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교체할 시간입니다.

세 번째 글 [감정도 사용기한이 있어요]

by 도유영

“힘들고 슬프면 펑펑 울어.”


한 지인에게 슬프다는 말을 하자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펑펑 운다는 건 쉽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며 시작된 본격적인 인간관계는 슬프고 힘들 때 울 수 없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힘들 땐 안 힘든 척, 슬플 땐 즐거운 척, 늘 반대로 해야만 하는 청개구리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원래 감정 없는 로봇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럼 이런 대답이 나온다. “울어? 나 그런 부품 없는데...”


관계 속에서 감정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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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 이렇게 되기까지 생각해 본다면, 초중고등학생 시절 친한 친구들과 피시방에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일까. 그 결과 게임이라는 좋은 취미를 얻었지만, 사람의 감정에 대면하고 집중해 본 적이 없다. 친한 친구라고 말하지만 취미가 같고 오랜 세월 함께 했다고 정이 두텁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어딜 가든 똑같겠지만, 감정이 솔직하지 않거나 부족하면 관계 자체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감정 경험이 부족한 채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했고 결과는 뻔했다. 같이 게임하는 친구는 금세 뿔뿔이 흩어졌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새로운 관계와 사건 속에서 느끼는 감정은 셀 수 없이 많고, 여러 가지 뒤섞여 있어 지금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었다. 안타깝지만 학창 시절까지의 성장 환경요소는 영향이 크다는 부분을 인정한다. 그래서 뭐라도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책으로 눈이 갔다. 아, 설마 감정을 책으로 배우는 호구가 있을까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것도 나다. 그래도 '공감하는 법, ~말해주는 법 등' 치트키 같은 편법은 꽤 효과 있었고, 상황에 맞는 감정 부품은 괜찮은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미트의 감정구 copy.jpg 오래전 작업물 캐릭터 삽화 중 하나. 감정의 전구를 교체하는 캐릭터다.


겨울이 지나 얼었던 물이 녹아서 흘러가듯 사람들과 지냈다. 여러 상황과 경험 속에서 생긴 감정 부품은 구글 알고리즘처럼 자동으로 카테고리에 맞게 정렬되어 갔다. 예를 들면 '이런 일은 이런 감정으로 대하면 싸울 일도 없구나, 저런 일에는 저런 감정으로 대하면 좋구나.' 식이다. 하지만 그 방법도 금세 들통나고 바닥을 보였다. 단순히 배운 감정과 입에 발린 소리로 대한 친구들도 자연스레 떠났고 게임을 같이 좋아했던 친구들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맞다. 고민 없는 감정에는 깊이가 없음을 알았다. 비슷한 사건에 비슷한 반응을 낸다. 감정 카피라이터 같은 내가 하는 행실이 사짜로 보이거나 이면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턱이 없으니 떠날 수밖에. 부랴부랴 정리해 보려 한들 이미 무의식에는 감정 부품들이 마구잡이로 자리하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한 가지 일에 여러 감정을 느꼈던 반면, 지금은 여러 가지 일을 한 감정으로 느낀다는 게 혼란스럽다. 감정 돌려 막기가 불러온 참사다. 늘 이렇게 하나씩 가르침을 받는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감정은 마음속 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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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아가 감정은 마음속의 전구라는 생각이 든다. 방에 있는 전구처럼 늘 그 자리에 있지만 관심 없이 방치하고 내버려 두면 언젠간 선이 끊어지고 터져서 조각조각난다. 그제야 주워 담으려 해도 쉽지 않다. 불을 켤 때 스위치를 누르면 되듯 감정을 대하는 것에 편법은 없었다. 차오르는 감정을 마주 보는 것을 피하지 않기로 했다. 감당하기 힘들어도 외면하는 것보다 그 감정 그대로 놔두고, 잠시 다른 감정에 집중하고 나서 다시 돌아와도 늦지 않는다 것. 온전히 나를 위한 마음임을 잊지 않아야겠다. 20대의 나에게 돌아간다면 말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감정을 관리하는 나만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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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설프지만 여러 감정이 올라오면 잠깐 멈추고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해소되지 않는다면, 요리나 청소 또는 운동을 하거나 집 주변을 산책하기도 한다. 간단하고 반복적인 움직임이나 창의적인 활동 등으로 소소하게 환기시킨다. 그 과정에서 나름 감정이란 부품의 사용법에 대해 5가지 정도의 기준이 생겼다.


1. 감정은 쓰고 나면 비워놓는 것이 아니라 꼭 다시 채워야 한다.

2. 감정도 설명서가 있고 배워야 한다.

3. 감정을 자주 들여다보고 솔직해야 한다.

4. 감정 역시 부품처럼 무리하면 열이 나고 고장 난다. 쉴 줄 알아야 한다.

5. 감정이 고장 났다면 더 좋은 새 부품으로 업그레이드하면 된다.


이만 오늘은 깜빡이는 내 감전구(?)나 교체해야겠다.

딸깍.






아무렇게 휘갈겨 놓은 백지 위의 낙서들. 선택의 연속이 난무하는 바다 위에서 방향조차 알 수 없는 채, 안개가 자욱한 머릿속에서 조명이 수없이 번쩍인다. 흑과 백 그사이 어딘가 깜빡이는 빛을 솔직히 마주하는 에세이. 이 글들이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의 연결고리가 되길 바라며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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