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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Mar 17. 2022

외로움을 쪼개다: 결코 알 수 없는 노년 고독의 단상

우크라이나 전쟁과 정점을 향해 쉬지 않고 확산하는 코로나라는 환경 속에서 주변에 홀로 외롭게 지내는 사람들도 많아져 간다. 인간은 누군가를 만나서 위로를 받고 외로움을 달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서 기인한 기회의 박탈을 보지 못한 채 결과만 지적하는 손가락은 노년의 평범한 욕구조차 이기적 행동으로 폄하시키고는 한다. 정치인들의 추악한 갈라 치기로 인해 청년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에 더해 노인 세대를 혐오하는 문화가 음지에서 조금씩 사회를 좀먹고 있지만 반성은커녕 더욱 확산되는 듯한 세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공분을 불러오는 일부 몰상식한 노인에 대한 처벌은 구별하여야 하겠지만 노인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는 기초이기에 세대별 공감 교육이 필요하다.

 

인생은 정답이 없는데 우리는 항상 정답을 찾고 싶어 한다. 조금 수고를 덜고 편하게 사는 길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길이 자신이 만족하지 못하는 삶이라면 의미가 없다. 특히 젊은 시절 치열하게 사는 동안 잊고 살았던 정서적 외로움은 중장년기에 이르러 허무함을 불러오곤 한다. 어릴 적 가난하고 힘들었던 기억은 추억으로 남아 아련한 그리움으로 기억되지만 중년 이후의 가난과 고난은 그저 비참한 현실 속에 외로움을 증가시키는 촉매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은 유독 과거의 추억에 젖어 현실을 외면하며 미래를 부정적으로 표현할지도 모른다. 


누구나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 있어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목표이며 지향점이다. 그러나 이른바 태극기 부대라 불리는 노인들을 볼 때 가련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들의 절박함과 불편함을 위로받을 수 있는 곳이 극히 한정되어 있기에 이를 이용하는 자들이 있는 것 같은 합리적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종교와 정치는 삶에 중요한 신념으로 작용하지만 이면에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과 정서적 공감이 없다면 이는 맹목이 되고 극단으로 치닫게 되어 결과적으로 사회에 해악을 끼치게 되는 사례가 역사적으로 반복되고는 한다.  


노년 세대의 건강한 정서적 안정감과 외로움은 청년 및 중장년 세대가 결코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인생에서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것들 중 일부는 불현듯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삶에 등장하고는 한다. 그중에서 고독과 외로움은 행복한 노년을 위협하는 큰 정서적 장애물이다. 도시의 거리나 공원에서 무료하게 허공을 응시하는 노인에게 행복과 불행은 청년과는 아마 다른 의미일지도 모른다. 고독한 존재인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함께 하며 타인과 나눌 수 없는 삶의 동반자인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씩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답이 없는 인생이기에 누군가에게는 예술 혼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자연인 생활이 될 수도 있다. 다만 홀로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올 때 '오늘 하늘이 참 푸르구나'하며 만족한 미소를 남길 수만 있다면 삶은 그 자체로 전 우주보다 더 큰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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