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회사에서 "양반 기술자"라 불러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중년의 가치를 조명하는 글

by 다시청년

50대, 친구를 만났다. 퇴근 후 만나자는 말에 가슴이 설렜다. 어딘가에 취직했다는 의미였으니까. 2년 전 직장에서 해고된 후, 그는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해 왔다. 야간 택배 분류부터 일용직 노동시장까지, 중년의 체력으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예상대로 오래 버티진 못했다.


중장년층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위기감이 있다. 세상의 변화는 따라가기 버겁고, 오랜 경력이 선사한 능숙함은 어느새 구닥다리 지혜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아이디어나 조언은 AI에게 묻는 편이 훨씬 효율적인 시대다. 대면이 부담스러운 요즘 세대에게,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지식이 쏟아지는데 굳이 상사에게 물을 이유가 없다. 우리는 AI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인재만이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IT와 친숙하지 않은 중년상사는 디지털 세대와도 거리가 멀고, 고비용 저효율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그렇다면 중년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 청년들의 관심이 덜한 곳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친구가 새로 시작한 일은 방문 A/S 기술직이다. 가정에서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수도꼭지가 고장 나고, 하수구가 막히며, 때로는 단순히 전구 교체를 도움 요청하는 이들도 있다. 작년 가을, 방바닥 난방용 배관을 청소하고 물을 교체하는 작업을 받았는데, 덕분에 이번 겨울 난방 효율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 집안이 금세 훈훈해지고 난방비도 절감됐다. 배관 청소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친구는 몇 년간 회사에서 경력을 쌓은 후 개인 브랜드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 했다. 전망이 밝아 보였다. 자신이 쌓은 기술과 신뢰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임이 분명하다. 가가호호 방문하여 직접 대면하는 일이기에, 넉살 좋은 중년이 오히려 유리하다. 중년 세대는 대면이 청년에 비해 두렵지 않다. IT 기기 다루는 것보다 사람 대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세대다.


중장년의 손기술은 새로 배워도 빛을 발한다. 배관을 청소하고, 전기를 고치고, 못을 박는 일은 AI가 완전히 대체할 수 없는 현장의 영역이다. 이런 실용적 기술은 오히려 디지털 경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배울 수 있고, 회사에서 밀려난 중장년들이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다. 특히 중년의 진중함은 고객에게 신뢰감을 준다. 서두르지 않고, 꼼꼼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은 청년의 패기와는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친구는 회사에서 몇 년이 지나야 배차되는 업무용 차량을 7개월 만에 받았다고 자랑한다. 별명이 '양반 기술자'라며 으스대는 친구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전에 쌓은 경력과 상관없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만으로도 중장년은 두 번째 직업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실버 세대가 늘어나는 고령화 사회에서 중장년층의 수요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어르신들은 비슷한 세대의 기술자에게 마음의 문을 더 쉽게 열기 때문이다. 말투와 정서가 통하니 소통이 원활하고, 세대 간 유대감이 자연스레 형성된다. 중장년 기술자는 단순히 고장 난 물건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나마 외로움을 달래주는 말벗이 되기도 한다. 디지털 세상이 빠르게 변할수록, 이런 아날로그적 따뜻함의 가치는 오히려 상승한다. 기술은 대체할 수 있어도, 사람의 온기는 대체할 수 없으니.




세상이 디지털로 달려가는 동안, 멈춰서 관찰하자. 디지털 세상이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굳이 내 가치를 혁신을 추구하는 곳에서 저평가받으며 눈치 볼 필요 없다. 내 가치가 더 빛나는 유리한 곳은 찾으면 널렸다.


중년, 위기라 호들갑 떨지 말고 각도를 살짝 비틀자. 시각을 바꾸면 시도할 기회가 보인다. 그 기회에 다가서면 된다.



다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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