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 해석이 다른 SNS 초성어의 현주소
‘ㅋㅋ’, ‘ㅎㅎ’, ‘^^’, ‘ㅠㅠ’. 우리가 숨 쉬듯 사용하는 이 자음과 기호들에 세대별 해석표가 따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최근 우연히 접한 그 해석의 차이는 50대인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ㅋㅋ’는 친한 사이에, ‘ㅎㅎ’는 조금 덜 친하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윗사람에게 쓴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였다. 내게 이 눈웃음 표시는 상대에 대한 호의와 부드러움의 상징이었다. 요즘 세대에게 이 표시는 ‘아니꼬움’이나 ‘비꼬는 뉘앙스’로 읽힌다는 것이다.
솔직히 기가 찼다. 물론 나도 공적인 업무 메일에는 이런 기호를 쓰지 않는다. 편한 문자 소통에서 내 마음을 부드럽게 전하고자 붙였던 수많은 눈웃음 표시들이, 누군가에게는 비웃음으로 보였을 수 있다니 잠시 할 말을 잃고 멍해졌다.
해석의 출처가 어디인지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웃는 낯에 침 뱉는 격 아니냐”며 억울함을 토로할 수도 있다. 이 당혹스러움을 뒤로하고, 우리가 놓치고 있던 소통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세대별 해석의 차이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이런 경험이 있다. 한참 젊은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 끝에 붙은 ‘ㅎㅎ’를 보고 기분이 묘했던 적이 있다.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초면의 상황이었다. 아직 정중한 탐색이 필요한 시점에 툭 튀어나온 ‘ㅎㅎ’는, 왠지 그 사람의 무게감마저 덜어내는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른인 나와 부드러운 분위기로 소통하려는 나름의 배려이자 ‘친근함’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습관의 참사가 또 있다.
지인의 이야기다. 조의를 표하는 문자 뒤에 ‘^^’를 붙인 거다. 기분 나쁘게 해석한 상대가 단톡에서 퇴장했다고 한다. 내가 그의 ‘ㅎㅎ’를 오해했듯, 상대도 나의 ‘^^’를 오해할 수 있다. 내 방식으로만 해석하는 순간 불통의 늪에 빠진다. 서로의 언어 온도와 해석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세대 간 소통의 벽을 허무는 시작임을 경험을 통해 배운다.
둘째, 관계에 따라 언어를 구분해서 사용하는 ‘프로의식’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문장 끝에 이모티콘이 없으면 글이 딱딱해 보일까 봐 두려워한다. 습관처럼 ‘ㅎㅎ, ㅋㅋ, ㄷㄷ, ^^, ㅠㅠ’를 남발한다. 냉정하게 말해, 글이 딱딱해 보인다는 것은 보내는 사람 스스로의 느낌일 뿐이다. 정작 받는 사람은 그 건조함을 신뢰감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특히 아직 친분이 두텁지 않은 사이에서 과도한 축약어와 이모티콘은 오히려 독이 된다. 메시지의 명확성을 흐리고, 프로답지 못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라는 정갈한 다섯 글자면 충분할 것을, 굳이 군더더기를 붙여 진심을 희석시킬 필요는 없다. 상대는 ‘애교’가 아니라 ‘정확한 의사’를 원한다. 글 속에 과도하게 박힌 ‘ㅋㅋ’와 ‘ㅎㅎ’는 오히려 상대가 나라는 사람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방해 요소로 작동할 수 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축약’이 아닌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는 습관이다. 우리는 어느새 감정을 표현하는 근육을 잃어가고 있다. 정말 웃긴지, 기분 좋게 기쁜지, 혹은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은지, 그 미세한 감정의 결을 자음 뒤에 숨겨버린다. 내가 보낸 ‘^^’가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주었다면,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것은 긍정적인 소통이라 보기 어렵다. 납작해진 기호 대신 글로 마음을 풀어내 보자. “네 의견에 정말 공감해서 웃음이 났어.”, “그 소식을 들으니 내 일처럼 기쁘네.”, “그 부분은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드는데 다시 생각해 줄 수 있을까?” 이렇게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면 오해의 여지가 사라진다. 상대방은 나의 감정을 추측하느라 에너지를 쓸 필요가 없고, 나 역시 내 진심이 왜곡될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SNS와 메신저에는 세대 구분이 없다. 모두가 같은 창 안에서 소통한다. 그 안에서 흐르는 공기는 저마다 다르다. 자음 몇 개로 퉁치려는 게으름을 버리고, 다정한 문장으로 마음을 건네보자. 그때 비로소 우리는 기호의 배신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교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진심은 기호가 아니라, 언어에 담겨야 한다.
다시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