서들. 선택의 연속이 난무하는 바다 위에서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채, 안개가 자욱한 머릿속에서 조명이 수없이 번쩍인다. 흑과 백 그사이 어딘가 깜빡이는 빛을 솔직히 마주하는 에세이. 이 글들이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라며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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