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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Mar 30. 2022

가장 불쾌하고 가장 무력한: 재난은 그렇게 다가온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국제 관계에 있어서 대립과 갈등이 결국은 독선으로 이어지고는 한다.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이 재난도 어쩌면 올게 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사 속에서 전염병과 전쟁을 포함한 재난은 언제나 반복되며 파괴와 재건의 과정을 거쳐 오고는 했다(국내의 정치 상황도 비슷하다).  사회가 붕괴되지 않을 정도로 일정 수준의 인구가 감소할 때까지 재난은 마치 지성을 가진 존재처럼 공격을 쉬지 않는다. 결국은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가장 불쾌하지만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무력한 재난이 도처에 퍼져있다.


재난을 마주할 때 우리는 선과 악을 명쾌하게 구별하기가 어렵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이야기는 실체를 들여다볼수록 숨겨져 있던 내면의 진실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예로 들어 보자. 언론에 등장하는 뉴스는 온통 미국의 CNN과 영국의 BBC를 중심으로 한 서구권의 뉴스만 보도하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도 침략은 정당화되기 힘들기 때문에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입장을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코로나 시기에 세계 경제를 위해서라도 위협에만 그치는 것이 합리적이라 예상했기에 실망도 크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탈나치'와 돈바스 주민 학살에 대해 평가는 중립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는 있다. 나치를 추종하는 극우 군사 집단(아조프 연대)이 돈바스 지역에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지만 따지고 보면 역사적으로 소비에트 연방 시절 러시아의 식량 수탈로 수많은 아사자를 양산하고 러시아인을 강제 이주시켰던 아픈 상처가 우크라이나인의 마음에 생채기로 남아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영국의 브리튼과 아일랜드도 대기근 시절 주식인 감자를 수탈해간 브리튼으로 인해 아일랜드인 약 600만 명이 굶거나 해외로 이주했다고 하니 감정은 나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잘못된 판단으로 침략자가 된 러시아 푸틴이나 어설픈 영웅 심리로 국토를 유린당하고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나 각자의 입장에서 존중은 받을 수 있겠으나 상호 간의 보편적인 이해는 불가능하다. 특히 제삼자의 관점에서 감정에 사로잡힌 연민과 냉소주의는 재난을 더욱 악화시킨다. 상호 이해가 불가능한 갈등 상황에서 손쉬운 해결책으로 등장하기 쉬운 연민과 냉소주의는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젤렌스키의 화상 연설에 기립 박수로 환대하는 미국 및 유럽과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인도, 그리고 한발 빼는 중국에게서 무언가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은 연민과 냉소주의 사이에서 실종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들에 대한 이해가 빠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하라'라고 했다. 상호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어설픈 연민이나 냉소보다는 오히려 침묵이 나을 수도 있다. 힘이 지배하는 국제 관계에서 결국 승리하는 자가 선이 되고 진실이 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말자. 범죄자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고 경청해야 하는 것이 민주적인 사회이다. 시간이 흘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진실 공방은 또다시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각 개인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가장 행복한 삶이다. 파괴를 통해 새로운 창조가 일어난다고 해서 일상을 재난으로 몰고 간다면 어떤 판단을 해야 할 것인가. 영토와 주권의 보존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안에 사는 평범한 국민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근본이다. 지난 수천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국가와 제국이 흥망성쇠 과정에서 바뀌었던 국경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국가와 영토는 지배층에 따라 새롭게 생겼다가 없어지기도 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은 끈질기게 삶을 이어간다. 혹자는 이기적이라 비난할지 모르지만 침묵이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면 굴욕을 견디고 침묵을 선택하는 지도자를 선택하고 싶다. 인조보다는 광해군을 이해하고픈 나는 아이들에게 재난의 시대에 살게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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