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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Oct 06. 2022

경쟁 중독: 바보야! 문제는 자기 주도적 삶이 아닐까.

지나가는 버스 광고판에서 <99 강화 나무 몽둥이>라는 네이버 웹툰 홍보물을 보았다. 이 세계를 다룬 판타지 소설이나 웹툰이 인기를 끈 지 꽤 되었다. 현실에서는 무능력하고 왕따였던 주인공이 먼치킨(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난쟁이 '먼치킨'에서 유래되어 게임 속에서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캐릭터를 의미)이 되어 통쾌한 활약을 펼치는 이야기 속에는 도저히 극복하기 힘든 세상을 이 세계라는 환상 속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MZ세대의 심리가 숨어있다. 


하지만 현실은 오늘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은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학교에서는 내신을 위해 주변 친구와 경쟁하고 직장에서도 밀리지 않기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미 경쟁은 죽을 때까지 삶을 통제하는 절대 강자(먼치킨)가 되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은 이미 그 순수한 의미를 잃어버리고 심지어 성공을 위해 불공정까지 눈 감는 사회로 악화되고 있다. 


재화가 한정된 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경쟁에서 패배한다. 흔히 빠지기 쉬운 함정이 '나는 다르다. 어쩌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자 않을까' 하는 막연한 자신감을 확신하는 것이다. 자신감은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극복하는 긍정적 동력이지만 자칫하면 부정적인 에너지가 될 수도 있다. 경쟁에서 조그만 성공이 가져다주었던 쾌락을 잊지 못해 다시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경쟁 중독에 빠져 드는 것이다. 마치 도박판에서 초심자의 행운에 취한 참가자가 모든 것을 다 잃을 때까지 도박에 중독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한국 사회는 급격한 경제적 변혁을 겪으면서 공정한 경쟁을 통한 능력 주의를 넘어 불공정한 성공마저 추앙하고 있다. 전쟁을 거쳐 기득권이 붕괴되며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을 극복하고 일부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중산층으로 올라서면서 우리는 치열함 자체를 기회로 착각하는 '무한 경쟁에 대한 신화'를 만들어 냈다. 결과적으로 청소년에게는 불행함을, 청년에게는 패배감을, 중장년에게는 무기력함을 방치하는 사회에서 구성원들은 멈추지 않는 경쟁의 수레바퀴를 돌리며 그 수렁에서 탈출할 수 없다.


치열한 경쟁을 넘어 심지어 <주도권을 남에게 맡기는 삶>까지 받아들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돌이켜 보면 90년대 초중반 전산학과(컴퓨터 공학)의 커트라인이 약대나 치대 수준과 비슷했던 적이 있었다. 3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 의치약 계열의 입학 성적은 고등 최상위권으로만 도배되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비슷한 고등학교 성적으로 공대에 입학했던 친구와 의대를 갔던 친구의 인생은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학 교수가 된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기관의 연구소에 입사했던 사람들은 이제 퇴직을 걱정하며 회사의 눈치를 보는 처지가 되었다. 그때 성적으로 전문직이 될 수 있는 학과로 갈걸 하면서 후회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직장인과 전문직의 본질적인 차이는 의외로 간단하다. 크게 보면 1. 수입&안정성 2. 자기 주도적 삶, 두 가지가 아닐까. 수입과 안정성은 삶에서 생각보다 중요하다. 젊어서는 돈이 없어도 멋짐을 유지할 수 있지만 나이가 들어 돈이 없으면 자존감이 높은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기력함을 느낀다. 


수익은 그렇다 쳐도 사실 훨씬 더 중요한 차이는  '삶에 있어서의 자기 주도성', 즉 자존감을 유지 가능한가 여부에 달려 있다. 직장인은 기본적으로 창업을 하지 않는 이상 조직의 일부로 근무하다 퇴직하게 된다. 주어진 업무에만 충실하다 보면 내 삶에 있어 자기 주도권이 상실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끓는 물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와 다름없다면 슬픈 일이다.  


일하는 회사의 성장은 소속된 직장인의 성장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잊고 있다 회사를 나오게 되는 순간 해고는 살인이 된다. 의사와 같은 전문직은 회사에 소속된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자기 주도적 삶을 고민하는 기회가 많다. 이런 작은 차이가 나이가 들면 극복하기 힘든 장벽을 만들어 낸다.


자녀에게 공부를 하는 이유와 동기를 물어본다. 스스로의 꿈이 있는 아이는 자기가 주도하는 삶을 살아갈 직업을 알아보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 부여를 한다. 세상을 혁신할 대단한 기술이나 발견을 하면 좋겠지만 너무 이상적이고 추상적이기에 실제 그런 정도의 영재는 소수다. 내가 영재가 아니었다면 나의 아이도 역시 영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현실에서는 이른바 상위권 대학을 졸업할수록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고, 갑질이나 험한 꼴을 안 당하며, 자신의 시간을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자녀가 원한다면 사교육을 통해서라도 더 나은 경쟁력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인생은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닌 대학 졸업 후에도 50년 이상 헤쳐 나가야 할 마라톤이기에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해서는 꼭 고민해 보아야 한다. 평생 죽어라 한 공부가 남을 위한 좋은 일만 해주는 결과가 되어 정작 본인은 나이 들어 쫓겨나게 된다면 비극이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그 끝은 다를 수 있다. 어떤 직종이든 상위 5%는 성공을 이루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 가짐의 선택은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주도하는 삶을 찾기 위해서는 당장의 수입을 떠나 스스로 고민해 보아야 한다.


경쟁 중독이 갈수록 심화되는 냉혹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의 본질을 항상 생각하며 고민해 본다.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남을 위해 혹은 타인의 눈치를 보며 살 필요는 없어. 너 자신을 위해 살아라'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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