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 아홉 노모의 식사

여든 아홉 노모의 외로운 사투

by 다시청년

식탁 위에 엎드린 어머니의 머리 아래로 몇 겹 포개 접은 담요와 메밀베개가 놓여 있다. 그 위에 이마를 댄 채 어머니는 노환이라는 침묵의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요사이 부쩍 기력을 잃으셨다. 드시고 싶은 것도, 음식을 삼킬 힘도 마땅치 않다. 드신 것은 변변찮은데 화장실은 어찌나 자주 가시는지. 여든아홉 노모의 신체에서 온전히 기능하는 곳을 찾기란 이제 쉽지 않아 보인다.


모처럼 며느리 손맛을 보게 해드리고 싶어 아침부터 전복죽을 끓였다. 씹기 힘든 어머니를 위해 전복을 믹서에 곱게 갈았다. 할머니의 깊어진 병세가 걱정되었는지 딸아이도 함께 길을 나섰다. 여럿이 모여 식사를 하면 조금이라도 더 드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다 같이 둘러앉지는 못했다. 손녀는 서 있고, 아들과 며느리만 어머니 앞에 앉았다. “계란 준비해 주세요.” 간병인을 향한 어머니의 요청이었다. 간병인이 건넨 달걀노른자와 숟가락, 그리고 들기름 병. 어머니는 익숙한 손길로 숟가락에 들기름을 담아내셨다. 족히 다섯 큰술은 되어 보이는 양이었다. 이어 도착한 꿀 한 큰술까지 노른자가 담긴 그릇에 섞였다. 아무 말 없이 그것을 휘젓는 손길이 능숙하다. 요 며칠 식사를 못 하셨다더니, 이 생경한 조합으로 끼니를 대신해 오신 모양이었다.


한 손에는 그릇을, 다른 손에는 숟가락을 들고 손수 제조한 ‘음식’을 드시기 시작했다. 생기름을 저토록 드시다니, 보는 내 비위가 벌써 느끼해질 정도였다. 깨끗이 비우셨나 싶던 찰나, 어머니는 그릇에 남은 기름 잔여물을 혀로 핥기 시작하셨다. 그것은 놀라움을 넘어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달걀과 기름과 꿀.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성찬인 양 그릇을 비워내는 모습에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경건한 마음이 차올랐다. 끝이 아니었다. 텀블러를 열어 그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붓더니, 모서리에 남은 기름기까지 알뜰히 녹여 약과 함께 삼키셨다.

결국 둘러앉아 나누는 식사는 성사되지 않았다. 어머니는 이미 당신만의 식사를 마치고 간병인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가셨다. 우리끼리 편히 먹으라며 자리를 피해주신 것이다. 침대에 누운 어머니께 인사를 건네며 손을 잡아드렸다. 마음이 아프다는 말도, 또 오겠다는 약속도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떤 말도 어머니에겐 현실적인 위로가 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돌아 나오는 등 뒤로 어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손녀까지 왔는데, 못 볼 걸 보였다.”


노환으로 가는 길의 고통을 목격한다. 철저히 고립된 외로움을 느낀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길고 어두운 터널, 죽음에 다가가는 길이다. 옆에서 딸아이가 중얼거린다. “할머니, 얼마나 심심하실까?” 아이는 할머니의 고립된 외로움을 읽어낸 모양이다. 내가 본 건 다르다. 죽음을 향해 고단하게 내딛는 안간힘이었다. 3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본다. 나 또한 저 길을 비껴가지 못할 텐데, 그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마주하고 있을까.

현관문을 닫고 나오는 길,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어머니가 남긴 들기름의 진한 향이 코끝에 머무는 듯했다. 그것은 비릿함이 아니었다. 한 생애를 온몸으로 버텨낸 사람이 풍길 수 있는 숭고한 삶의 냄새였다. 어머니의 향기였다.



다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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