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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이탈리아 남부로 휴가를 떠나...

여행기록 5일차, 2019.6.14(금)

by CALM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커피가 몹시 먹고 싶어 세수도 안한 상태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오늘의 움직일 양을 생각하며 커피 두잔에 우유한잔, 요거트, 빵 두조각을 먹고, 올라오면서 보니 고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단체로 식사를 하러 내려왔는데, 각자 커피한잔에 크로아상 하나 정도를 먹는 것을 보며, 방금 먹었던 식사가 과연 온당한 것인가에 대한 반성을 한다.


나폴리 중앙역앞의 교통체증

간밤에 예약해 둔 Hertz 사무실로 가서 귀여운 Fiat 차량을 한대 빌렸다. 차를 빌린 곳에서 도보 5분거리에 있는 호텔로 와서 짐을 싣기까지 한시간여가 걸릴만큼 끔찍한 교통 체증이다. 서울에서는 이제 만나기 힘든 이 악몽같은 교통체증을 이 먼곳까지 날라와 겪다니. 사방팔방에서 클락션을 울려대며 승용차와 오토바이 그리고 어마어마한 덩치의 관광버스들, 길을 걷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다. 이십오년차 베테랑 운전면허이지만, 행여나 옆차와 사고가 일어날까봐 신경을 쓰며 운전을 했다. 에효... 수십분을 씨름하고서야 겨우 나폴리 시내를 빠져나왔다. 차를 꺼내는 순간부터 차량을 반납하러 갈 일이 걱정이다.


폼페이로 고고~

고속도로를 진입하여 ‘폼페이 유적’으로 향했다. 폼페이는 나폴리에서 고속도로 약 40분 거리에 위치한다. 당시로서는 하나의 도시였을테니 공간은 넓직하다. 지붕은 없고, 벽만 남아있는 그 곳을 강렬한 햇볕 쪼여가며 천천히 돌아다녔다. 조금만 돌다보니, 이 곳 폼페이 유적지는 아무래도 가이드 투어가 필요한 곳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햇볕은 만만치 않아 반드시 모자와 선글라스가 필요하고, 핸드형 선풍기나 부채가 있다면 더 좋았을 터이다. 종일을 돌아다녀도 다 못볼테고, 가이드가 없이 지도를 보고 어느 포인트를 구경해야 할지는 그야말로 알길이 없으니 난감지경.

IMG_9770.jpg?type=w1 폼페이 유적지의 초입

엄청나게 넓은 부지에 분포된 유명한 장소와 집을 찾아, 이미 폐허가 된 도시를 거니는 것이 관광의 포인트이다. 베수니오 화산이 폭발할 당시(AD 79년)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그 시기라면 인구가 아주 적을 터였으므로, 이 공간이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하게 발달한 도시였을것으로 상상한다. (한반도라면 국가가 생성될 즈음에 불과한 시기인데다, 당시의 삶의 모습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는 시기라는걸 상기해보자.) 화산재에 묻힌 이곳을 19세기에 이르러 발굴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발굴중이란다. 여기저기 둘러보니 공사중으로 못들어가는 곳이 많고, 가끔씩 공사인부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발굴이니 단순 노무자는 아니겠지...)


집들은 반듯 사각형 형태였는데, 전체 도시의 공간들이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다. 벽에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바닥은 타일로 문양을 새겨 넣었다. 일정한 도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 가운데 정원을 둘러싼 형태의 이층집 공간들, 천정의 구멍을 통해 빗물을 받아 저장하고, 하수도 시설이 되어 있다는 점들이 신기하기 짝이 없다. 서기 이천년이 넘는 지금 이 시점, 지구위에 하수구나 상수도 시설이 안된 지역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이 유적에는 2시간 코스, 3시간 코스, 7시간 코스 등으로 안내지도에 표기되어 있다만, 그걸 꼼꼼히 다 돌아볼 일이 있겠냐 싶다.


어차피 우리가 전문적인 연구자가 아닌바에야. 그러니 처음엔 지도를 펼치고 여기를 갈까 저기를 갈까 고민하였지만, 결국 발길 닿는 대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이 최선이라는걸 알았다. 한참을 돌고보니, 가이드를 따르면 무엇하랴, 우리가 보는 것이 아는 것과 무에 깊이있게 다를까 싶기도 했다. 사실, 여기저기 투어가이드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열심히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옆에서 살짝 엿들어보니 대부분 당시 상황을 유추하는 해설들이다. 굳이 한국어로 듣지 못해도 영어투어도 괜챦을 듯 싶은 것이, 현지 가이드의 영어발음이 워낙 또랑또랑하고, 명확해서 알아듣기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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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카 사용자를 위한 팁

초입에서 하루왼종일 10유로를 받는다는 말에, ‘쳇, 여기서 뭐 하루종일 있겠어?’라고 하며 다른 곳을 헤매다가 결국 바로 옆집에 시간당 3.5유로의 주차요금을 받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명심하라. 이곳은 들어가면 무조건 3시간 정도는 기본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주차요금때문에 봐야할 것을 안 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 All day 10 Euro가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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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적지 안에, 발굴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내 바램이었을 뿐이다. 당시 생생한 동작형태로 화산재에 휩싸여 오늘날까지 남은 당시 주민들의 몸은 폼페이오 유적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C 출입구 부근에는 커다란 유리돔 형태의 전시시설 안에 그 사람들의 캐스팅을 전시해두고 있다. 이 캐스팅은 이천년간 흙 화산재 안에 사람 형태의 공간으로 비어있던 곳에 석고를 부어 만들은 것이다. 화산재는 굳고, 그 속안의 생명체는 썩고 사라져 공간이 된 것.

IMG_9856.jpg?type=w1 유적의 C출입구쪽에 따로 마련되어 인물상이 보관전시되고 있다.

실제로는 유리형돔 안에 놓여있는데, 들어가지는 못하고 바깥에서 유리를 통해 볼 수 있을 뿐이다. 정말 가치가 있고 볼만한 것들은 아마 나폴리 박물관으로 다 옮긴 것 같다.


유적지의 오른편 끝쪽에는 경기장 같은 곳이 있고, 그 앞쪽에 커다란 전시장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현재 전시 주제는 'Vanity'이다. 무엇인고 하였더니, 당시 발굴된 장신구를 모아둔 전시장이었다. 그걸 '허영'이라고 이름짓다니 명품의 주요 생산지인 이탈리아인의 유머인 것인가. 마치 신라시대의 장신구 전시를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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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피 가는 길

폼페이의 주차장에서 부터는 지영이가 운전을 맡았다. 즐겁게 운전을 시작하고, 그곳에서 우리의 다음 목적지인 아말피 해안으로 이동했다. 구글 네비게이션은 아말피 지역의 뒷쪽에 위치한 높은 산을 가로질러 가는 방법과 길을 둘러 해안으로 이동하는 두 가지 길을 제시했다. 처음에 지영이는 산길로 가자고 하였으나 나는 반대. 굳이 왜 그 깎아지르는 절벽의 구불거리는 산길로 가야하는가 뭐 이런 의견이었다. 남편이었으면 응당 그리로 갔겠지만 말이다. 결국 고속도로를 통해 돌아오기로 했으나, 너무 앞차에 붙어간다는 내 잔소리에 이게 뭐가 붙어가는거냐 대답하다가, 빠져나가야 할 루트를 벗어나 버렸다. 아뿔싸.

The way to Amalfi

결국 조금 돌아서 아말피 해안으로 내려왔는데, 오호, 이 길도 쉽지않다. 길은 좁고, 굽이쳤으며, 한쪽은 낭떠러지인데다 커다란 투어차량들, 동네주민들의 과격한 운전으로 조마조마했다. 사실, 그러면서 아름다운 해안과 절벽에 세워진 오래된 건물구경도 다 했다. 아주 가끔 이런 데는 TV의 여행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뭐 그런 곳이 아닐까 싶고.


레몬 산지, 아말피 코스트 휴양지

이제 호텔에 짐을 풀고, 정말 나머지 시간은 노닥노닥하면서 즐기기.


이 나라, 참말이지 복받은 나라다. 오래된 문화유산, 풍부한 햇빛, 와인, 느긋한 성품... 여자들은 아름답고, 남자들은 더 아름답다. 모니카 벨루치가 막막 옆을 지나다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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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호텔 방을 나서서, 동네를 산책했다. 슬슬 걸으면서 레몬이 주산지인 이 곳에서 레몬식초와 레몬 올리브오일을 구경하고, 기념품 가게도 들렀다. 아무래도 두꺼운 운동화 때문에 발이 불편하고, 무거워 샌들이나 슬리퍼를 하나 사자 싶었는데, 호텔 바로 옆에 평범한 신발가게가 있다. 물건들의 원산지가 어디냐는 물음에 ‘오리지널 브라질’이라며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주인장. 아, 브라질의 물건이 자부심을 가질만큼 좋은가라는 생각이 얼른 든다. 시에스타를 시행하는 가게도 있는지, 가게들이 문을 걸어 잠근 곳이 꽤 된다.

아말피 해변

조금 후, 시원한 원피스와 모자를 하나 챙겨 샀는데, 여기 주인장 역시 ‘메이드인 이탈리아’라고 했다. 말에서 느껴지는 자부심. 아 근데, 농담 아니라, 오리지널 이탈리의 모자는 만오천원짜리임에도 스타일이 멋지다. 정말 자부심 가져도 될 것 같다. 별 생각없던 지영이까지도 예쁜 모자를 하나 사고야 말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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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을 낀 레스토랑에서는 익숙한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와 피자를 시키고, 식전음식으로 앤쵸피를 주문했는데, 대충 선방. 앤쵸피 맛난다. 앤쵸피는 서양식 멸치인데, 우리네 멸치 특대보다는 약간 큰 사이즈로, 반으로 갈라 펼쳐 제법 생선 느낌이 나고, 그 살이 씹힐 정도의 양은 충분히 된다. 레몬과 채소안에 살포시 누운 앤쵸피를 올리브오일과 식초와 다른 양념을 섞은 소스를 뿌려 낸 요리인데, 나는 아무래도 서양음식이 정말 잘 맞는 사람인 것 같다. 빵을 발사믹과 올리브오일에 찍어 먹고, 비린 것이 비리지 않은 이 음식들을 먹으면서 한번도 김치 생각이 안나는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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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나와 수영을 꿈꾸며 수영복을 하나 구매하고, 바닷가를 거닐었다.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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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의 슬로우 모션 기능을 이용해 바닷물 위에서 팔짝팔짝 뛰며 인생샷을 건지려 노력했으나, 주변에 아기를 데리고 나와 바닷가에서 산책하는 한 뚱보엄마의 미소만 만났을 뿐이란 말이다. ‘아이고, 저것들 뭘 저런걸 찍자고 저리 부산을 떠는건가’ 싶지 않았겠나. 막상 수영장을 나갔더니, 이미 클로즈. 수영장의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란다. 제법 수영장이 꽤 싱가폴 라이프를 연상시킬 정도의 규모는 된다. 우리가 이 호텔을 조금 비싼 요금에도 얼른 예약을 했던 건 이 수영장 때문이지, 안타까워도 참자. 우리에겐 여전히 내일이 있으니까.



아, 정말이지, 여행은 24시간이 알차다


방에 들어와 천정에 붙어있는 모기들을 퇴치하고, 테라스에 나가 지영이와 와인을 한잔 했다. 이 끝내주는 이탈리아 남부의 밤에, 무슨 행사를 하는지 마이크로 쩌렁쩌렁하게 어떤 아저씨가 노래틀고 난리다. 심지어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강남 스타일까지 들린다. 어휴...


지영이는 안드레아 보첼리와 사라 브라이트만의 실황을 유투브로 틀어준다. 요것만 있었다면 더 끝내줬을 텐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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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고속도로 비용은 나폴리에서 아말피까지 약 2.1유로 정도. 동전을 준비하는 것이 편하고, 아니어도 관계없다. 유럽의 운전여행은 서울에서 단련된 운전자라면 전혀 문제없다! 그런데, 아직도 유럽의 렌트카는 대부분 수동기어를 사용한다. 익숙하지 않다면 오토기어차를 렌트하기는 좀 힘들테니, 차라리 자율주행차를 기다리는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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