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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현대미술관의 조르쥬 모란디

여행기록 7일차. 2019년 6월 16일(일)

by CALM


베니스 비엔날레를 보러 먼곳에서 왔는데, 그걸 다 못고 가는것이 아무래도 억울한 듯 싶어, 지영에게 양해를 구하고, 베니스로 다시 가기로 하였다. 지영이는 피렌체를 가느냐, 로마를 가느냐를 살짝 고민을 했는데, 그곳의 반일 투어를 예약하고, 각자 돌아다니기로 했다. 나폴리 중앙 역에서 각자 로마 테르미니역과, 베니스(볼로냐 경유)를 예약하였다. 나는 아무래도 다섯시에 베니스를 도착할바에야, 그냥 볼로냐에 내려 볼로냐를 구경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어, 그리하였다... 이런 여행 방법도 좋다. 서로의 것을 고집하지 말고, 같이 다니다가 다시 떨어져서 다니다가 다시 또 만나 여행하는 것. 본인의 편의대로 여행하기. 어쩌면 품이 넓은 '지영이'니까 그런 여행이 가능했던게 아닐까 싶다. 여행할때마다 관계가, 여행이 엉망이 되었던 다른 파트너들을 생각해보면 말이다.

서로의 것을 고집하지 말고, 같이 다니다가
다시 떨어져서 다니다가, 다시 또 만나 여행하기


돌아가는 길, 이번에는 구글맵이 제공하는 꼬불꼬불 어려운 길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다행이 새벽인지라 마주오는 대형 버스도 없었고, 구비구비 산마을을 지나 고속도로를 타기까지 조심스레 운전을 했다. 사실 이런 길은 운전석보다 조수석이 더 무서운 법이다. 지도상으로는 너무 과하게 구부러진 길들이 있었는데, 느긋하게 운전하려니 그다지 과하지않다 싶었다. 외려, 끝도없이 구불거리는데다가 경사도가 급한 미시령이나 한계령 같은 곳이 더 위험했다. 나폴리시로 진입을 하여, 고속도로에서는 빠져나오자 말자 오분도 채 되지않아, 바로 나폴리 중앙역이 나왔다. 중앙역 바로 옆에 있는 공영주차장이 렌터카 반납장소였다. 애시당초, 렌터카를 빌릴때 꼼꼼히 확인을 했어야 했는데, 넓은 공영주차장 어느 곳에 차를 반납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어서 이쪽저쪽을 왔다갔다 했다. 알고보니 처음에 갔던 장소에서 반납을 받는게 맞았는데, 우리가 9시 이전에 도착을 하는 바람에 직원이 나와있지 않은 것이 문제. 헤매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직원이 출근했고, 아무런 문제없이 반납을 잘 했다!


기차를 함께타고 테르미니역에 지영이가 내리자, 노부부가 타서 내 옆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더 많은지, 모든 일(짐정리, 티켓보관 등)은 아내가 맡아서 한다. 움직이는것조차 힘겨워보이는 노인은 오로지 책만 읽고 있다. 커피도 물도 안마시고. 이 기차는 밀라노 행인데, 할머니는 밀라노 여행 책자를 가지고 탔고, 밀라노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다. 부부가 밀라노 여행을 가나보다. 거동이 힘들어도 양복을 차려입고 여행을 다니는 노인에 대해서 희한한 느낌이 드는건 사실이다. 볼로냐는 로마에서 약 세시간 가량, 이탈리아 전체 지도를 보면 거의 중심부 정도에 위치한다. 도시는 특별히 관광도시로 유명하지는 않았는데, 내 기억엔 그림책이 유명한 도시이다. 도서박람회가 아마 유명할 것이다.

볼로냐 거리

볼로냐에 1시반에 도착하였다. 어차피 베니스를 바로 갔어도, 어딘가 가기엔 너무 애매한 시간인지라, 나는 볼로냐에 휘휘 둘러볼 목적으로 가방을 챙겨들고, 기차예약을 변경했다.

볼로냐의 역 크기는 엄청나다. 역전체는 지하까지 삼개층을 쓰고, 기차도 지상과 지하 두곳으로 들어왔다. 이탈리아의 중심부 정도에 위치해서 여러대의 기차 환승역으로써 기능이 충실한가보다.

짐을 맡기고자 이리저리 팻말만 보면서 한참을 지상으로 이동했고, 길을 묻고 물어서야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아, 베니스 가는 기차 시간을 변경했다. 처음 이십여년전 유럽에 왔을때만해도 기차역마다 코인락커가 있었는데, 이곳엔 짐 보관소가 따로 있다! 살짝 들여다보니 창고 같은 곳에 여행가방이 가득 쌓여있다. 삼일여를 지영과 함께 하다가 갑자기 혼자가 되니, 확실히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특유의 느긋함이 없다고나 할까. 지영이는 잘 다닐까 걱정도 되고 말이다. 훗날, 지영이가 왠 걱정이냐며, 초행이라도 카드가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 옳은 말이다!


점심엔 간단히 KFC에서 치킨조각을 먹으며 네이버에 검색을 했는데, 다운받은 관광지도를 보니 볼로냐엔 ‘현대미술관’이 있다. 사실, 여행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볼거리’인데, 인터넷에서 찾아지는 이 볼거리라는게 참, 어떤 기준으로 선정되었는지 의심스럽다. 오래된 성당, 박물관, 궁전 등이 안내되어 있고, '볼로냐에 가면 꼭 이걸 먹어!'라는 음식점 소개들이 있다. 여행객이란 주어진 정보 안에서 겪고,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방문을 자랑한다. 그렇게 재생산에 재생산을 거치는 정보가 우리가 만나게 되는 인터넷 정보이다.(인터넷 정보뿐만이랴, 관광안내책자도 어쩌면 그닥 다르지 않을터이다.) 이탈리아 낯선 도시에 있는 성당을 가보면 무엇이 다르랴. 그곳의 역사와 풍광을 감상하고 배우는 시간들... 내 경우는, 시간도 부족하고, 딱히 성당을 가거나 도시의 첨탑을 올라가거나, 볼로냐 맛집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외려 볼로냐 지도 안에서 내 눈에 띤 것은 역으로부터 걸어서 약 십분 거리에 있는 현대 미술관 MAMbo .


목적지까지 걷는 길은 이 뜨거운 남부 이태리 햇빛을 막아줄 회랑식으로 건물이 길게 이어졌다. 이 도시에 있는 모든 건물은 걷는 자의 지붕이 되어준다. 비도, 햇빛도 가려준다. 이 도시들에는 신호등이 적고(방문한 날이 일요일이어서 일지 모르겠다만), 차와 사람이 북적거리는 기차역 주변을 제외하고는 차도, 사람도 여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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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관의 입장료는 6유로.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언제 끝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미술관에서는 지금 ‘현대 이탈리아 미술전’이 열리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현대'는 1900년대 정도를 일컫는 듯 싶다. 브리짓 라일리나 토니 크랙 과 같은 어쩌다 나도 아는 작가의 작품도 등장했는데(어머, 이들이 이탈리아 출신이었구나 놀라면서!!^^) 전시의 전반은 거의 회화가 많았고, 그래서 더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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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갈때는 몇층에 전시가 있느냐라고 물으니 한 층만 전시를 한다길래, 너무 전시가 짧게 끝날까 싶었는데, 돌다보니 이 전시관이 원래 모란디 미술관이었다고 했던 것처럼, 조르쥬 모란디 작품관이 이층 전시장 한쪽에 별도로 전시되고 있었다. 아, 모란디. 모란디에 대해는 몇해전 국내 시립미술관에서던가 전시가 있었는데, 막상 그곳에 가지 못해서 궁금했던 작가였다. 아주 스쳐가는 포스터만 봤어도 "어?"하며 매력을 느꼈던 작가다.


모란디 작품은 작은 소품들(약 8호~10호)이 주를 이뤘고, 유화작업들과 에칭 동판화 작업들로 전시장이 꾸며져 있었다. 모란디는 미술사에 기록될 획기적인 작품을 했던 작가는 아니지만, 주변의 여러 작가들이 사랑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가 1948년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작가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조금 놀랐다. 내가 들었던 여러현대미술 수업안에서 한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작가여서, 그가 그런 인물인지 몰랐다. 아는 건 적고, 안다고 생각한건 많은가 보다. 그가 사용했던 독특한 컬러감이 흔하게 회화 안에서 볼 수 있는 색이 아니었다는 점과, 일생을 반복적으로 집착한 정물 소재가 사랑스러웠다. 아마 내가 회색조 매니아여서 더 그런것일지도 모르겠다마안.

그는 정물을 주로 정면에서 그렸는데, 작은 작품들 안에서도 치열함이 느껴진다. 단 한 점도 같은 것이 없다는 점은 그가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언젠가 그림수업 중 교수님이 내게 한 말이 있다. “쉽게 그리세요. 그리고 쉽게 그리지 마세요...” 딱 모란디한테 맞아 떨어지는 말 아닌가!

비록 작은 그림이었지만 모란디에게서 딱히 설명할 수 없는 압도감 비슷한 감정이 느껴진다. 모란디의 회화는 기름기가 쪽 빠져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욕망 같은 것이 제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그렇게 느꼈는데, 알고보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뭐, 이런 건 그냥 내 느낌일 뿐이다.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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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화가' 조르조 모란디를 아시나요 ?
이탈리아 20세기 미술거장 조르조 모란디(1890~1964년)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는 전시가 국내 최초로 열린다. 20일부터 내년 2월 25일까지 서울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다. 모란디는 어떤 특정 유파에 속하지 않았고, 근대 이후 한국미술계의 관심이 주로 미국과 프랑스와 독일에 편중돼 온 탓에 우리나라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근대미술에선 프랑스 인상주의가 주로 소개돼 다양한.../아시아경제 기사 링크

그에 대해 나중에 구글링을 해서 어떤 사람인지 한번 찾아봐야겠다. 모란디 미술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란디에 대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그에게 있어 그림은 무엇이었는지, 일생을 어떠했는지라는 걸 좀 설명해줬으면 나같은 호기심충한텐 충분히 도움이 되었을텐데, 아쉽다.


발달한 IT 기술에 의존하여...

아, 좋은 점은 발달한 IT기술이다. 영어 문장이 빽빽히 들어있는 설명문 같은걸 보면, 아무래도 모국어가 아닌데다 중간에 모르는 단어라도 나올라치면 집중력이 떨어져 전체를 읽어보기가 매우 힘이 든데, 요즘은 네이버나 구글번역기를 열고, 사진을 찍으면 OCR에 의해 텍스트로 인식되고, 또 바로 번역되어 보여진다. 아, 얼마나 유용한 기능인지... OCR이 처음 등장했었던 25년전, 깨끗하게 스캔된 문자를 인식한 텍스트에 조차 20%넘도록 오타가 발생해서 매번 ‘이게 뭐야!’를 외쳤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어두움 안에서도 노출이 확대된 질나쁜 사진 안에서도 충분히 텍스트를 뽑아내는 알고리즘을 볼 때, OCR의 과거사를 아는 나로서는 놀랍고 고마울 따름이다. 브라보!


느긋하게 미술관을 돌아보고, 역으로 돌아와 베네치아 메스트레로 돌아왔다. 나이 어릴 때와 다른점이 무언가하면, 여행을 하면서 혼자서도 스파클링 와인이나 맥주 같은걸 시켜놓고 노닥거릴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점이다. 호호~


다시 베네치아 메스트레 역의 AO 호텔을 체크인했다.

잠시, 이 호텔에 대해 기술해보면, 호텔닷컴을 통해 처음 알게된 이 호텔은 뭐랄까 가성비가 아주 훌륭하여 다시금 예약하게 되는 호텔이다. 이 호텔은 독일의 체인호텔인데, 독일 이외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베네치아에 오픈을 했나보다.(독일 이외 지역은 베네치아가 유일한데, 이 곳이 독일과 가까운데다 관광지인지라 승산이 있다고 판단을 했을터이다.) 예전 유럽의 이비스 호텔이나, 일본의 도요코인처럼 인기 호텔로 승승장구 할 것이 눈에 보인다.

청결한 호텔 상태, 지극히 저렴한 숙박비이 특징이고, 숙박객을 위한 기물제공(냉장고, 커피포트, 전화기, 룸내 금고 등)은 없다. 다만 와이파이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 1층의 캐쥬얼바, 에스프레소 자판기, 간단한 놀이시설(당구대, 아기놀이터 등), 오피스 용도의 테이블을 갖춰 사람들이 내려와 쉬면서 교류하게 만들었고, 여행자 1인을 위해 도미토리 룸도 준비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실용적 호텔'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도미토리를 이용할 경우에는 시트비와 타올비를 별도로 내야하고, 짐은 코인락커에 돈을 내고 맡겨야 하며, 아침 식사 또는 점심 도시락을 원하는 경우 1인당 6~7유로를 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저렴한 호텔치고 청결함이 돋보이는데, 기름기 쫙 뺀 호텔이라 마음에 든다. 1박에 50유로 정도(2명이 묵을 수 있는 방).


또한. 이 호텔의 장점은 그 위치에 있다. 이 호텔은 비싸고, 오래된 건물이 많은 베네치아 본섬까지는 버스로 약 십오분 거리에 있는 메스트레 역 도보 5분거리에 위치하는데, 호텔 바로 앞에 베니스 본섬까지 가는 버스가 수시로 오가므로 아주 이동이 편리하다. 버스티켓은 로비에서 팔고! 43번 버스를 가득메운 사람들은 모두 AO 호텔에서 내린다. 주로 어리고 젊은 단체객이 많으니, 늘 로비는 맥주마시러 내려온 청년들로 북적인다. 전에 뉴욕에서 호스텔에 묵은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젊은 친구들의 파티도 즐거웠고, 단체여행에 참가할수도 있었는데, 여긴 그 정도의 서비스는 없었다.

https://www.aohostels.com/en/


짧은 기간 동안 먼 곳을 여행하는 경우, 긴 시간을 오가는데 다 버리는데, 참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특히, 유럽여행의 경우, 많은 이들이 밤기차를 애용하기는 하는데, 우리 나이쯤 되면 그건 좀 무리다. '그냥 여유있게 다니고 조금만 보자'가 차라리 낫다. 오늘의 경우, 새벽부터 장거리 이동에 애를 썼는데, 그래도 볼로냐를 들러 미술관을 구경했으니 보람이 있는 하루다.


사족

이탈리아 내를 이동할때 '유레일패스'가 있어도, 매번 좌석을 예약해야 한다. 좌석을 잡을때 무조건 10유로를 지불한다. 혹시라도 기차를 놓쳐, 일정을 변경해도 별도로 예약비를 더 받지는 않으니 크게 걱정할필요는 없다. 나폴리에서 볼로냐를 경유하여 베네치아로 갈때 두번의 기차좌석을 예약해야 하므로 20유로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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