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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tbia 김흥수 Feb 17. 2017

중국의 대자연과 "이발소의 추억"

중국의 대자연

이발소의 추억  


내 기억 속에 가장 가기 싫은 장소 하나를 들라면 난 서슴없이 이발소라고 말합니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손이 떨려 머리를 못 깎는다는 이발소 아저씨의 술 냄새가 싫었고, 유난히도 머리숱이 많고 뻣뻣한 내 머리털을 철삿줄이라며 놀리는 아저씨가 싫었습니다. 놀림이야 당하면 그만이지만 이 말끝에는 혹독한 시련이 기다리고 있어 진저리 나게 싫은 것입니다.


 이미지 빌려 왔습니다.  http://blog.daum.net/zlan/18  [추억의 이발소 - 2010 ZLAN 일러스트]


바리캉은 늘 머리를 짚습니다. 파란빛이 도는 면도칼 역시 내 머리 앞에서는 이 빠진 부엌칼이 됩니다. 신문지를 침에 발라 동그랗게 붙인 흔적을 귀 언저리나 목덜미에 남겨야 이발소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머리가 부드러운 사람들은 예고된 이 아픔을 과연 이해나 할 수 있을까요?


아픔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억센 머리카락의 잔재는 늘 옷 속에 남아 겨울 녘 개 옷이라도 입었다면 –개 옷이 맞을까? 게 옷이 맞을까? 아니면 계 옷? 아무튼, 그 당시엔 털실로 짠 옷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봄이 올 때까지 따끔거리고 간지러운 일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사한 이후에도 이 아픔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장소에서 만난 이발사 아저씨도 달라진 점은 별반 없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도살장이라면 아픔은 한 방에 끝날 것이란 생각을 하며 치를 떨던 기억 때문에 내 어린 시절 이발소 정경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미지 빌려 왔습니다  http://blog.daum.net/persono  [초식남의 외출일기]


받침대가 원형인 빨간색 등받이 회전의자. 선반 위에 놓인 바리캉, 날카로운 가위와 면도칼, 가는 쇠 빗과 돼지 털로 만든 솔, 비누를 담은 면도용 그릇. 한 쌍의 가죽 칼갈이와 화장지 대용으로 쓰는 신문지 꾸러미…. 크레졸 냄새가 나는 진열장. 타일로 붙여 만든 개수대와 단두대처럼 목을 판 나무. -머리를 감을 때 이 판에 목을 대면 순간적으로 위에서 작두가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최후를 차라리 몰랐어야 했습니다.


그다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풍경은 정말 생뚱맞은 이발소의 액자들입니다. 당시 모든 이발소는 법으로 정해진 무언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아니라면 그때부터 이발소는 체인으로 운영되었던가 카르텔을 형성했었을 겁니다. 거울 윗부분 공간엔 풍경화가 비스듬히 매달려 있는데 어디를 가 봐도 그 그림은 한 사람이 그린 것처럼 닮았습니다. 혹여 대나무밭에서 눈 큰 호랑이가 삐쭉 나오는 그림이 걸려 있는 집도 있긴 했지만…….


중국 계림, 이강 풍경


기억이 맞는다면 첫 번째 그림엔 봉긋봉긋 솟아 있는 무수한 산 사이로 유연한 S자 강이 흐릅니다. 그 강 위엔 대나무로 만든 뗏목이 하나 있고, 뗏목에는 삿갓을 쓴 사공이 노를 젓는데 가마우지 한 마리가 사공 옆에 꼭 앉아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그림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산들이 첩첩산중으로 그려져 있고 그 산꼭대기에서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고 하얀 폭포가 실처럼 흘러내립니다. 세 번째는 언제나 노란 꽃이 만개한 물레방앗간 풍경이 나옵니다. 이 그림을 볼 때면 4개의 그림 중 그래도 가장 내 살던 곳과 닮았다는 안온함을 느낍니다.


2008년 2월 중국 운남성, 라평


가장 기억에 남는 마지막 풍경을 묘사해 보겠습니다. 저 멀리 하얀 설산이 보이고, 하늘엔 흰 구름이 두둥실 떠서 설산 머리를 다소곳이 가리고 있습니다. 너무도 맑은 호수 위에 하얀 다리가 무지개처럼 걸려 있고 그 끝엔 활시위처럼 휜 추녀를 가진 누각이 보입니다. 단조로운 호수 속에 신선이 자리 잡을 만한 육각 정자도 사뿐히 내려앉아 있습니다. 호수 주변엔 연두색 미루나무가 보이고 복사꽃이 만발한 시기에 그려진 춘삼월 풍경입니다. 무언가를 더 그려 넣어도 안 되고, 빼도 안 되는…. 조영남의 화계장터처럼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없을 건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완벽 그 자체여서 오히려 외계 같은 그림입니다. 


2008년, 1월 중국 귀주성, 황과수 폭포


눈을 껌뻑이며 기요틴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나에게 지구 상엔 존재하진 않을 것 같은 이 풍경들이 선택 불가능한 유일한 위안이었기에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발소를 나오는 순간 싹 잊긴 하지만 가끔은 이런 곳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하는 궁금증도 일었습니다.


2006년 1월, 중국 황산


나이가 들면서 이 그림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점을 확인하며 놀라게 됩니다. 첫 번째 풍경을 확인한 장소는 광주에서 아들을 안고 극장에 갔을 때였습니다. 이연걸이 데뷔한 소림사라는 영화를 볼 때 너무도 이발소 액자 속 그림과 닮은 풍경을 보고 소스라쳤습니다. 그 장소가 바로 중국의 계림이었다는 것을 안 것은 한 참 더 이후입니다. 두 번째 풍경은 장가계와 황산을 다녀온 이후, 귀주성, 구룡폭포와 마링하 대협곡에서 그 실체를 보게 됩니다. 이 네 곳의 그림을 합하면 영락없이 두 번째 사진의 풍경이 나옵니다.


2008년 1월. 중국 귀주성 마링하 대협곡


앞에서도 말했듯, 세 번째 풍경은 한국에서도 어릴 때 자주 보던 풍경입니다. 우리 동네에도 물레방앗간이 있어 조금 변형된 그림이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렇게 예쁜 노란 꽃밭을 본 적이 없으므로 늘 아쉬워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림보다 더 우아한 노란색 실체를 본 것은 운남성 라평입니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노란 물감을 확 부어 놓았다고 말해야 할까요? 하긴…. 라평은 너무 거대하여 그림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입니다. 운남성을 여행하다 만나는 작은 시골 동네 봄 풍경에서 그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초록색 보리밭과 붉은 대지, 그리고 노란 유채밭. 정말 딱입니다. 물레방앗간만 곁에 있다면…….


2008년 2월, 중국 운남성 - 귀주성 가는 길


네 번째 풍광을 직접 목격한 때는 바로 13년 전입니다. 내가 본 그림에서 하나도 덜거나 더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 이곳에 늘 존재했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데자뷔 현상에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기억 속에 묻혀있던 장소가 내 눈앞에 실체를 드러냈을 때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다만, 이건 필연이었고 돌고 돌아 이곳까지 오게 하려는 하늘의 뜻만 같았습니다.


나를 끔찍이도 아프게 한 건 이 장소들을 잊지 말라는 준비가 아니었을까요? 왜 눈물이 나는지 이유를 알고 싶지 않았고, 흐르는 눈물을 굳이 닦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나의 과거를 낯선 땅에서 만나게 하는 하늘의 뜻이 그저 오묘할 뿐이었습니다.


2008년 3월, 중국 운남성.  여강 흑룡담 공원


실사가 그대로 그림이 되는 풍경들... 위 그림들은 사진을 간단하게 포토샾을 해 보았습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 번거롭다는 이유로 카메라를 무시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어차피 그림 재주가 없고 글도 어쭙잖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계의 힘을 빌리면 한 폭의 그림을 어슴푸레 담을 수 있으니 이것 만으로도 앞으로의 지평이 열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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