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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Jul 31. 2019

일본과의 경제 전쟁-아베는 히데요시의 몰락을 기억하라!

군사 대국을 향한 일본 제국주의 부활을 경계하며

“왜적의 배가 대마도에서 우리 바다로 오며 바다를 뒤덮듯 했다.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 징비록-


1592년 일본은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700척의 배에 18,700명의 침략군을(경상 우수사 원균은 90척, 경상 감사 김수는 400척으로 보고 참조) 이끌고 평화롭던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이후 7년간 조선의 국토는 유린당하고 조선인 수십만 명이 학살당했을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도 요동치게 되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427년의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과 일본의 갈등 관계는 다시금 무역 전쟁의 양상으로  악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과 관련한 보복조치로 한국에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라는 경제보복에 나선 후 양보 없는 강대강의 대치 국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외교 장관에 해당하는 고노 외상이 주일 한국 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우리 측의 대화를 끊고 무례라는 단어를 쓴 것은 그 자체로 외교상 큰 결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길의 용모는 왜소하고 못생겼으며 얼굴은 검고 주름져 원숭이 형상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수정 실록 25권(선조 24년, 1591)


현재 일본의 권력자인 아베 신조 총리와 고노 외상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비슷한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외모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아닌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죄할 줄 모르고 자신만의 독선에 빠져 있는 모습이 영락없이 미치광이 히데요시입니다. 일본 학계에서는 히데요시 일생의 최대 실수로 무리하게 침략 전쟁을 일으킨 점을 지적하는데 일본 만화나 소설에서도 임진왜란을 서술한 장면에서 유독 히데요시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베 총리는 혼자가 아니며 뒤에는 일본 보수단체인 일본 회의와 같이 한국, 중국에 대해 강하게 맞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필자는 이전 글에서 일본이 대한민국의 발전에 매우 긴장하고 있으며 우리의 발전을 저해하기 위한 모종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 예상 한 바 있습니다 (https://brunch.co.kr/@utoskin/179). 1990년 당시 일본의 1인당 GDP는 USD25,443으로 한국(USD 6,513)에 비해 약 4배가량 높았는데 2018년 기준 일본의 1인당 GDP는 USD 40,106이며 한국은 USD32,046으로 약 1.25배 차이밖에 나지 않고 있는 것이 한예라 하겠습니다. 특히 아베 총리 집권 이후 일본 국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는 오히려 1만 달러 넘게 줄었습니다. 2012년 일본의 1인당 GNI는 4만 9935달러에 달했으나 2017년에는 3만 9759달러로 5년 만에 1만 176달러나 감소했습니다.  일본 정부의 국가채무 또한 GDP 대비 236.4%로 세계 최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특권층에 속한 소수 정치 및 경제인들이 국가 전략을 결정하는 일본의 특성상 한국의 힘이 일본을 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견제는 상당기간 지속되리라 예상됩니다.


양국 간 갈등이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날지는 미지수지만 임진왜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결과를 예측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7년간의 전쟁은 공식적으로는 결국 조선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일본은 침략 목적을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으며 전쟁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발생한 내전에서 승리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정권은 모든 잘못을 이전 정권으로 돌리며 조선과의 외교 관계를 복원해 달라고 애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조선과 일본, 명나라와 여진족(후일 청나라)의 국가별 손익 및 내부 권력자들의 이해관계는 사뭇 복잡해 보입니다.


1. 조선의 이해관계: 7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조선인은 적게는 수십 만 명에서 최고 100만 명이 죽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조선인 전체 인구가 940만 명 수준으로 추측하는데 근거는 1626년 호패청의 기록에서 발급된 인구가 226만이라는 기록입니다. 호패는 호패법에 따라 군역과 납세를 위해 성인 남성에게만 지급됩니다. 여성을 합치면 약 450만, 호패가 지급되지 않는 미성년자와 노령층을 합치면 약 800만, 기타 국가에서 파악하지 못한 인구를 약 200만 정도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참고로 임진왜란 당시 일본 인구는 약 1700만 명가량으로 추산합니다.)  요약하면 임진왜란으로 조선 백성 10명 가운데 1명이 죽었으며, 농경지 60%가 파괴되었고, 수많은 문화재와 민가와 관가와 궁궐이 불탔고, 10만여 명의 백성들이 왜국에 포로로 잡혀 갔다고 합니다. 전란으로 인한 농지 황폐화를 복구하기 위해 대동법이 실시되는 등 노력을 기울이긴 했지만 18세기 영조 때에 이르러서야 다시 조선이 중흥할 수 있었음을 볼 때 전 국토가 초토화되다시피 한 피해는 매우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피해는 극심했지만 국왕인 선조는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중앙 집권체제를 정비하고 명나라를 섬기는 사대 외교 정책을 통해 통치 권력을 강화하게 됩니다. 결국 국가는 경제 및 군사적 면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았지만 권력자는 승리를 거둔 씁쓸한 결말이었습니다.


2. 일본의 이해관계:  사료를 보면 임진년(1592년)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 총 18만 8700명 중에서 1년 후 살아남은 병력은 약 11만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본군을 약 22만 4천으로 본 다른 자료에서도 생존자가 12만 4천 정도라고 하니 전란 발생 후 1년 동안에만 왜군은 10만 명 이상 사망한 셈입니다. 이 기간 일본군의 신속한 진격으로 조선군이 제대로 반격을 하지 못했음을 감안할 때 일본군의 피해는 예상보다 상당합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패배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이후에도 막부 시대를 거쳐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이는 조선에서 약탈한 도자기 기술 및 금속활자를 비롯해 납치한 조선인 기술자들의 역할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임진왜란 당시 약 1700만 가량이던 일본의 인구는 에도 시대 이후 수십 년 만에 약 2800만 명으로 성장할 정도로 국력의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정치적인 면에서 보면 전쟁의 책임자인 히데요시 가문은 사후 2년 만에 내전을 통해 몰락하고 이에야스 가문이 권력을 쥐게 됩니다. 결국 일본은 경제면에서 엄청난 이득을 보았지만 권력자는 패배를 하게 된 모습입니다.


3. 명나라와 여진족의 이해관계: 히데요시가 명나라를 치겠다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했기에 명나라 입장에서는 그저 방관하고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국제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당시 명나라는 북쪽의 북원(원나라가 쫓겨가 세운 국가)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고 동쪽의 여진족도 견제해야 하는 형편이었습니다. 만약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다면 방어를 위해 요동에 십만 단위의 병력을 배치할 수밖에 없고 장기적인 주둔 비용을 고려하면 재정적인 무리가 따르게 됩니다. 물론 당시 파견된 조선 사신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이런 국제 정세 하에서 명나라가 파병을 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으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명은 전후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사실 임진왜란은 명이 망하게 된 하나의 원인일 뿐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고 명은 수십 년간 내부의 농민 반란 등으로 이미 피폐해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중 힘을 키운 여진족이 후금-청나라를 거쳐 명나라를 완전히 집어삼키게 된 결정적 계기를 제공해 준 것도 사실입니다. 국제 정세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국가는 바로 여진족이며 명나라는 상대적으로 득 보다 실이 훨씬 많았던 전쟁이었습니다.

400년 전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대입해 생각해 봅니다.


이번 일본과의 무역 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은 단기적으로 많은 피해를 입게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반도체 분야에서 국산화 노력을 소홀히 했던 소재 및 장비는 당분간 타격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정밀 기계나 화학 쪽도 일정 부분 어려움에 처할지도 모릅니다. SK 최태원 회장이 지적했듯이 대체 공급처가 있더라도 실제 공정에 적용하는 데는 품질 및 수율 문제 등 난제들이 있어 시간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공급망 차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이어 유럽까지 통하는 대륙간 철도와 가스관 설치까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로마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카르타고의 한니발, 그랑 아르메를 이끌고 전 유럽을 휩쓴 나폴레옹, 이 두 사람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많은 전투에서 승승장구한 군사적 천재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니발이 보여준  섬멸전과 나폴레옹이 보여준 포병의 집중과 내선 작전은 오늘날 전술 교본에도 실릴 정도로 대표적인 전술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무수히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결국에는 전쟁에서 지고 만 군인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리 전투에서 이겨도 전쟁에 이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전쟁이 일련의 전투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쟁의 승리에는 전투의 승리만으로 담보할 수 없는 다른 요소들이 개입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여당이 올해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아베는 2012년 자민당 총재를 맡은 첫해 중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올해 참의원 선거까지 대형 국정 선거에서 6번 모두 승리함으로써 ‘선거 불패’ 기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보면 아베 총리는 선거라는 정치적 전투에서는 계속 승리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투에는 졌지만 끝내 전쟁에 승리한 쪽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쟁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경제력의 유무, 그리고 국민들의 정신력이 아닐까 합니다. 현재 일본의 경제력은 분명 대한민국보다 한수 위이며 기초 기술도 우수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경제력으로만 보면 일본과의 무역 분쟁이 길어질수록 우리에게는 불리할 수 있으며 일본은 우리에게 압박을 가함으로 상대적인 이득을 누릴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정신력에서 우리는 일본인들을 앞서가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할 수 없었지만 불매운동에는 참여하겠다는 의지가 들불처럼 퍼져가고 있습니다. 일본 제품의 국내 점유율이 급락하고 일본 여행 예매율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작은 개인의 의지 들이 모여 결국은 전쟁의 승리를 이끌어 낼 것입니다. 무모한 경제 전쟁을 일으킨 아베는 임진왜란 이후 히데요시 가문이 몰락했듯이 조만간 쫓겨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 봅니다.


현재 미국은 400년 전 명나라와 같은 위상을 가진 강대국입니다. 명나라가 개입했듯이 미국도 한일 양국을 조율하고자 노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의 이익에 손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압력을 가해서라도 중재를 이끌어 내겠지요. 하지만 임진왜란에서 결정적 승리를 이끌어 낸 것은 명군도 아니요 조선 관군도 아닌 의병으로 대변되는 민중의 항거였다는 사실을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어진 의병 의식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불매 운동의 지속성이 일본과의 경제 전쟁의 승패를 가를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반도체 제조장치 제조사에게 한국은 '큰 단골손님'이며 한국에서 제조된 반도체를 수입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도 적지 않다며 반도체 소재의 한국 수출이 늦어지면 일본 측도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거대한 세계 글로벌 공급망에서 일본은 스스로 족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을 통해 일본은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보았지만 현재는 다를 것입니다. 일본이 스스로 대한민국과의 거래를 끊는다면 대가는 참혹할 것이며 오히려 대한민국 대기업들이 등한시했던 기술 독립을 이루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망상에 빠져 무모한 침략 전쟁을 일으켰던 히데요시 가문이 어떻게 몰락하게 되었는지를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임을 경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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