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 4일차. 2019.6.13(목)
아침식사는 로비에서 커피, 전날에 산 바나나, 크로와상, 요거트로 간단히 해결하였다. 사실 여행을 다니다보면 체력 고갈이 쉬이 오니, 꼭 아침을 챙겨먹는데, 생각보다 과잉섭취가 태반이다. 체크아웃 후 가방을 락커에 넣고, 다시 아르세날르 관으로 이동했다. 굳이 말하자면 급행격인 바포레토 6을 타고 지아르다니공원까지 갔다가, 4.2로 갈아타고 아르세날르로 향했다. 비엔날레 초대작가의 작품이 공원쪽과 아르세날르쪽에 분산이 되어 있고, 지아르다니쪽과는 다른 국가관들이 포진해 있었다.
압도감은 요즘 미술의 또 다른 특징이다.
아무래도 이번 전시에서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작가는 지아르다니관의 가장 중심 위치에 있었던 Sun Yuan and Peng Yu 작가이다. 아르세날르관 내에 정기적으로 귀를 찢는 소리가 나서 다른 전시를 보면서 내내 신경이 거슬렸는데, 돌아보다 보니 앞서 말한 작가의 작품이었다. 커다란 의자 위에 천을 씌운 모습을 실리콘으로 캐스팅을 떠 놓았고, 마치 데미안 허스트가 사용했던 수족관 같은 투명한 상자 안에 넣어두었다. 설명을 읽어보니 이 의자는 링컨상이 앉은 그 의자인 모양을 차용한 것. 시간이 조금 흐르자 그 의자의 중심에서 빠져나와 있는 긴 고무관을 통해 압력가스가 분출되기 시작하고, 가스가 터져나오는 소리가 귀를 찢으면서 전체 전시장을 압도했다. 무엇보다 그 고무관은 압력을 못이기고 제멋대로 춤을 추는데, 기괴하기 짝이 없다. 그 작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가가 그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이차적 문제이다.
압도감, 그 작가가 지아르다니의 주전시관에서 선보인 엄청나게 큰 기계팔뚝과 같이, 비슷한 유형의 압도감을 느끼게 만든다는 것. 그것이 관객을 끌어당기는 힘이었다. 다른 이들은 어찌 생각할지 잘 모르겠다만, 이번 전시의 제목인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에 부합되기도 하고. 이들이 수상을 하진 못했다만,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작품을 선보인건 사실이다.
Sun Yuan and Peng Yu, Can't help myself, 2016
시끄럽고, 기괴하고, 거대하다.
눈길을 떼지 못하도록 압도감이 느껴지는 작가의 두 작품들. 작가는 두명의 중국인 그룹이다.
아르세날르 주전시관에서도 ‘회화’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회화는 전체 작품 가운데, 서너점에 불과하다. 그간 예술이 충격적인 그 무엇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던 탓인지, 이제 예술안에서 비슷한 작품이 반복될때, 우리는 그 작품에 대해 관심을 잃게 되는게 맞는것 같다. 총알이 박힌 시멘트 벽을 끌어다 전시장에 세워놓는 것, 기괴한 인형들과 조형물들은, 어찌보면 비엔날레 관을 좀 진부하게 만드는 느낌을 준다. 그 작품들이 후졌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한국작가 강서경의 작품 역시 단아하고, 조용한 동양화적 느낌을 주는 미니멀한 작품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작가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작품은 그곳에 참여한 작가들이 재기발랄하고, 요란하고, 거대하고, 색깔이 강하고, 역동적이고, 관객을 압도하는 시공간을 선보이는 것에 반해 고요한 느낌을 주장하고 있어, 아무래도 관람객의 눈길을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해 보였다.
좀더 기억에 남는 작업물은 도자기를 이용한 소리생산을 했던 작품들이었다. 뱅글뱅글 도는 레코드판 위치에 요철이 있는 도자기를 올려두고, 그것을 긁는 소리를 모아주거나, 정기적으로 부딪히게 해서 일정한 잡소리를 만드는 작품들로 커다란 공간을 채웠다. 각각의 작고 부산스럽지만 사랑스러운 소리는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어 흥미를 일으킨다. 이들 소리들을 생산하는 구석 쪽에 한명의 여자와 한명의 남자가 누워있다. 미동도 안하고 누워있어서, 관객을 가장한 소리 생산 도구인가 해서 나는 열심히 동영상을 찍었다. 마치 사람이 아닌 듯, 누워있던 그 둘이 나중에 보니, 실제의 사람이었다. 느릿하게 눈을 뜨고, 그 눈을 깜빡이거나 고개를 돌리는 행위 조차 기계인형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 그녀가 일어나 앉을 때까지 나는 계속 쳐다보며 '사람일까? 기계일까'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점. 사람이라는걸 알아챈 이후, 내가 너무 오랫동안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함과 민망함이 교차했다.
점심을 먹고나니 2시30분, 서둘로 기차역으로 가야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영이와 나는 마음이 왜그리 여유로왔던걸까, 수상 버스 정거장까지 부근의 전시장도 들르면서 천천히 나왔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버스가 안온다. 그때부터 초조해지기 시작..... 결국 삼십여분을 기다린 후, 느릿느릿 가는 수상버스를 타고, 마지막 정거장인 P.LE. Roma에 내려 서둘러 택시를 탔다. 우리의 마음과는 달리 택시운전사는 여유가 있었고... 정말 노력했지만, 베네치아 메스트레역에 기차가 출발할 시각에 도착. 아아, 급기야 우리가 타야할 기차를 놓쳤다...
우여곡절 끝에 다음시간 볼로냐 경유편 기차를 예매했으나, 마음이 꽁해 바로오는 아무 열차를 타버렸다.(이 기차는 우리가 못탈줄 알고 기차표를 역무원이 예약을 안해줬는데, 알고보니 그 기차는 연착되고 있었던 것)를 탔다. 엎친데 덮친다고 할까... 1등석에 조차 사람들이 가득 서서 간다. 자리는 커녕, 서있기도 힘든 환경인데, 좌석 바깥쪽에 있으니 덥고 땀이나 견딜수가 없었다. 염치불구하고 계단에 앉은 젊은 처자도 있건만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어, 지영에게 다음번 역에 그냥 내려서 우리가 예약한 기차를 제대로 타고 가자고 했다.
내린 곳은 Padova. 약 30분 여를 기다리니 다시 테르미니역행 기차가 왔고, 그 기차를 타서 우리 좌석으로 갔다. 앞기차에 비해 비교가 안될만큼 여유로왔다. 이번 기차는 우리 자리 말고도 빈자리가 넉넉한 것 보니, 삼십분여전의 복잡한 상황이 이해가 안간다. 아무튼 기차를 타고 수다삼매경을 떠는 와중, 기차가 또 한번 선다. 순간, 놀라서 지영과 나는 ‘혹시 여기가 볼로냐 아냐? 라며’ 놀라서 뛰쳐나가려고 했는데, 마침 주변사람이 "아니다. 여긴 Ferere다. 볼로냐는 여기서 100킬로 더가야 한다"고 우리를 진정시켰다. 휴우... 이래저래 기차를 놓쳐 마음이 불안불안한 상태라고나 할까.
조금후, 볼로냐에서 내려 내린 역에서 한참을 갈아타야할 기차를 기다리는데, 이번에도 또 기차가 도착할 시간에 다른 플랫폼에 우리가 타야할 기차 브랜드인 Treniatalia 기차가 서있다. 또 한번 놀라서 지영에게 너가 확인한 플랫폼, 정확한것이냐.. .확인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다시 또 물었다. 표를 보여주며 내가 탈 기차가 설 플랫폼이 여기 맞냐고 하였더니, 자신의 표와 비교하면서 금새 맞다고 했다. 휴우... 뭔가 또 잘못되는것이 아닐까, 정신줄 놓고있다가 멍청하게 기차를 놓치는것이 아닐까 하는 노심초사의 마음이, 확인 확인을 불렀다. 다행이 우리가 기다리는 기차 자체가 10여분 연착을 한 것. 아니 이렇게 모든 기차가 십분씩 다 연착을 하는데, 처음에 우리가 탈 기차는 연착도 안했을까. 그래도 같은 가격의 예약 안에서도 비즈니스석을 잡아 준 것은 감사. 비즈니스석에선 비스켓과 커피나 음료 등이 제공된다.
여행은 불안의 연속의 다른말일지도 모르겠다.
이래저래 우리가 잘못했던 점들을 되짚어보다보니, 택시운전사가 우리가 서두르고 정신없다는걸 눈치챘는지, 바가지를 씌웠다. 메스트레 역까지 20유로면 충분했을텐데.. 우리에게서 40유로나 받아갔던 것. 헉... 돈을 낼때는 정신이 없었는데, 이러고 나니 점심때 수다떨며 여유부린 것, 바포레토 정거장까지 나오면서 여유롭게 사진찍으며 다른 전시장에 들어가서 보고 나온 것 모두가 후회스럽다. 여행은 원래 이런 것이구나... 비엔날레를 보러 이 멀리까지 왔는데, 보고싶은 것을 다 못보면 더 후회가 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일정을 수정해서 베니스를 하루이틀 더 돌아보고 가야 할 것 같다. 특히나,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투아니아관을 못보다니. 사실 리투아니아관은 지아르다니 역에 위치하지 못하는 관계로, 아르네사르 영역 바깥에 세든 건물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 늦게 안 것이 문제였다. 사전 준비가 미흡했다.
적어도 여기 오기전엔 이곳저곳 더 검색신공을 발휘했어야 했던 걸까...
밤 11시 반이 되자, 나폴리 중앙역에 도착했다. 밤. 밤은 고요하고, 조용할 때 아름다운 법.
인적이 그친 광장에서부터 숙소까지의 400여미터를 걷는 동안, 움푹패인 돌바닥의 요철무늬는 왜 불편하게 이렇게 만들어둔걸까, 왜 나는 커다란 디카를 가방안에 숨겨넣지않고 달랑달랑 어깨에 매고 나왔을까? 거리에 앉아 술을 마시는 작자들이나 배드민턴을 치는 사내들은 왜 이 밤에 나와서 저러는걸까? 열대이상의 오토바이들에 모여앉아 뭔가 수근거리는 저들은 이밤에 무얼하는 걸까를 생각하며 걷던 중, 겨우 호텔에 도착했다. 아마도 나폴리의 치안이 안좋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더 겁을 먹었을게다. 지독하게 우리의 영어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 리셉셔니스트에게서 키를 받고 올라가 밤을 청했다. 아, 여긴 기차역에 가깝고 한밤만 보내면 되는 그럭저럭의 장점을 꼽고 가성비를 따져 고른 호텔이었다만... 우리에게 결정적인 한방을 매긴 점이 하나 있다. 싸구려 호텔에서도 다 된다는 와이파이의 미제공이 그것이다! 게다가 모든 전기컨센트에 한국에서 가져온 전원코드 돼지코가 하나도 안맞는다는 점.
지영과 침대에 누워, 내일의 렌트카와 호텔을 검색하는 사이 잠이 들었고, 베니스 1박을 더하기 위해 일정을 쥐어 짰다. 그러고 보니 밤거리가 무서워 흔한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
사족
레일패스를 소지해도, 이탈리아의 기차는 '예약'을 요구한다. 예약은 좌석당 10유로씩 비용을 청구하는데, 기차를 놓쳐도 시간변경을 하는경우 추가비용을 더 받지는 않는다. 문제는, 직행을 놓친경우 경유편으로 두번 기차를 탈때다. 두번타면 기차당 예약비를 받으니 20유로를 지불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