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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오림 Apr 03. 2023

08. 이별하는 중입니다만

벚꽃 길을 걸으며





 나는 8이라는 숫자가 좋다. 

뫼비우스의 띠, 무한대 기호를 닮아 이 세상엔 없는 영원함을 말하는 것 같아서다. 현실에서 영원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희생이 필요하다. 마치 수면을 평온하게 떠다니는 오리의 발이 쉼 없이 파닥거리는 것처럼. 그나마 오리는 어떻게 헤엄쳐야 계속해서 떠 있을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알기라도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을 영원히 지킬 수 있을 방법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영원함이란 낭만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인상을 준다. 이 영원함을 상징하는 8에 1을 더하면 미완의 9가 되고 거기에 1을 더 더하면 비로소 10으로 완성된다. 그 셈이 어쩐지 매우 철학적으로 느껴진다.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면 더는 영원할 수 없는 미완이 되어 버리고 그 미완을 껴안았을 때야 비로소 완성이 된다. 



  나는 나의 8을 지키지 못했다.

4월이 되기도 전에 부쩍 온화해진 날씨는 저녁에도 선선했다. 우리 집 바로 뒤편에 있는 경의선 숲길은 하얗게 벚꽃이 만발했다. 그 덕에 마스크 없이 외출을 하게 된 사람들은 늦은 시간이 되어도 그 길을 거닐었다. 길 한편에서 술을 한 잔 기울이기도 하고 강아지와 함께, 가족 모두가 함께, 커플이 함께 나와, 집에 가만히 앉아 창문을 열고 있으면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간혹 우리 집까지 들르곤 했다. 나는 이 집에서 두 번째 이 벚꽃 풍경을 맞이하는 중이다. 작년에 이 벚꽃 아래에서 나는 이 멋진 풍경과 내 옆에 같이 걸어주던 이가 계속해서 함께 하리라 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재계약으로 이 집에서 더 오래 살려던 나의 계획은 서울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일을 구하게 됨으로써 좌절되었다. 그리고 내 옆을 지키던 그와는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누구의 잘못이나 인과관계없이, 그저 끝났다. 확실한 것은 나에게 이별의 시간이 왔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던 서울 집과 내 옆을 지키던 한 남자와 이별하게 되었다는 것. 그것만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올봄은 찬란해서 내겐 더 잔인한 계절이 되었다. 







 이별은 언제나 힘들고 아프다. 어떤 이별은 너무 아픈 나머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모두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도 이별은 한사코 나를 저 지구의 끝 너머의 먼 우주로 나를 내팽개쳐서 존재의 외로움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주친 과거의 상처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내 두 눈두덩이를 벌겋게 만들었다. 친구들과 만나서 본 빨간 눈두덩이는 민망하고 웃겨서 같이 와하하 웃어넘겼지만 집으로 돌아와 거울로 보니 그것조차 슬퍼서 울음버튼이 돼버렸다. 


그나마 시간이 내게 알려 준 것은 그 폭풍 같은 아픔이 없던 것처럼 될 순 없지만 언젠가는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집 안의 먼지를 털고 빨래를 한다. 또 울컥하고 슬퍼질 때는 벚꽃 꽃잎만큼이나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우리 집 앞 벚꽃길을 걷는다. 나의 힘듦이 같이 길을 걷는 이 사람들에겐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는 것을 상상하면 우주밖으로 내몰린 나는 다시 이 길을 걷는 나로 돌아온다. 그렇게 걷다 보니 후회가 되는 일들이 하나둘 생각난다. 지나간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못하고 기만한 나 자신에 대한 후회다. 지금은 돌이킬 수 없는 그 순간들에 나에게 솔직했다면 지금처럼 힘들진 않았을 텐데. 

나는 그 후회가 아픔이 되는 지금의 순간을 조용히 받아들이려 한다. 

8이었다가 9였다가 어느 때는 0이 되는 이별과 봄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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