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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Oct 05. 2022

악몽: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를 지배할 때

숨이 턱 막힌다. 가슴이 답답하고 목이 마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냉장고 속의 찬 음료를 벌컥 들이켜 보지만 속만 울렁거릴 뿐 시원하지는 않다. 악몽을 꾸고 난 후 다시 잠들기는 한동안 쉽지 않다.


나에게 악몽이란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꿈이 아니다. 삶에서 모욕감을 주고 이용해 먹으며 심지어 사기를 쳤던 악인들이 다시 나타나 마주치는 상상이다. 소설 <1984년>을 집필한 조지 오웰은 '미래를 보고 싶다면 구둣발이 얼굴을 짓밟는 것을 떠올려라-영원히'라고 말했다.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감정으로 현실에서 우울하고 불행한 삶을 사는 것은 비극이다. 마찬가지로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지배하게 방치하는 것은 더 큰 불행이다.


매일 살아가는 현재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주변 환경을 바꿀 힘도 의지도 없지만 자신의 감정만은 이성이 이끄는 대로 고요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다. 


여름의 풍성한 초록이 조금씩 사라지며 낙엽이 물들고 추수가 시작되는 가을에 그 낙엽마저 다 떨어지고 앙상해질 겨울을 생각하며 우울해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자연의 순환은 항상 그렇듯 반복되며 봄의 새로운 새싹을 위해 낙엽은 반드시 떨어져 퇴비가 되어야 한다. 낙엽의 운명은 피할 수 없지만 나무의 줄기에서는 이미 새로운 봄을 향한 설렘이 시작된다. 


어쩌면 인간의 행복은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악몽을 꾸었을 때 과거의 인물에 분노하고 마음속에 증오의 화병을 키우며 간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후회는 폭풍우와 같고  분노는 휘몰아치는 비바람 속에 떨어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낙엽과 같다. 이제는 낙엽을 떨구어야겠다.


잠에서 깨어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며 내 삶 속에 허락 없이 들어와 괴롭혔던 악인들을 함께 씻어 버린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지금 내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악몽은 더 이상 무섭지가 않을 것이다. 다시 잠자리에 들며 내일의 새로운 하루를 위한 활력을 충전해 줄 것에 미리 감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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