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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ind 2017 (2017년 연말결산)

어쩌다 연말

by 유턴


17년의 마지막날, 작년 이 맘 땐 어디서 뭘 했는지가 궁금해 블로그를 뒤져봤다.


콜롬비아 살렌토에서 일행들 다 보내고, 혼자 새해를 맞이했더라.
재작년엔 뭐했나 봤더니 포카라에서 역시나 친했던 사람들 다 보내고, 썩 재미없게 마무리 했더라.
한국에 있을 때도 새해니 뭐니 이런 것들에 크게 의미부여를 안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본격적으로 포스팅을 시작하고는 지난 한 해 정도는 돌아보는게 괜찮은 행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365일 동안 뭘 먹고, 어딜 갔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름 궁금하기도 했고.
그래서 작년에도 요런 포스팅을 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쭉쭉 되돌아 볼란다.
스압입데 재미없진 않을걸???

2017년의 시작은 6개의 대륙 중 가장 하루가 늦게 시작하는 남미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16년을 맞이했던 네팔도 그랬고, 콜롬비아도 그랬고 춥지 않은 연말연시는 뭔가 생소했다.
물론 그 곳들도 다른 계절보다는 쌀쌀했지만 한국으로치면 가을 정도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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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렌토는 현지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 요 맘 때 인간들이 무지하게 많았다.
숙소에도 바글바글했고, 그리 크지 않은 길거리에 나와보면 명동까진 아니고, 신천역 정도는 됬던 것 같다.
정말 걷다보니 신천역 4번출구 앞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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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두어달을 누군가와 함께 다니다가 오랜만에 혼자가 되니 나쁘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공원에 앉아 맥주도 마셨고, 파스타먹으러 가서 와인도 자주 마셨다.
낮엔 카페가서 시간 참 많이 때웠고.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다행이었다.
왜냐하면 에콰도르부터 또 어마어마한 그룹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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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넘는 국경은 언제나 고되다.
콜롬비아 살렌토에서 에콰도르 키토까지의 여정은 정말 토할 것 같았다.
근 30여시간을 이동만 했다.
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말이다.
거기다 혼자였으니 순간순간 섬칫할 때도 있었고, 고독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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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무사히 키토에 도착했고, 뻔한 클리셰같은 이름인 '카르페디엠'호스텔에서 한 명 한 명 멤버가 구성됬다.
키토에서는 대충 한식이나 먹고 빠지려고 했는데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간들을 만나서 생각지도 못할 만큼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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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였으면 안 갔을 적도를 밟아보기도 했고, 계란도 세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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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6명의 그룹이 결성됬다.
콜롬비아, 에콰도르같이 윗동네에서 일행을 못 구한다면 꽤나 외롭게 브라질까지 갈 수도 있다던데 이 사람들 덕분에 큰 외로움 못느끼고, 남미를 돌았다.
밥도 같이 해먹었고, 술도 많이 마시고, 떠들기도 많이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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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면 생전 했을까 싶은 액티비티도 여행덕분에 하게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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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이 각자 일정상 4명이 되어 페루에 도착했다.
리마에서는 장원이 카메라가 털릴 뻔한 현장도 쌩눈으로 봤다.
역시 남미는 남미구나 깝치면 보람상조부르는건 시간문제구나 하는 교훈도 얻었다.


위 사진이 리마에서 바라본 태평양인데 서핑을 못해본게 아쉽기도 했지만 밤에 저렇게 바라만 봐도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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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청춘에 나왔던 와카치나에서 생애 첫 사막을 밟아보기도 했고, 버기카도 탔다.
놀이기구타는 느낌?
뒷자리가 재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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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는 안했지만 작은 기대조차도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마추픽추.
물론 개인차가 크지만 난 별로였다.
내가 좋아하는 (유)희열이 형님이 눈물을 보였던 곳이라 나도 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장원이랑 일부러 남들 타는 버스 안 타고 비맞으며 산을 올랐다.
그런데 눈물은 염병.
추우니까 콧물만 나오더라.
내가 갔던 날의 날씨가 너무 별로라 여길 썩 좋았던 곳으로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곳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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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때문에 힘들었지만 오히려 비니쿤카가 더 좋았다.
사진처럼 모든게 맑았던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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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를 지나서 볼리비아에 도착하면서 4명이었던 멤버는 장원이와 나로 줄었다.
다들 각자의 일정이 있으니 흩어지게 된다.
아마 장원이가 내 여행메이트들 중 가장 오래 함께한 친구였을테다.
볼리비아부터 남미아웃까지 함께 했으니 말이다.
같이 이것저것 참 많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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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파카바나 태양의 섬에서 바라본 해질녘인데 당시 내가 이런 말을 남겼다.
"남녀가 왔는데 여기서 키스못하면 빙신아이가."
물론 XY염색체끼리의 씁쓸한 자기합리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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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큰 기대 안 했던 우유니 사막은 "너 왜 기대안했어? 뒤질래? 두고 봐! 기대 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냥 밤이고, 낮이고 졸라 멋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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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며 영상이며 이 포스팅에 다 있는데 대외활동할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오늘의 Top 블로그'에 오르기도 했다.
이건 순전히 우유니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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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아르헨티나를 거쳐 기대했던 이과수폭포에 도달했다.
이과수는 기대했던 만큼 장엄했고, 할 말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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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리우에서는 장원이 덕분에 정말 색다른 경험을 하기도 했다.
맨 앞에 있는 친구를 장원이가 인도에서 만났는데 그게 인연이되어 브라질 리우의 이 친구집까지 방문하게 된 것이다.
말 그대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난 게스트로 출연한거고.
친구 이름은 네토.

네토 덕분에 위험한 동네도 편히 다니고, 밥 잘 얻어먹고, 술도 얻어먹고, 잠자리도 편했다.
한국에 꼭 한 번 왔으면 좋겠는데 쉽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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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이와 리우 공항에서 헤어지고 난 다시 네팔에 왔다.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같았다.
리우-상파울루-이스탄불-카트만두라는 비효율적이기 그지없는 항공권을 그것도 비싸게 구매했지만 이 곳을 다시 찾지 않는다면 난 한국에 돌아오지 못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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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포카라에서 10일가량을 보냈고, 감히 상상도 안 갔던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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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 도착한 것도 믿지기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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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여주에 도착했다는 게 더 믿기지 않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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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자마자 이런 걸 먹을 수 있다는 게 더 믿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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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후의 생활은 이런 벚꽃만큼 아름답지는 않았다.
차라리 적응이 안됬으면 할 정도로 2년 전의 나와 다를 게 없었다.
좀 바뀌었다고 생각했던 나쁜 습관들, 생각들이 그대로였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었던 나는 어디가고 오히려 한국에서 살 때보다 더 퇴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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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동생도 긴 여행을 떠났다.
여전히 ing다.



친구들과는 호주에서 서운함이 폭발한 이후로 약간은 어색했지만 어찌저찌 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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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봄이 되자 하나둘 남미팸이 한국에 돌아왔다.
신림동을 사실상 처음 가본건데 밤새도록 놀고, 다음 날 다 같이 해장국 먹고 헤어졌다.
대외활동했던 때가 생각났다.
서울살지 않을 땐 아예 끝을 보고 놀거나 일찍 헤어지거나... 극단적일 수 밖에 없다.
한국와서 힘들었을 때 가장 즐거웠던 날이었다.
잠 못 잔게 전혀 아쉽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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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에 귀국하자마자 복학한 학교.
이건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
어떻게든 학교에 개겨서 다음 학기에 복학해야했다.
오라고 오라고 난리를 치길래 왔는데 내 상태가 엉망이니 학교도 엉망으로 다녔다.
제대로 이수한 과목이 몇 안됬다.
그 덕분에 올해 졸업을 못하고, 내년에 한 학기 더 다니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되는데 그 때의 나라면 이렇게라도 버티는게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멘탈이 반은 나가있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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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요리하는게 꽤 도움이 되곤했다.
나름 호주 식당에서 일해봤다고 아부지어머니한테 파스타를 한 두번 해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셨다.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두번은 내가 끼니를 책임진다.
근데 이게 부담이 아니라 은근 즐거워서 예상치 못한 성취감을 주기도 했다.

여름엔 부모님이 동생보러 태국으로 여행을 2주간 가셨는데 이 때 참 다양한거 많이 해먹었다.
물론 자유의 몸, '프리 바디'라서 더 신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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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숫자들어간 공부는 참 나랑 안 맞는다는 사실을 또 다시 일깨워 주기도 했고.
재무, 회계 이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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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근 몇 년 만에 삭발도 했다.
스크래치도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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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때가 올해 중 가장 힘들었다.
무기력한걸로 따지면 인생을 통틀어서 최고였을 것이다.
그 무기력함이 우울감을 불러오고, 조금 위험한 생각까지 했던 하루하루였다.
과거에 힘들었을 때보다 한층 더 깊이 빠져들었다.
해외 경험이라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반동을 일으킨 것이다.
마치 요요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태웠다고 생각했던 나쁜 생각들이 고삐가 풀리자 더 무섭게 치고 들어왔다.
이런 나날들이 9월 중순까지 지속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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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면 캠핑 꼭 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여태 한 번을 안 했네.
이런 소소한 것들도 내 정신상태에 영향을 미쳤다.
외국에 있을 때 다짐했던 것들 중 제대로 지켜지는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할 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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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틈만나면 걸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을 거다.
그래도 걷고 나면 조금은 평화로워지는 게 있었거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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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려고, 최대한 사부작대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러 다녔다.
아부지 모시고, 축구도 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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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워홀할 당시 내가 거둬 먹인 동생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였던 효열이가 한국에 들어와서 거의 오자마자 만났다.
사실 거둬 먹인건 좀 오바고, 내 블로그를 보고 연락한 사람들은 거의 다 자리잡는데 도움을 줬다.
근데 내가 제일 안풀림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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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처럼 드럽게 덥고, 습했던 여름도 지나가고 하늘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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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됬지만 엘지는 가을 야구는 못했다.
가을에 야구를 하고 있는데 분명 가을 야구는 아니다.
이 날 오랜만에 직관하고 와서 우울증이 치료됬는데 문제는 홧병으로 전이되었다는 사실이다.
올해 한국시리즈를 보는데 엘지가 저렇게 우승한다면 난 얼마나 대성통곡을 할까...하고 상상해봤다.
아마 신천 바닥에서 팬티만 입고, 방탄소년단 DNA를 출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거 약속은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들이라는 것도 가봤다.
그것도 가장 친한 고향 친구의 집들이.
결혼도 1빠였으니 집들이도 1빠.
기분 묘하드라.
부럽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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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하나 듣고, 충동적으로 강릉에 가기도 했다.
아 강릉 좋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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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길었던 연휴덕에 유부남에 애 있는 친구들까지 모여서 돈 없었던 20대 생각하며 난장도 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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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크로스핏을 시작했던 이 맘 때부터 멘탈이 꽤 정리되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바로 등록 했다.

지난 학기와는 다르게 기계처럼 수업에 참여했고, 그게 일상으로 자리잡자 '내가 외국을 나갔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적인 생각으로 한국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게 좋은 건 아니지만 그 결과 상실감, 우울감 같은 것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래서 일상이란게 정말로 중요하구나 하고 느끼게 되었다.
일단 당장 앞에껄 보기로 했다.
다른 생각해봤자 지금 이 시점에 할 수있는건 별로 없으니 바로 앞에 놓인 졸업부터 해결하자.
이렇게 생각의 회로를 단순화했더니 마음이 꽤 편해졌다.


추워질 무렵 포카라에서 꽤 오랜기간 같이 있었던 병석이를 만났다.
그냥 서울에서 만났어도 의미가 있었을텐데 일부러 여주까지 와줬다.
나도 누군가를 우리집에서 재워준게 아마 처음일걸?
의미있던 1박 2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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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엔 어느새 은행잎이 물들고, 하나 둘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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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또 다시 즉흥적으로 을왕리까지 와버렸다.
나의 문제이자 어떨 땐 또 장점으로도 작용하는 즉흥성.
이 날은 덕분에 마음 정화하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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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극 초반에 만났던 동생들.
못 볼줄 알았는데 결국 만났다.
날 잊지 않고, 이만하면 까먹겠구나 싶을 때마다 먼저 연락줬던 친구들인데 이 친구들이 한국와서도 적극적으로 보자보자 했다.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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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고 호주에서 받은 연금까지 바닥나자마자 '중고나라'라는 정글속으로 뛰어들었다.
여행 때 썼던 것부터 기존에 갖고 있던 것까지 팔 수 있는건 모조리 팔았고, 그 마지막이 고프로였다.
왠만해선 팔지 않으려 했는데 덕분에 계절학기 잘 듣고 있다.
돈 벌면 드론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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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학기 등록금은 뭘로 내나 고민하던 찰나 네이버에서 우연히 보게된 배너 광고.
평창 올림픽 단기 채용 공고였다.
블로그에도 자주 했던 얘기지만 '트루먼쇼'도 아니고 기가맥힌 타이밍에 떴다.
면접까지 잘 보고, 계절학기가 끝나자마자 평창행이 확정되었다.
돈도 돈인데 국가적인 행사를 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게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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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렇게 잘 풀리면 내 인생이 아니지.
친구랑 술 쳐먹다가 눈 오는날 지대로 자빠링했다.
정말 그 자리에서 정신 안 잃은게 다행이지...그랬다면 이 포스팅도 없었겠지.
처음 다쳤을 땐 참 재수도 없다 생각했는데... 아니다.
이 정도인게 천만 다행이지.
운 좋은 놈 인증.

어릴 때 길 건너다가 관광버스랑 교통사고 진짜 크게 났었는데 그 때도 다들 그랬지.
진짜 운 좋은거라고.

비싼 수업료 냈다.
정신줄 잡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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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시작을 아프게 보냈지만 운동선수같은 미친 회복력으로 무사히 계절학기를 듣고 있다.
여행다닐 땐 생전 보지 못했던 풍성히 쌓인 눈도 보고, 2년 만의 추위에 잘 적응이 안되기도 한다.

1년을 두고, '다사다난했다'는 표현만큼 진부한 표현도 없지만 나의 1년이 진정 그랬다.
최근 5년을 되돌아봐도 올해가 가장 강력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고, 그 후유증에 힘겨워했고, 무너지지 않으려 발악했고, 안정을 찾았고, 정신적 안정을 찾으니 몸이 심하게 다치기도 했고, 그렇게 1년이 마무리 되고 있다.
이제 딱 하루만 지나면 3재의 최상급 같았던 2017년도 과거가 될 것이다.
내년엔 길고 길었던 학생이라는 타이틀과 작별할 예정이고, 더불어 무언가 소용돌이가 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한다.
과연 내년 이 맘 때의 나는 2018년을 어떻게 추억하고 기억할까.

2017년 12월 31일 새벽 2시 54분,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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