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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당하는 Europe 에피소드 2

자~ 떠나자!

by utbia 김흥수
[ 쾰른역 핫도그 자판기 ]

생각해보면 저의 유럽여행은 자동판매기와 코인 세탁기, 코인 로커 이 세 가지와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자동판매기는 남은 동전은 돌려주는데, 유럽의 유스나 특정 장소에 설치된 자판기는 돌려주기가 아니라 아예 원금까지 떼어먹는 배짱을 부렸습니다. 실수한 다음 자세히 쳐다보면 "잔돈 안 돌려준다." "특수 코인을 교환하라."는 글이 눈에 들어오죠. 정말 불편한 자판기를 아무 거리낌 없이 쓰는 나라가 바로 Europe이었습니다.


여행 중 이 자판기 사건은 압권입니다. 웃비아가 호기심 많다는 사실은 다 아시겠고, 이것 때문에 보는 피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역사를 둘러보는데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이 프랑크 소시지를 팔고 있었습니다. (아파트 현관의 우체통처럼 겹겹이 쌓아둔 미니 오븐 속에 따뜻한 핫도그가 하나씩 들어있고 동전을 넣으면 열리는 방식이었습니다) 맛은 둘째치고 일단 그 자판기의 독특함에 회가 동했죠. 값은 만만치 않은 5마르크 (2,800원쯤).


주머니에 10 DM가 있기에 성큼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당기자 반항을 합니다. 가까스로 이유를 알아보니 오로지 5 DM 짜리 동전만으로 작동한다는군요. 그러면 10 DM을 뱉기라도 해야지? 어이가 없었지만 항의할 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시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고 재시도. (여기서 물러서면 웃비아가 아니죠) "딸그랑~."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내가 생각한 칸의 바로 우측 문이 삐끔 열렸습니다.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상태로….


"뭐 이렇게 못 된 기계가 다 있어?" 각 칸 좌측에 동전을 넣는 곳이 있었는데 제가 반대로 착각을 한 겁니다. 그렇다면 동전을 뱉어야지 왜 빈 문이 열립니까?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만인이 보는 앞에서 발로 찰 수도 없고…. 이제는 도저히 후퇴할 수 없습니다. 오기 등등! 임전무퇴! 다시 5 DM을 집어넣고 레버를 당겼습니다. 거금 11.000원에 맛도 없는 핫도그를 드디어 꺼낸 의지의 한국인 웃/비/아/ 누군가 뒤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면 코미디를 찍는 줄 알았을 겁니다. 아니면 4천 년 저력의 무궁화 같은 그 끈질김에 박수를 보냈을 수도…. 우리도 이렇게 무식한 기계를 만들어 공항에 놓아둔 후 외화 가득률을 높여야 한다고 이 연사 외칩니다!


[ 코인 로커 ]

분위기에 젖어 베네치아행 야간열차 시간에 거의 맞추어 역으로 나왔습니다. 여행이 익숙해져 헤맬 일이 없으니 간이 커졌지요. 그런데 아침에 넣어둔 코인 로커를 찾을 수 없습니다. 분명히 잘 넣어두고 번호표를 받았는데 그 번호 비슷한 로커는 어디에도 없는 겁니다. 출발 시각은 다가오고, 내 짐은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 종잡을 수 없고, 당황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표정만 짓고…. 이럴 땐 정말 영어 하는 사람들이 그립습니다. 출발 시각 5분 전, 인포메이션으로 뛰어갔습니다. "CLOSED" 정말 허망하죠. 혹시 하고 반대편을 쳐다보니 저쪽에도 로커 표시가 있었습니다. 왜 로커가 여러 곳에 있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 넓은 뮌헨 역엔 코인 로커가 한 곳에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 오늘도 일을 저지르고 하루를 마감하는군요. 정신없이 들고뛰어 출발 직전의 열차에 겨우 올랐습니다. 헥헥.


[ 완전 자동 무인 락커 ]

파리에서 넷째 날, 호스텔 규정상 삼일 이상 체류할 수 없다며 일단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입실하랍니다. 짐을 코인 로커에 넣어두고, 노트르담 대성당과 루브르 박물관에서 하루를 몽땅 보내고 들어왔습니다. 며칠간 사고 없이 잠잠했는데 오늘은 이 기계가 확실하게 배신을 때렸습니다.


달따냥 유스의 로커는 열쇠도, 번호키도 아닌 중앙 통제식 전자동 로커였습니다. 아침에 귀찮아서 대충 짐을 꾸려 처박아놓고 나갔다 왔죠. 룰루 랄라~ 짐 한 개만 꺼냈는데 비스듬히 열린 문이 밀려서 그냥 딸가닥하고 닫혀 버렸습니다. 황당하죠? 어쩌겠습니까? 돈을 다시 넣고 문을 열어야지…. "에이 참 요놈의 기계가 또 속을 썩이는구나" 아무 생각 없이 동전을 바꿔서 중앙통제 장치에 동전을 넣었습니다. "딸가닥"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내 짐이 남아 있는 문은 잠잠하고 다른 문이 뻘쯤 열린 겁니다. 쾰른역 자판기 사건보다 더 심한 일이 일어났군요.


이 로커의 메커니즘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일단 동전을 넣으면 비어있는 로커 중 하나를 컴퓨터가 임의로 열어줍니다. 그다음 짐을 넣고 문을 닫은 후 사용자가 로커 번호와 비밀번호 4자리를 넣어주면 잠기게 되죠. 짐을 꺼낼 때 비번과 로커 번호를 누르면 지정된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저처럼 짐을 덜 꺼낸 상태에서 문이 닫히면 컴퓨터는 그 칸이 비어 있다고 인식을 합니다. 다음 사람이 동전을 넣으면 컴퓨터는 비어 있는 칸 중에 골라서 지 맘대로 하나를 열어줍니다. 내 짐이 든 문을 열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아무도 모르죠.


자~ 저 같은 경우를 당하면 동전을 수백 개 바꿔서 그 문이 열릴 때까지 확률 게임을 하던가, 자리를 뜨지 않고 지키고 있다가 누군가 그 문을 열었을 때 가방을 꺼내는 방법 외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혹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 문이 열리면 누군가 횡재를 하게 되겠죠. 안내데스크에서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제 모습…. 상상이 가시나요? 그나마 호스텔 로커였기에 담당자를 호출하여 2시간 만에 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큰 역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집니다.


[ 코인 세탁기 ]

코인 세탁기 작동법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동전을 넣고 하라는 대로 세팅을 한 후,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빨아 주고 말려 줍니다. 어스름 해가 뜰 무렵, 세탁장에 갔더니 세탁기가 잠잠해져 있었습니다. 다 되었나 보다. 뚜껑을 열었습니다.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군요. 건조하는데 상당히 시간이 걸리나 봅니다. 다시 동전을 넣고, (코인 세탁기는 뚜껑을 열면 세탁이 되었든 안 되었든 동전을 넣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휴게실에서 눈 좀 붙이다 내려가 이 정도면 됐겠지 하고 뚜껑을 열었습니다. 헥…. 절반도 안 말랐습니다. 에구~~ 아까운 내 돈…….


이 이후부터 이놈의 자동 세탁기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제 속을 썩였습니다. 아주 완벽하게 작동을 하고 흐뭇하여 돌아와 보면 세제 투입을 빼먹는다던가, 잘 세팅하고 자리를 비웠다 가보면 어떤 놈이 중간에 문을 열어서 서버리고…. 최악의 사건은 잘츠부르크에서 완벽한 세팅에 황홀해하며 1시간 후 돌아왔더니 세탁기가 벌써 잠잠해졌더군요. 무서워 문을 못 열고 기다려도 계속 잠잠하여 뚜껑을 열자 그제 서야 동전을 꼴까닥…. 세팅에 신경 쓰느라고 On 스위치를 누르는 것을 잊었던 겁니다. 우왁~ 내 돈. 돈! 돈! 돈!



배낭여행을 준비하신다면 첫 페이지부터 차분히 보아주시길 권합니다. 이 시리즈는 단행본 두 권 정도 분량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독하시면 여행 준비에 도움은 물론, 현지에서 시행착오도 훨씬 줄어들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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