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새로운 이성에 시선이 가고 , 부부는 서로의 매력에 시들해져 가는가.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다들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과거의 설렘을 떠올리며 정의하거나,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생각하며 의미를 찾는다. 30년을 함께한 부부는 동지애로 풀어낸다. “사랑은 노력”, “사랑은 고통”, “유일한 한 사람”, “내가 채워주고 싶은 사람” 등 다양한 정의가 쏟아지지만, 사랑은 한마디로 딱 떨어지지 않는다. 설렘과 상처가 뒤엉킨 감정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끌림, 사랑의 스파크
사랑은 끌림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느끼면 그 사람의 모든 게 궁금해진다. 좋아하는 음식, 웃을 때 생기는 주름, 가족 이야기 등 다 알고 싶다. 호기심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가고, 마음의 안테나를 활짝 연다. 끌림이 커질수록 거리를 좁히고 싶고, 마음이든 몸이든 가까워지고 싶은 갈망이 생긴다. 마치 전기 스파크처럼, 찌릿하고 순간적인 끌림이 사랑의 시작이다. 새로운 정보를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 생존을 위한 전략과 맞닿아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끌리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 즉 정보의 빈틈이 크기 때문이다.
익숙함, 사랑의 낡은 플레이리스트
관계가 지속되면 끌림은 익숙함으로 바뀐다. 낯선 동네를 헤매다 자주 걷는 골목을 찾는 것처럼, 연인은 서로의 습관과 표정을 하나씩 알아간다.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는 서로의 세월만큼 익숙함을 쌓는다. 오랜 친구도 그렇다. 처음엔 서로의 취향에 설렜던 친구가, 이젠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 사이가 된다. 익숙함은 낡은 플레이리스트 같다. 최신곡은 아니어도, 언제 틀어도 마음이 편해지고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 준다. 하지만 익숙함은 때로 끌림을 덮는다. 헤어진 연인이 “너한테 더 이상 끌림이 없어”라고 말할 때, 사실은 새로운 스파크, 정보 없는 누군가에게 마음이 간 것이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가장 매력 있다”는 말, 어디서 들어본 적 있지 않은가?
거슬림, 사랑의 걸림돌
관계가 깊어지면 거슬림이 고개를 든다. 끌림의 스파크가 강할 때는 보이지 않던 단점—말투, 습관, 사소한 행동—이 눈에 들어온다. 원래 있던 모습인데, 내 눈이 뒤늦게 알아챈 것뿐. 불만을 털어놓고, 고쳐달라고 요구한다. “사랑하니까”라는 명분으로 지적하지만, 삐걱거림은 커진다. 감정이 상하고, 섣부른 선택으로 이어진다. 연인은 새로운 끌림을 찾아 헤어지고, 부부는 이혼서류를 앞에 둔다. 세상 떨리는 마음으로 나란히 걷던 이들이 한 걸음 간격을 두고 불편하게 걷는다. 커지는 거슬림을 방치하면 맞이하는 결과다. 거슬림, 사랑의 걸림돌이 된다.
사랑의 힘은 다스리는 균형
사랑은 끌림과 거슬림을 다스리는 섬세한 균형이다. 끌림이 성숙하면 익숙함이 되고, 거슬림이 커지면 불편함이 된다. 익숙함은 내 행동을 자연스럽게 하고, 불안을 다독여 정서적 안정을 준다. 반면, 불편함은 부정적 감정을 키우고 익숙함의 가치를 잊게 한다. 사랑의 능력은 끌림의 설렘이 퇴색되지 않도록, 거슬림이 비대해지지 않도록 다스리는 데 있다. 익숙함을 하찮게 여기면 거슬림이 사랑을 집어삼킨다. 그러다 문득, 길가의 음악이나 누군가의 뒷모습에서 잊었던 익숙함이 떠오른다. “아, 그때 그 사람과 좋았었지.”
그놈이 그놈?
“그놈이 그놈”, 끌림헌터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익숙함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설렘을 쫓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사랑은 설렘 너머, 익숙함을 지키는 데서 빛난다. 끌림헌터와 사랑을 반복한 이들은 푸념한다. “그놈이 그놈”이라고. 혹시 ‘그놈이 그놈’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지는 않을까? 난 끌림에서 출발한 익숙함을 소중하게 다뤘나? 사랑은 다스리는 균형이다. 익숙함을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지 않기를.
다시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