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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Jan 22. 2020

화산이 폭발하다! 우리는 행운과 불운을 알 수가 없다.

방학 기간을 맞아 딸아이가 단기 어학연수를 간 필리핀에서 화산이 폭발했습니다. 또래 학생들과 함께 하는 스파르타 방식의 힘든(?) 캠프라 외딴 환경에 더해 혼자서 공부에 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을 아이가 걱정이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화산까지 폭발했다니 아이고... 그래서 아이도 위로할 겸 가족과 함께 아이가 머물고 있는 클락에 주말을 이용해 다녀왔습니다.


오래간만에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설렘과 즐거움을 줍니다. 공항을 보는 것만으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로 설레던 청년 시절은 지나갔지만 중년의 마음에도 아직 설렘의 여운은 남아 있습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즐거움은 청년 시절의 설렘을 넘어섭니다. 자녀가 성장해서 독립하고 부부만 남을 노년에는 또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네요.


필리핀 수도 마닐라 북쪽에 위치한 클락은 예전 미군의 공군기지가 있던 자리였다가 반환되었습니다. 클락에는 유명 골퍼인 타이거 우즈가 동양에서 최초로 골프를 쳤다는 미모사 골프장이 있어 많은 한국인들이 골프 관광을 위해 방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클락 국제공항 바로 옆에 코리아 타운이 있으며 이곳 거리는 온통 한글로 표기된 음식점과 각종 편의 시설들이 위치해 있습니다. 다만 클락이 위치한 앙헬레스가 유흥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보니 이른바 KTV라고 부르는 업소들도 많이 눈에 띄는 만큼 단체 관광으로 온 아저씨들도 많기는 합니다.^^


클락에도 피나투보(Pinatubo) 화산이 있습니다. 이번에 폭발한 탈(Taal) 화산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활화산임에 반해 피나투보 화산은 1991년 폭발 당시 4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을 정도로 큰 화산이며 당시 피해로 인해 미군이 수빅 해군 기자와 클라크 공군 기지를 포기하고 반환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피해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기는 힘들지만 시간은 엄청난 자연재해도 관광 상품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푸닝(Puning) 온천은 피나투보 화산길을 따라 거대한 바퀴를 장착한 몬스터 지프 차량을 타고 올라가야만 하는 산속에 위치해 있습니다. 공포스러웠을 시꺼먼 화산재는 이제 회색을 띤 하얀 모래처럼 보이고 화산재가 깔린 숲 속 길에는 맨발의 아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온천수가 흘러내리는 계곡물은 과거의 무서움을 경험해 보지 못한 관광객에게 멋진 풍경을 제공합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재해와 함께 사는 현지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지나가는 관광객 입장에서는 다만 현재를 즐길 뿐입니다. 산을 따라 계단식으로 만들어진 온천에서 자연 화산수에 몸을 담그고 바라보는 산은 영화 아바타의 공중 부유산을 연상케 하고 화산재에 파묻혀 받는 전신 마사지는 특별한 감흥을 줍니다. 도시 생활에 찌든 중년남에게 야외 온천은 낭만이기도 합니다.

문득 청년 시절 첫 직장이었던 스리랑카가 떠오릅니다. 당시 스리랑카는 주 종족인 싱할라와 인도에서 건너온 타밀족이 치열한 내전 중이었습니다. 필자가 관리하던 실험실에서 오빠가 어느 날 전투 중 사망했음을 듣고 울부짖던 여직원도 이제 중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인간의 광기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 악입니다. 우리 인간은 살면서 받은 상처들이 쉽사리 낫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아물어 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재난은 그 뜻처럼 엄청난 불운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주며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절망의 탄식으로 가득 찬 희생자들의 사연을 듣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재난과 재해를 넘어 전쟁의 참담함까지도 희석시키고 잊게 만듭니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객에게는 수백 명의 사상자를 냈던 화산 폭발이 단지 이국적인 멋진 풍경처럼 보이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속의 깊은 상처도 타인에게는 그저 단순한 걱정과 고민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딸아이가 당장 겪고 있을 고민과 스트레스가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런 경험들이 장래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의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는 것은 단순히 시간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닌 보는 관점에 따라서도 바뀔 수 있습니다. 많은 공부량에 힘들어할 아이가 힘을 내기를 바라봅니다.


PS: 필자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영어와 수학 학원에 다니는 대신 댄스와 미술, 운동 등 아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지원해 주면서 청소년기를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훗날 아이의 인생에서 부모와 함께 한 기억들이 즐거운 추억으로만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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