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요가원의 욕쟁이 할머니를 좋아하세요.

by 유유이


나도 모르게 계속 그녀에게 눈길이 갔다. 보통 같으면 눈길이 가도 의식적으로 신경을 끄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애쓰는데 그날은 그럴 마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그녀에게만 집중이 됐다.


그녀는 잔뜩 인상을 쓰고 힘겨워했다. 선생님도 물러섬이 없었다.

힘을 빼고 숨 쉬라는 선생님의 말에 그녀는 보란 듯이 더 숨을 멈추고 힘을 잔뜩 주는 것만 같았다.

통증으로 인해 잘못된 자세로 유지하는 그녀와, 그녀의 자세를 잡아주려는 선생님의 힘겨루기에 나머지 회원들은 벌서기처럼, 한 자세에서 아주 오래 머물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통증을 견디다 못해 화가 치미는 것처럼 보였다. 적당히 하고 넘어가도 될 법한데 선생님의 열정은 다소 오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조금만 더 친절하게 해도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통증을 호소하는 그녀가 선생님의 과한 열정을 불친절로 오해하진 않을까 마음 졸였다. 왜 그것을 신경 쓰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요가원의 관계자도 아니고 선생님의 지인도 뭣도 아니었다.



요즘 다니고 있는 요가원은 집에서 4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주차장도 없고, 샤워시설도 없는 오래된 건물에 위치한 다소 허름한 요가원이다. 일어나지 않은 무수한 가능성에 대해 염려하는 나는 돈을 더 쓰더라도 장기 회원권은 어지간하면 끊지 않는 편인데, 그 요가원의 원데이 클래스를 몇 번 들은 뒤 과감하게 1년 회원권을 끊어버렸다. 그 이유는 오로지 하나. 요가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참 좋았다.


그중 한 요가 선생님은 그동안 내가 봐오지 못한 다소 독특한 캐릭터이다. 팔색조 같다고나 할까. 여느 요가 선생님들처럼 인자한 미소로 차분하게 수업을 이끌어나가면서도, 수업 중간중간 에어로빅 강사 같은 유쾌한 에너지로 요가회원들을 빵 터트리게 하는 개그가 튀어나왔다가, 태권도 관장님처럼 위엄 있게 이끌어가는 카리스마로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기도 한다. 요가를 하면서 크게 웃어본 것도, 또 바짝 긴장하며 정신을 곤두세운 것도 그녀의 수업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거기에 열정 또한 남달랐다. 어느 누구도 잘못된 자세로 대충 넘어갈 수가 없게끔 회원 한 명 한 명 자세를 잡아주고 이끌어 주느라 1시간 수업은 언제나 정각을 넘기고 기울어질 쯤에나 끝이 났다.

그 선생님의 매력에 더 깊이 빠지게 된 것은 그녀의 다소 강압적인 수업 때문이었다.

요가는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 수련이 포함된 운동으로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말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그런 요가 정신을 강조하고자 보통 선생님들은 너무 힘들면 억지로 하지 말고 중간중간 쉬어가라는 멘트를 종종 해주시는데, 나는 그 요가 정신을 악용해 적당히 힘들면 눈치 보지 않고 안락함을 택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꽤 오래 요가를 해왔음에도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물론 꾸준히 노화는 진행되어왔으니 제자리걸음도 어찌 보면 발전의 결과물이겠으나, 누군가가 요가를 얼마나 했냐고 물으면 잘 기억이 안 난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곤 한다.

하지만 그 선생님 앞에서 안락함은 어림도 없었다. '할 수 있어. 더 뻗어. 더 끌어올려. 언제까지 거기까지만 할 거야!'라는 식의 멘트는 누구를 지칭한 것이 아니었지만, 마치 나의 오랜 요가 역사를 꿰뚫고 있는 듯, 내 뒤통수에 울려 퍼지곤 했다.

통증을 유발하는 자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죽을 것 같은 통증을 마주하고 도망치려는 내게 '죽을 것 같지. 안 죽어.'라는 식의 다소 거친 말로 강제 소환되어 머물고 나면, 그 통증은 정말 별게 아니었다. 오히려 만성 통증이 있던 부위에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 일어나며 컨디션이 나아지곤 했다.


그날의 수업은 골반을 풀어주는 동작이 많았다. 워낙 관절이 뻣뻣하고 왼쪽 고관절에 만성통증도 있는 터라 땀이 삐질삐질 났다. 그런데 맨 뒤쪽 줄 구석 어딘가에서 계속 통증을 호소하는 탄식의 소리가 들려왔다.

통통한 체형의 한 회원이 자세를 취하기 매우 어려운지 골반을 채 열지도 못하고 낑낑대고 있었다. 못 보던 얼굴인 걸 보니 요가원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된 듯했다. 선생님은 수업 내내 주로 그 구석에 자리했다.

"고개 들어. 머리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데. 고개 들고 숨 쉬어. 숨을 쉬어야 몸이 이완되지."

"으... 아파요..."

"알아."

반말의 딱딱한 어투로 그녀의 통증을 강제 지속시켰다.

"아 너무 아파요"

그녀는 통증을 견디다 못해 화가 치미는 것처럼 보였다. 적당히 하고 넘어가도 될 법한데 선생님의 열정은 다소 오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늘 컨디션이 안 좋으신가. 조금만 더 친절하게 해도 좋을 것 같은데...

통증을 호소하는 그녀가 선생님의 과한 열정을 불친절로 오해하진 않을까 마음 졸였다. 동시에 그녀 안부가 염려스러웠다. 맨 끝 줄 구석에 자리를 잡은 걸 보면 분명 이러한 적극적인 관심을 원치 않았을 터. 통증과 창피함과 불쾌함으로 힘들어할 그녀가 안쓰러웠다.


수업이 끝나고 탈의실에 들어가자 그 회원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고생한 그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은 마음이 불쑥 밀려왔다.


"많이 힘드셨죠. 저도 관절이 뻣뻣해서 요가할 때 항상 재활 치료받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자주 하다 보니 확실히 몸이 좋아지더라고요."

이번에도 원치 않는 위로면 어쩌지 말을 뱉으면서 아차 싶었다.

다행히 그녀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 괜찮아요. 요가 잘하시는 것 같았는데..."

"아니에요. 오래 했는데도 항상 힘들더라고요. 특히 골반이 안좋아서 골반 스트레칭 자세 할 때는 저만 굳건하게 우뚝 솟아있어요."

대화를 주고받으며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다른 요가 선생님들은 힘들면 쉬라고 보통 그러시는데 항상 그렇게 하면 잘 늘질 않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봐주시고 하니까 좋더라고요."

한번 더 오지랖을 건넸다.

위로차 응원차 건넨 말이었지만, 그것은 명백한 오지랖이었다.


마치 요가원의 터줏대감 같은 아줌마가 새로운 회원에게 너스레를 떠는 모양새의 그 날일이 어쩐지 한 번씩 떠오른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확실히 사회적 외향성이 더해지기는 한다마는 그날일은 다소 선을 넘은 느낌이다. 누가 보면 숨어서 활동하는 요가원 영업사원처럼 보였을 터.


왜 그랬을까. 왜 그랬을까.

진심이어서였겠다.

요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선생님에 대한 감사함이, 모두의 평안을 바람이...

무엇인가에 흠뻑 취한 추종자가 되어서 시키지도 않은 영업을 하고 다니는 모습도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하다.

나의 과도한 열정도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확한 고민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