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많고, 대화는 없고

중년, 할 말은 많고 듣기는 어렵죠? 외로워지는 지름길이에요.

by 다시청년

말은 쉽고, 듣기는 어렵다. 그래서 중년이 외롭다.

며칠 전, 친척 중 한 분과 오랜만에 마주 앉아 식사를 했다. 사촌이면 그리 멀지 않은 사이인데, 사실상 서로에 대해 잘 모를 만큼 왕래가 없던 사이다. 난 그분보다 어린 입장이었고, 거절도 눈치 보였기에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시작된 점심은, 나에겐 작은 의무감이었지만 그분에겐 준비된 무대였던 것 같다. 수십 년 쌓인 인생사와 고달픈 시간들, 억울했던 일, 자랑하고픈 순간들, 남편 이야기, 시댁 이야기, 친구 이야기, 자녀 이야기까지. 두 시간이 넘도록 나는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다. 그분은 너무도 할 말이 많아 보였고, 나는 ‘아, 네’, ‘정말요?’, ‘힘드셨겠네요’ 같은 반응으로 리듬을 맞춰야 했다.

식사가 끝났을 땐, 피로감이 몰려왔다. ‘기 빨린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로, 말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왜 우리는 나이 들수록, 말이 많아질까? 왜 자신의 서사를 상대가 즐거워할 거라 생각할까? 그리고 왜 점점 듣기는 어려워질까?


말의 홍수, 대화의 가뭄

우리는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이다. 특히 나이 들수록, 이야기는 많아진다. 기억이 쌓이고, 감정이 겹겹이 쌓이며, “그땐 그랬지”라는 문장이 습관처럼 입에 맴돈다. 중년 이후는 누적의 시간이다. 단어가 축적되고, 감정이 침전되며, 말은 쌓이고 관계는 멀어진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생애를 8단계로 나누었고, 중년기를 “생산성 대 침체성”의 시기로 보았다. 이 시기의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적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이 욕망은 자녀 양육, 사회적 활동, 나눔 등의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때때로 ‘말’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내가 살아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누군가에게 확인받고 싶은 마음. 그것이 중년의 ‘말 많음’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다. 사람들은 바쁘고, 피곤하고, 각자의 서사로 지쳐 있다. 누군가의 장황한 인생사가, 듣는 이의 마음을 파고들기는커녕, 오히려 거슬리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눔’이 아닌 ‘쏟아냄’이 되기 때문이다.


중년의 말은 왜 듣기 힘들까?

그날 내가 느낀 건 단순한 피곤이 아니었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절망감’이었다. 그분은 상대의 표정이나 반응을 거의 살피지 않았다. 본인의 감정에만 몰입되어, 자신이 말하고 싶은 걸 다 말해야만 끝낼 것 같았다.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독백, 소통이 아니라 통보, 공감이 아니라 일방적 침투였다.

말이라는 건 원래 쌍방의 것이다. 말은 혼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누군가 듣고 있다는 확신, 그로 인한 반응, 질문, 관심이 오갈 때 ‘대화’가 된다. 하지만 많은 중년들은 이 사실을 잊는다. 그들의 말은 점점 무겁거나 요란해지고, 정서는 닫히며, 듣는 이는 점점 도망치고 싶어진다. 이야기는 길어졌지만, 마음은 멀어진다. 말이 많아질수록, 관계는 얕아지는 역설. 그것이 중년 대화의 딜레마다.


입을 닫고, 귀를 여는 훈련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자신의 이야기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파란만장한 삶도,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다. 듣는 사람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이야기는 폭력이 된다. 이야기엔 타이밍이 필요하고, 맥락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상대의 ‘수용성’을 읽는 지혜가 필요하다.

둘째, 말을 멈추고 귀를 여는 연습이 필요하다. 중년은 말의 전성기가 아니라 ‘경청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들으려 하지 않으면, 언젠가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듣기는 배려이고, 공감이고, 사랑이다. 관계를 망치는 건 ‘너무 많은 말’이 아니라, ‘너무 적은 경청’이다.

셋째, 함께 웃을 수 있는 이야기로 나를 줄이고, 우리를 키우는 말하기를 연습해야 한다. 독백보다 대화, 회한보다 유머, 설교보다 나눔을 담은 말이 관계를 두텁게 한다.


말 많은 사람은 결국 외롭다.

플라톤은 “사람은 말이 많아서 미움받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안 들어서 미움받는다”라고 했다. 중년의 외로움은 단지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다.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이고, 관계는 대화로 유지된다. 하지만 그 대화는 ‘들음’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분의 모습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다. 나도 누군가를 붙잡고 내 이야기만 줄줄이 쏟아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말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정작 듣는 이의 표정은 살피지 못한 것이다.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잦았을 것이다. 듣느라 고통스러웠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미안함과 존경심이 생긴다. 깨닫는다. 말은 나를 드러내지만, 귀 기울임은 나를 단련시키는 일이라는 것을.


오늘 나는 누구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내 말만 밀어붙일 것인가?

중년의 고요한 품격은, ‘듣는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다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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