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분노하는가! 왜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혼돈의 가져다주는 분노와 갈등의 사이

by 디지털전사

맹렬히 불타오르는 분노가 휘발유를 들이붓듯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타오를 때 그 화를 잠재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에는 예사롭게 넘어갔을 만한 사사로운 일들조차 감정의 기복이 심해집니다.

나와 사상과 생각이 틀린 사람들을 보면 괜스레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한대 쥐어박고 싶기도 하지요.

외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거나 차마 욕설로까지 표출되지 않기에 귀로만 들리지 않을 뿐 순간적으로 얼굴에 떠오르는 경멸의 표정까지 가면 속에 숨기는 자신의 모습이 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조커(joker)처럼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배트맨 다크 나이트(Darknight)에서 정의로운 검사였던 하비 덴트가 사고로 부인을 잃고 얼굴까지 심하게 다치게 되면서 악과 선 사이의 내면의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악의 화신으로 변해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좌절감에 빠져 있던 그에게 찾아온 조커가 이야기합니다.


일이 계획대로 되면 아무도 놀라지 않아
그 계획이 끔찍해도 말이야
내가 내일 언론에다 윤간 범이 총 맞아 죽을 거라든가 군인을 가득 태운 트럭이 폭발한다고 해도

아무도 안 놀라

전부 다 계획의 일부니까

하지만 하찮은 늙은 시장 한 명이 죽을 거라고 하면

다들 정신이 쏙 빠져!


정해진 질서를 뒤엎으면 모든 것이 혼돈에 빠지지.

혼돈은 공평해...


조커는 겉모습으로만 보면 니체나 쇼펜하우어의 염세론적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캐릭터인것 같습니다.

엔트로피 증가의 법칙에 필연적인 결과인 혼돈이야말로 바로 세상의 본질,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에 예상 가능한 삶을 추구하는 평범한 인간의 선악 개념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미친놈으로 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혼돈이 우리의 삶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으로 찾아올 때 때로는 그 충격이 너무 커서 감정을 통제하기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실망과 슬픔 그리고 깊은 우울증까지 동반하는 혼돈은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선인들은 불행은 항상 홀로 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계획되고 이루어지지 않는 삶에서 가끔씩 불쑥 찾아드는 혼돈은 연쇄 반응을 일으키기 쉽기에 혼자만의 싸움으로는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혼돈은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기에 익숙해지기 어렵습니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계획대로 수금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현실적인 자금 압박으로 마음이 괴롭게 됩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느끼는 실망감은 시간이 흐르면서 분노로 바뀌고 혐오의 감정으로 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거의 일 년 가까이 지급해야 할 상품 대금을 계속 말을 바꾸며 지급하지 않는 태국 모슬렘 바이어가 있습니다.

돈이 없다고 하면서도 라인(line)이나 위챗(wechat) 같은 SNS 계정에는 해외여행을 다니며 멋진 사진들을 계속 올리더군요.

한국 업체에게 사기당했다고 해서 협회까지 쫓아다니며 업무를 처리해 주고 방문할 때마다 대형 차량까지 렌트해 가며 지방 공장 방문까지 세심히 협조해 주었는데 이용만 당한 것 아닌가 싶어 참 허탈합니다.

돈이 나쁜 것이지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고 머리는 말하지만 사람인지라 자연스레 미워하는 감정이 가슴에 생기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나 봅니다.


정치 및 경제 사회적으로도 혼돈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며 생존의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가장들의 긴 밤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첨단 디지털 기술 발전은 찻잔 속의 출렁거림이 아닌 사회 전반에 거대한 쓰나미를 불러오고 이는 단순한 소나기나 너울이 아닌 준비되지 않은 다수의 대중을 경제적 빈곤함으로 침몰시킬 혼돈의 폭풍우임을 알기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아빠 힘내세요를 부르는 천진한 아이들에게는 혼돈의 밤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부모의 마음입니다.

아프리카 부족의 생활 습관을 데이터화해 연구해온 영국 대학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들수록 노인이 잠이 줄어드는 것은 진화 심리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결과라고 합니다.

야행성 맹수를 경계해야 할 필요성으로 인해 부족의 누군가는 항상 깨어 외부를 감시해야 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역할이 노인의 행동 유전자에 각인되었을 거라는 해석입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Если жизнь тебя обманет]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던 푸시킨의 시의 후반부가 기억 나시는 지요?


시는 이렇게 마무리를 맺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에 찾아오는 혼돈은 장기적으로 보면 우리를 더욱 강하게 하는 훈련의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 힘들고 정신없던 시간이 지나가면 추억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고 그때의 고통도 소중함으로 남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 너무 견디기 힘들다면 잠시만 다 내려놓고 밖으로 떠나겠습니다.

달콤한 초콜릿과 부드러운 차 한잔의 여유로움이 대나무 숲의 살랑거리는 바람과 어울리면 불청객으로 찾아온 혼돈도 좋은 친구로 남게 되지 않을는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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