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성을 찾고 싶다면 헤드라인뿐만 아니라 디테일을 파고들어야 한다.
주식시장에는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다.
'이 지표를 보면 이 주가는 조금 지나면 바닥을 칠 것 같아. 그런데 이걸 볼 것 같은 A가 먼저 살 거야. 그럼 내가 A보다는 먼저 이걸 사야지. 근데 B는 내가 A가 먼저 살 것 같아서 더 먼저 살 것 같은 나를 아니까 B는 더 먼저 살 거야. 그리고 그 사실들을 아는 C는 B보다 더 먼저 살 거야. 고로 지금 당장 사야 해.'
이런 농담이 아니더라도 선행성의 중요성은 금융시장에서 가장 두드러지지 않나 싶다. 선행성이 곧 돈이 되니까.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금융시장에서 가장 탄탄한 근거들은 전부 과거에 관한 내용이다. 작년에 얼마나 벌었고, 지난 분기에 어떻게 움직였는지, 전월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가 가장 확실한 데이터다. 심지어 앞으로의 경제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에서도 Data-dependant, 데이터에 근거해서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지고 앞으로 있을 일에 영향을 미칠 정책을 결정한다는, 일견 당황스러울 수 있는 일이 벌어진다.
그렇기에 금융시장은 데이터나 지표들의 선행성을 알아보고 그것에 맞추어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안 된다. 선행성이 높다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선행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데이터 확보의 속도다. 데이터 확보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 방법이 간단하고 쉬워야 한다. 또한 확보하는 데이터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특정 구간으로의 쏠림을 방지해야 하고 자연스레 확보 대상이 광범위해야 한다. 즉, 광범위한 대상에게서 보다 간단한 방법으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노이즈가 높은 부정확한 데이터가 되기 쉽다.
그럼 데이터 수요자인 우리는 이런 부정확환 데이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디테일에 주목해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 데이터가 어떤 방식으로 모인 것인지, 구성하는 요소와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는 무엇인지 그 디테일을 알아야 보다 정확하게 데이터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고, 선행성과 중요성을 평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최근 거시경제 환경에서의 최대 이슈는 물가다. 물가 상승률이 어떻게 되는지에 금융시장 전체가 영향을 받아왔다. 이 물가는 나타내는 지표가 몇 가지 있지만, 매월마다 발표되는 물가상승률, CPI(Consumer Price Index) 상승률이 가장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중요하지만, 특히 전 세계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미국의 CPI 상승률이다. 미국은 U.S Bureau of Labor Statistics, 즉 노동통계국이라는 곳에서 이 지표를 발표하는데 크게 3개의 카테고리, 즉 식료품과 에너지, 그리고 이 둘을 제외한 나머지로 나뉜다. 이 3가지를 다 포함한 수치를 헤드라인 CPI라 하고,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나머지를 Core, 즉 근원 CPI라 한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을 때,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은 이유가 일단 승패 여부를 떠나 전쟁 당사국 때문이다. 러시아는 OPEC과 더불어 원유시장의 주요 공급자 중 하나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더불어 전 세계 밀 수출량의 1/3을 차지한다. 원유와 밀 가격의 급등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당시 인플레이션 압력은 글로벌 공급망 충격으로 인해 멈추지 않던 자동차와 같았다. 전쟁은 이를 로켓으로 바꿔버렸다. 높은 근원 항목의 인플레이션 압력에 식료품과 에너지의 가격 급등이 나타나면서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생각해 보면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로 근원 CPI 항목은 공급망 충격이 원인이었고, 그중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중고차와 신차 가격이었다. 그렇다면 중고차와 신차 가격, 특히 중고차 가격이 선행성을 가질 수 있는 항목이 된다. 따라서 미국의 Manheim 중고차
가격 지표를 째려보면 된다. 두 번째로 앞으로 영향을 미칠 식료품과 에너지 가격 상승은 간단하다. 원자재 시장을 열심히 쳐다보고 있으면 된다. 이렇게 선행성 있는 지표를 디테일에 대한 이해를 통해 찾아낼 수 있다.
실제로 전쟁 발발 이후에 원유 가격은 크게 상승했지만, 미국의 전략 비축유 방출, 러시아 원유 가격 상한제 도입 등으로 원유 가격은 2022년 중반 이후 다시 내려왔다. 코로나 영향력이 감소하면서 공급망 충격 역시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그럼 물가 상승률은 낮아졌을까? 아니다. 물가는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정점을 찍고 추이는 peak-out 하는 모양새이지만 낮아지는 폭은 올라갔던 정도에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전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로 돌아서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유는 다른 항목에서 찾아야 한다.
근원 CPI 항목은 크게 상품과 서비스로 나뉜다. 그중에서 서비스 항목 구성을 살펴보면, 주거비와 의료 서비스, 교통 서비스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이 바로 주거비이다. 그리고 주거비 항목 내에서 가장 큰 비중은 OER(Owners' equivalent rent of residences)이란 항목이다. 번역하면 주택 보유자 전환 가정 임대료? 주택 소유자가 현 주택을 임대로 전환할 경우 월세를 말한다. 즉, 자기 자신에게 임대를 놓는데 그 임대료가 얼마인지 설문조사로 묻는 항목이다. 이 항목이 최근까지도 하락하지 않고 높은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 왜일까? 미국의 주택 가격을 나타내는 다른 지표들(케이스-쉴러, 질로우 등)은 미국 부동산 가격이 크게 하락했음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OER은 그러한 지표를 반영하는데 시차가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이 시차를 나타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추정되고 있지만, 모기지 금리 상승에 따라 월세를 충분히 낮춰 잡지 않는다는 의견, 미국의 주택공급수 부족에 따른 월세 하방경직성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제 슬슬 나타낼 때라는 점이다. 이처럼 다른 지표와 비교분석한 자료도 디테일에 기반해 선행성을 부여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데이터에서 선행성을 찾아낼 수 있는 디테일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리고 알아보고 파 볼 수록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현상이나 일상적인 뉴스에서 보다 큰 그림을 추론해 낼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꼭 투자에 관련된 일이 아니더라도 의미를 주는 정보가 많아진다는 것은 결코 불리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또다시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결론으로 돌아간다. 차라리 즐겨보자. 사실 의외로 재미있는 것들도 알게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