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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Sep 16. 2019

당신은 불행한가?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가장들에게 고함

주인 되는 삶에 관하여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 기억이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막을 건너는 행상들이 가장 지치고 힘들 때는 햇살이 쨍쨍 내려 쬐는 더위도 아니요, 거친 모래 바람도 아닌 신발 속으로 파고든 모래 알갱이가 끊임없이 발꿈치를 파고드는데도 계속 걸어가야 할 때라고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난관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거대한 장애물은 기를 쓰고 넘어간다 하더라도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소한 말과 행동들에는 그냥 넘어지고 고통받기 쉽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사막을 건너는 여행자들도 무심코 상처를 주는 말투나 행동을 거침없이 한다는 점입니다. 거친 사막을 건너 마침내 오아시스를 발견한 사람들은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 큰 나무 아래서 휴식을 취하며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됩니다. 하지만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에 대한 고마움도 잠시일 뿐 더위를 식힌 사람들은 큰 나무는 아무 쓸모도 없다며 오아시스에는 과일을 맺을 수 있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이런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불행의 씨앗 중 하나는 이런 이중성의 심연 안에 존재하지 않을까 고민해 봅니다.


연휴가 끝나고 도심의 길거리는 다시금 활기찬 시민들로 가득 찹니다. 사회가 잘 살게 되면 행복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할 텐데 왜 불행한 감정의 파편들이 더 멀리 퍼져나갈까요?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가 미덕이며 더 많이 소비할수록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을 끊임없이 주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충족하기 위해 빚이라는 덪을 치밀하게 사회 전체에 심어 놓았습니다. 월급이라는 덪, 신용카드라는 덪, 그리고 은행 대출이라는 덪을 포함한 무수한 유무형의 채무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소비를 미덕이라 강요하면서 채무는 범죄라는 믿음이 함께 공존하는 현대 사회의 이중적 잣대에 갇힌 현대인들은 사회가 아닌 자신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느끼곤 합니다. 


청소년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자신에 대한 정체성의 부재는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행복을 느끼는 단계에까지 우리를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청소년은 입시 경쟁을 부채질하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아닌 머리가 나쁜 자신을 탓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습니다. 돈 버는 기계로만 충실히 살아온 직장인들은 조직에서 퇴출되면 능력이 부족한 자신을 탓하며 또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정체성 혼란은 대부분 사회가 원하는 모습과 비교해서 생기는 감정입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이들은 화가 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자신이 누군지 감추기 위한 페르소나(persona)의 단면일 수도 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은 평상시보다는 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직장을 퇴직한 장년층은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진듯한 충격을 온몸으로 견디게 됩니다. 회사와 가정을 쳇바퀴 돌듯 왕복하는 삶이 자신의 존재 가치요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던 평범한 다수의 모범적 사회인들은 직장을 잃으면 정체성도 함께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정체성이 없는 사물은 존재는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동물로써의 인간의 존엄성은 바닥을 치게 됩니다. 비극적이지만 인격 살인이라는 감정 노동의 착취가 존재하는 냉혹한 현실에 평범한 인간이 기댈 것은 그나마 소속 조직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가정 정도이기에 비난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사회의 인정에 기댄 거짓된 정체성에 심하게 빠져 자칫 우울증에 까지 이르게 된다면 이것은 스스로에 대한 범죄일지도 모릅니다. 사회가 당신을 버릴지라도 자신이 포기하지 않으면 인간은 자아로서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나는 나 자체로 소중하며 세상 모든 것입니다. 


중국 당나라의 임제 선사께서 설파하신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그곳이 진리의 자리이다”라는 뜻인데 정체성의 혼란에 빠진 이들에게 귀감이 될 말씀입니다.


경제가 힘들수록 돈 버는 존재로써의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을 수많은 대한민국 가장들 모두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도 자신이 처한 삶의 주인이 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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