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마라톤 준비 90일, 내가 배운 삶의 자세

by 도유영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는 날이 매일 이어진다. 평소 헬스만 즐겨하던 내가 유산소에 도전해 보는 날이다. 사실 달리기가 처음은 아니다. 작년에 10킬로 마라톤을 겁도 없이 도전했다. 뛰는 법조차 공부하지 않고 참여했다. 어찌어찌 완주는 했지만 달리기에 학을 떼는 계기가 되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러닝화를 신발장 구석에 던져놓았다. 그날의 감각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부서질 듯한 발바닥과 쿵쾅거리는 허벅지, 달아오르는 무릎. 교만한 자에게 주는 형벌 같았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묘하고 웃긴다. 사람은 불닭볶음면 같은 매콤함이 가끔 끌릴 때가 있다. 지난날의 고통을 다 잊었다는 듯 하프마라톤을 신청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준비기간이 고작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 천천히라도 꾸준히 매일 뛰는 게 가장 중요한 준비라는 걸 안다. 하지만 의지하고픈 곳은 이상하게도 러닝 장비다. 러닝화, 러닝 모자, 스마트워치. 조금이라도 더 좋은 뭔가를 나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온몸이 새로운 장비로 반짝인다. 스마트워치의 기록 기능을 켜고 한 발씩 내디뎠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한 걸음 한 걸음이 가볍다. 이것이 새로운 장비가 주는 합법적 도핑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 기분은 5킬로를 넘는 시점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동안의 게으름에 불어나 버린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종아리와 허벅지가 고통스럽게 타올랐다. 그대로 주저앉았다.


며칠 동안 햄스트링과 종아리가 부어올라 거동의 불편함을 느꼈다. 회사에서도 앉았다가 일어날 때면 입에서는 절로 "악!" 외마디 신음이 나온다. 그래도 이미 신청해 버린 하프마라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기본부터 천천히 다지자고 생각했다. 자세, 체중, 팔 스윙, 케이던스. 복합적으로 다양하게 조사하고 공부했다.


하나씩 적용하며 천천히 발을 내디디며 달렸다. 이제는 15킬로도 뛰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몇 가지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처절히 싸워내는 것. 멈추고 싶은 충동을 뒤로하고 작은 보폭이라도 앞으로 내딛는 것. 심장이 터질 것 같고 호흡이 거칠어질 때면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셔서 쉼의 틈을 주는 것. 인생과 참 많은 것이 닮아있다는 것.


런린이의 한강 슬로우 러닝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한다. 부상 없이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며 걸음을 내딛지만, 완주는 아직 멀다. 하루하루 멈추고 싶고, 심장이 터지고, 호흡이 거칠어질 때면 나에게 쉼을 준다.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이미 의미가 있다. 나는 아직 부족하고, 여전히 서툴지만 어제보다 나아지길 바라며 산다. 나에게 살아냄이란 달리기이자 마라톤이다. 나를 나로서 완주하기 위해 오늘도 신발 끈을 꽉 묶고 가벼운 마음으로 밖으로 나선다.


결국 중요한 건, 거창한 준비물이 아니라 옷 한 벌, 신발 하나면 족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요행에 기댔지만, 이제는 내 몸과 마음에 기대어 뛴다. 언젠가 너도 너만의 삶을 완주하길. 각자가 고른 트랙을 따라 달려와, 결승선 위에서 서로의 숨결을 알아보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커버사진 출처_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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