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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Oct 20. 2022

희생과 행복: 가족을 위한 희생이 행복의 조건이 될까?

현대 사회에서 수입이 가장 많은 직종은 사업가, 연예인, 전문직 등 위험은 있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개척을 해 나갈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직장인이라도 업종에 상관없이 상위 5% 이내에 속한다면 개인 시간과 수익면에서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부족하지 않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95%에 속하는 평범한 우리는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기에는 항상 소득이 부족하기에 작은 경제적 이해득실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가정 경제를 지탱해야 할 가장의 무게감은 인류의 시작부터 계속 이어져 왔겠지만 고도화된 자본 사회에서는 과거와는 조금 다르게 평가받는 듯하다. 과거 시험을 준비하며 평생 글공부에만 몰두하던 조선 시대의 선비는 가족 구성원들의 고생과는 별개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저 무능력한 한량 이상의 평가를 받기 쉽지 않다. 


30대까지는 기회의 문이 열려 있기에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도전은 권장되기도 할뿐더러 설령 실패하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 그러나 40대를 넘어서면서부터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이 급격하게 위축되는 것도 부정하기 힘든 현실이다. 결혼 후 자녀가 있다면 자기만족을 위한 삶보다는 가족을 위한 삶을 우선시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도 선호된다. 비유하자면 자유로운 베짱이에서 둥지에 매인 일개미로 변화하는 셈이다.  


짧은 인생에서 자기를 위한 삶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왜 우리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희생이라기보다는 행복이라고 느끼며 만족하는 것일까 궁금한 적이 있다. 인간의 이기적 유전자를 억누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미처럼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일만 하다 죽는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가정을 부양하기 위한 부모의 희생은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유전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나의 자녀는 유전자 중 50%을 공유하고 있다. 개미의 경우 유전자 DNA의 구성 비율로 볼 때 한 여왕개미에서 태어난 동족이라면 유전자의 75%을 공유하고 있다. 즉 일개미들은 자신의 동료가 복제된 개체라고 볼 수도 있기에 전체 집단을 위해 일하는 것은 곧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과 동일하다. 일개미가 자식을 낳지 않고 일만 하며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개미가 착해서가 아니라 최대한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이기적인 행동일 뿐이다.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공감하기 힘들다. 겨우 50%의 유전자만 공유하는 부모나 자녀를 위해 100% 헌신하는 것은 경제학적으로 타산이 맞지 않는다. 본인의 여력이 100%라면 50%만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타당하고 나머지는 자신을 위해 소비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나는 언젠가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지만 유전자는 죽지 않고 후대에 이어진다. 즉 유전자를 최대한 남기기 위한 유기체로서의 생명은 죽어도 죽지 않기에 합리적인 선택을 취하게 된다. 만약 본인의 능력이 탁월해서 다른 이들보다 200%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면 이중 절반인 100%만 소비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능력이 충분할 뿐 실제로는 많은 이들은 평균을 만족하지 못한다. '원인의 20%가 결과의 80%를 만든다'는 파레토 법칙은 잔인하지만 개인이 얼마 정도의 희생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때도 유용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80%의 후자로 능력이 충분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본인의 여유 대부분을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투입해야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솔직이 인정하자. 


싱그러운 바다 바람을 맞으며 탁 트인 이국의 해변에서 코코넛을 마시고 싶다면 자신의 능력치를 다시 한번 분석해 보자. 당신의 능력치가 높다면 20%만 쓰고 80%는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만원이 넘는 점심 메뉴를 보며 고민하는 현실 앞에 좌절할 필요는 없다. 결국 가족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것을 이기적인 유전자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자손을 통해 진화된 유전자의 능력치가 상승한다면 이미 나의 유전자는 현재에도 충분한 보상을 받은 것이다. 힘내자 나의 유전자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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