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디쓴 부끄러움은 왜 우리의 몫인가? 민주화에 대하여

by 디지털전사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자는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시간은 반복되지 않지만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몇 년 전 보았던 '최종 병기 활'이란 영화의 첫 시작은 평화로운 마을에서 열리는 혼례식 장면입니다.

갑자기 땅을 뒤 흔드는 소리에 사람들은 웅성거리는데 청의 기병대가 쳐 들어와 학살이 시작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포로가 되어 끌려가고 맙니다.

'환향녀'란 너무도 부끄러운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슬픈 역사의 시작입니다.

당시 끌려간 조선의 백성은 대략 50만 명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최명길이 명나라에 보낸 서신과 당시 심양 인구 60만 가운데 상당수가 조선인이었다는 기록을 볼 때 크게 과장된 수는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

영화에서는 활을 귀신 같이 잘 쏘는 영웅이 청군을 추격하여 갖은 고난 끝에 끌려간 신랑과 신부를 구하고 적장과의 마지막 결투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도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 남아 있던 서글프고 찝찝한 감정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지내고 있었습니다.


최근 북한과 미국의 신경전과 우리를 둘러싼 국제 정세를 살펴보다 보니 잊고 있던 서글픈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평화로운 마을의 백성들은 졸지에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그들을 보호해야 할 조정과 관군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난리를 겪었던 우리의 조상들에게 국가의 존재 의미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과연 백성들이 평화롭다고 생각하며 지내던 일상이 진정한 평화라고 부를 수 있을 까요.

갑자기 불쑥 찾아오는 난리에 맨 몸으로 맞서고 영웅에 의지하여 고난을 극복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쓰디쓴 부끄러움입니다.


외세의 침략 때마다 자발적으로 재산과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나라를 지킨 백성들과 정신은 대단한 것이지만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비참할 뿐입니다.

국가가 민중을 지키지 못한다면 나라의 존재 의의는 없습니다.

적을 물리치고 난 뒤 그들의 창끝은 임금님에게로 향했어야 하지만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고, 다음 난리가 날 때까지 개돼지처럼 죽어라고 일을 하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현재 주도적으로 북핵 위기를 극복해야 할 우리가 방관자의 위치에 놓인 원인 중 하나는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던 전임 정치인들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제 그들은 단죄받아야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촛불로 대변되는 시민들의 힘으로 변화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철옹성 같았던 못난 대통령을 탄핵하여 바꾸었습니다.

시민 스스로 국제 정세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국가가 나서서 외교와 국방 정책으로 시민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은 무능하고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정치인들이 정권을 창출하게 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맨몸으로 적을 막아내는 영웅이 아니라 정부라는 국가 시스템을 통해 자신들을 지켜줄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키워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민주화를 향한 신화는 이제 다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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