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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May 17. 2024

숨 참고 다이브



내 몸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은 대부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났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틀렸다. 내 생각들은 쪼개지고 흩어지며 종국엔 영원히 사라졌다. 시간의 흐름에 따르면 생각은 완벽히 허상이라는 것이다. 심장이 뛰는 것에 발맞춰 몸의 세포들이 움직인다. 태어난 대로 가동되는 공장.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하지만 이 진실은 너무 늦게 알아차린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 내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 공포를 느낀 것은 당연했다. 나는 섹스를 하면서 아이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가 그러겠는가. 어느 젊은 여자가 오르가즘을 느끼다가 아기를 떠올리겠는가. 심지어 그 아이가 나를 향해 엄마라고 부르면서 달려온다면. 어쩌면 악몽일지도 몰랐다. 


의사는 심장이 뛰고 있다고 말했다. 주수는 오 주 정도. 예정일은 커가는 걸 봐서 바뀔 수 있다고 했다. 오른손등에 타투를 슬쩍 보더니 흡연 유무를 물었다. 나는 즉각 끊었다고 대답했다. 의사는 아… 예, 같은 희미한 말을 남겼다. 두려움은 시간차를 두고 찾아왔다. 점점 의사가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내 손등만을 볼 수 있었다. 가늘고 긴 꼬리는 중지 손가락부터 시작됐다. 많은 사람들이 이게 캥거루냐 물었고 그날 밤 걔도 물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코를 풀면서 말했다. 봄이 너무 싫어. 지긋지긋한 꽃가루. 그렇게 손가락으로 코를 후벼 잡으며 말했다. 


‘당연히 쥐지.’


걔는 펄쩍 뛰었다. 어떻게 몸에 쥐를 그려 넣냐고. 세상에 누가 쥐를 좋아하냐고 벌떡 뛰던 첫사랑. 걔는 모든 조그만 생명체를 무서워했다. 벌레가 나오면 주로 내가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나도 무섭다고 떠났다. 내 키가 백오십 센티미터고 걔랑 삼십 센티 차이가 났으니 그것만큼 이해 안 되는 말도 없었다. 


나는 형광등 밑에서 검게 빛나는 내 손 위 작은 쥐를 쳐다봤다.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의사가 물었다. 네? 뭐라고요? 의사가 다시 물었다.  


“더 궁금한 것이 있나요?”


나는 의사가 하는 말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혹시 팜플렛 같은 게 있냐고 물었다. 이번엔 의사가 되물었다. 네? 뭐라고요? 그러니까 출산까지 진행과정을 알려주는 어떤 달에는 무슨 이벤트가 있는지 그런 거요. 그런 걸 알고 싶어요. 의사는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아본다고 했다. 아마도 핸드폰 뒀다가 뭐햐나고 묻고 싶었을 테지만 그는 나를 조금 측은해하는 것 같았다. 


“제가 여기 적어줄게요. 다음에 내원해야 하는 날짜를요. 그리고 저희 산부인과 홈페이지에 정보가 있어요. 이것도 참고해 보시고.” 


성교육 시간에 뭘 가르쳐줬는지 기억을 쥐어짜 내보았지만 난자와 정자 같은 그림 말고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러니까 여성의 몸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니 더 중요하게는 여성의 마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어차피 실제로 경험하기 전까진 글자고 그림이고 와닿지 않을게 뻔했겠지만.


나는 캘린더에 내원 날짜를 메모해 두고 일어섰다. 의사가 간신히 나를 붙잡고 절대 금지해야 할 사항을 일러주었다. 술, 담배는 안되고 커피는 하루에 한 잔 정도는 괜찮지만 줄일 수 있으면 줄여보라고 했다. 엽산을 처방해 줄 테니 하루에 한 알씩 꼭 먹고 건강하고 산뜻한 마음으로 보자고. 그는 주먹을 쥐고 살짝 흔들며 말했다.


파이팅.


시간이 흐르고 그 의사와 맞담배를 피울 수 있었는데 우리는 첫인상을 나눴더랬다. 의사는 내가 어리고, 철딱서니 없어 보이고, 아이 아빠와 오지 않아서 마음이 많이 쓰였다고 했다. 역시나 그랬다. 


-


나는 당장 누구한테 연락해야 할지를 고민하다가 넷플릭스를 켜서 보고 싶지 않던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유튜브의 인기동영상도 한 번씩 다 봤다. 커피를 연달아 두 잔을 마시고 씻고 나와서야 아랫배를 지켜볼 용기가 생겼다. 나는 완이한테 연락했다. 


“누나 임신했다.”

“미쳤나.”


지완이는 결혼도 안 한 가시나가 어디서 임신을 했냐고 속사포로 내뱉었다. 나는 그게 욕이 아님을 알았다. 지완이 역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부담을 나눠갖는 운명공동체였는데 이런 비극적인 뉴스가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이 사건이 그 사건보다 비극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가 요양병원에 들어가고 간병비가 이백만 원이 나왔을 때 우리는 동이 틀 때까지 담배를 폈다. 우리는 술을 싫어했다. 담배도 싫어했지만 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술이나 담배, 마약 중에 한 가지는 해야 하는데 마약은 불법이고 술은 담배보다 싫으니 담배를 피기로 한 것뿐이었다. 


“아씨. 나 잠깐만 담배 한 대만 핀다.”


지완이는 담배를 한 대 피우는 시간 동안 잠깐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어떻게 될지 몰라. 아직 안정기도 아니고. 알려야 하는 사람은 니뿐이라서 말한다.”

“애 아빠는 알고?”

“알 필요가 있나.”

“씨발.” 


지완이에게도 시간은 필요해 보였다. 


나는 서둘러 일을 마무리 짓기 위해 전화를 끊었다. 업무시간에는 사무실에서 오는 전화는 꼭 받아야 했다. 그래도 집에서 하는 일이니 변화를 크게 티 내지 않고 좀 더 돈을 벌 수 있겠으리라 생각하며 노트북을 켰다. 대표변호사와 사무장한테서 각각 메일이 한 통씩 와 있었다. 사무장이 보낸 파일들로 오늘까지 업로드해야 하는 글이 다섯 개였다. 그가 오랫동안 매달려있던 형사재판이 끝날 조짐이 보였다. 블로그에는 진행 중인 사건은 함구하고 관련 재판에서 승소한 것만 추려서 올렸다. 대표변호사는 내가 올린 글을 보고 수정해야 할 사항을 알려줬다. ‘불법촬영 기소 유예받는 법’이라고 올린 글에 그는 ‘경미한 성범죄’라는 말을 앞에 넣어달라고 했다. 좋아요 백 개를 받은 이 포스팅은 ‘경미한 성범죄! 불법촬영 기소 유예받는 법’으로 수정되었다. 포스팅 url을 메신저에 보내놓고 소파에 누웠다. 가만히 있으니 아랫배가 불편한 감각으로 들썩거렸다. 아직 그게 움직일 리 없었다. 내 생각, 내 마음은 허상이야. 그렇게 생각해 봤자 역시, 소용없었다. 


-


나는 바로 다음 주에 병원에 갔다. 아랫배가 묵직이 아팠기 때문이다. 


“선생님. 배가 아파요.”

“한 번 볼게요. 긴장 푸시고요.”

나는 소위 굴욕의자라는 곳에 비스듬히 누워서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괜찮아요. 아기는 잘 있네요.”

의사는 꼼꼼히 모니터를 봤다. 간호사와 의사가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가랑이 사이가 찬 바람이 부는 것처럼 시렸다. 


“여기… 여기가 시린데 그것도 괜찮나요?”

“네. 그럴 수 있어요. 이제 옷 입고 나오셔도 괜찮아요.”

설령 안 괜찮다는 말을 들으려고 온 것은 아니지만 막상 모든 것이 괜찮다고 하니 헛된 상상에 김이 빠져 버렸다. 온갖 나쁜 경우의 수들이 깜박거리다가 사라졌다. 의사는 다시 내원해야 하는 날짜를 조정해 주었다. 나를 데리고 나오려고 간호사가 다가왔다. 


“아기를 지울 수도 있나요?”

조금 다급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 목소리 끝이 갈라진 것 같기도 했다. 일평 내지 한 작은 방에 파란이 일었다. 의사는 잠깐 간호사를 쳐다보다가 나가라고 고갯짓을 했다. 그는 의자를 고쳐 앉고 나를 쳐다봤다. 


“이고은 씨. 아기를 지우고 싶어요?”

“아마도요.”

“현행으로는 불법이에요.”

“네…”

“하지만 방법은 있어요. 범죄에 연루된 거라면.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나는 첫사랑 걔가 집 앞에 찾아온 날을 떠올렸다. 


-


막창가게에서 나는 담배를 폈고 걔는 술을 마셨다. 걔는 부사관이었다. 얼마 전에 상관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몇 대 맞았다고 했다. 몇 대가 아니고 그냥 볼을 살짝 꼬집혔을 수도 있다. 나는 걔가 과장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했다. 어쨌든 잔뜩 억울한 그놈과 나 사이에는 찝찝한 현실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나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온갖 나쁜 놈들을 변호하는 글을 썼고 늘 마음속에는 ‘이건 그저 일일 뿐이야’라고 되뇌지만 낡아가는 자아만 분명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몸에 때가 쌓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불쾌한 나날들. 걔는 울면서 화냈다. 


‘씨발새끼. 나보다도 어리면서.’ 


나는 삼 센티 남은 꽁초를 멀리 던지고 걔를 안아주었다. 눈물과 침이 내 목을 타고 흘러내렸다. 왜 얘를 좋아했는지는 시작은 까맣게 잊어버린 뒤였다. 우리는 학교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일에 질린 채 살아가는 어른이었다. 그리고는 밤이 깊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방에는 침대와 낡은 나무 탁자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고 창문에는 검은 테이프를 붙여 놓았다. 어둡고 어딘가 축축한. 처음 본 남자랑은 잘 수 없을 것 같은데 잘 아는 남자랑은 쉽게 잘 수 있을 것 같은 불가사의함. 걔라면. 적어도 관계하고 나를 찔러버릴 의문의 타인은 아닐 것이다. 내가 이런 얘길 했더니 걔는 침 튀기며 웃었다. 


‘누가 너를 죽인대? 그렇게 잘 못하고 다녔나.’ 

‘요즘은 잘못한다고 당하는 시대가 아니잖아.’ 


나는 사회의 모든 게 의문스럽다고 덧붙이려다가 말았다. 너한테 뭔 말을 더 하겠니. 변호사 사무실에서 주워들은 사건사고가 있었다. 데이트폭력에서부터 이별 후 살인까지 개별 사건들은 하나의 호를 그리며 방향성을 보여 주었다. 눈에 난 여자와 그것이 싫은 남자가 이후 저지르는 짓.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법처리. 변호사는 위임자를 변호할 뿐. 나는 그 변호사의 손이 되어 기록을 남겼다. 


‘상식 밖의 일은 일어난다.’ 

나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침 해가 뜨고 우리는 헤어졌다. 


걔가 나에게 강제로 관계를 시도했나. 모르겠다. 물론 과정 중에서는 자연스럽게 너도 좋지 않냐는 따위의 말이 흘러갔던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예전에 걔를 좋아해서 호감이었으며 그 밤의 그 말은 어쩐지 용납이 되었다. 아무렇게나 흘러가버렸으면 하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걔랑 키스는 하기 싫었다. 내가 참지 못하는 단 하나의 냄새가 있다면 입냄새였다. 우리는 키스 말고 다 했다. 


-


의사가 펜을 자기 손 등위로 톡톡 내리 쳤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럼 왜 지우고 싶은 거예요?”

“...”


의사가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 시간이 고요하게 흘렀다. 간호사가 왔다 갔다 하며 다음 진료 준비를 했다. 의사는 몇 가지를 적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다른 병원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어요. 우리 병원에서는 안 돼요.”

“네.”

“다음 주에 다시 와요. 병원에 상담 실장님도 있으니 예약 잡으세요.” 


나는 의사가 건네주는 메모를 받았다. 전화번호에 밑줄을 치고 작은 별표가 그려져 있다.


-


이 주 뒤 지완이가 우리 집에 왔다. 지완이는 만나자마자 버럭 화를 냈다. 내 예전 주소를 가지고 엉뚱한 오피스텔에 찾아갔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연락을 하고 왔어야지.”

“이사한 건 왜 말 안 했는데.”

굳이 내가 너에게 말했어야 할까. 내가 뾰로통하니 지완이의 입도 튀어나왔다. 그는 캐리어에서 일 리터 커피를 두 잔 꺼내고 쿠키까지 늘여놓았다. 


“하나는 디카페인이다.”

“벌써부터 임산부 취급이야?”

“맞잖아. 임산부.” 

“나서지 마.”


나는 손가락 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나는 저 애가 딱하다.


“이러다 담배는 나가서 핀다고 하겠네?”

“당연히 안 피지. 누나 니 담배 아직 안 끊었나?” 


나는 손바닥으로 눈 주위를 눌렀다. 삶에 다른 이야기가 들어온 방식이 너무 황당해서 나는 나대로 균형을 잡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사건에도 휘말리지 않으려고 모든 중독을 끊었다. 잠깐. 담배도 약도 책도. 


지완이는 끼니때마다 먹을 걸 사 왔다. 서울에 맛집은 전부 다 체크해두고 있었다면서 나도 모르는 동네 카페에서 까눌레와 번을 들고 왔다. 나는 그즈음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지완이는 김치찜을 시켜서 햇반과 함께 밥을 차려 먹고 나는 커피에 우유를 조금 타서 쿠키나 크래커를 쪼개 먹었다. 지완이는 요즘 일이 어떻냐고 물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정보 전달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래도 가끔은 마음이 다쳤다. 성폭력 사건이나 학교폭력 같은 게 그랬다. 변호사는 정의의 편이 아니라 위임자의 편이었기 때문에 내 정의와는 다른 포스팅을 발행했다. 그런 날은 밤새 책을 읽곤 했다. 양귀자나 박완서의 소설을 읽었다. 그러면 다친 마음들이 조금 아무는 것처럼 느껴졌다. 독서를 안 하기로 한 뒤로부터는 글을 썼다. 돈을 받고 쓰는 업무용 포스팅이 아니라 쌍욕으로 시작하는 비밀글을 썼다. 누구에게도 일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지완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는 비밀글을 쓰는 것처럼 변호사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새끼는 무조건 기소유예 시킨다는 거야.”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힘들어. 나는 계속 사법체계에서 약자인 것처럼 굴어.”

“실제로 그렇지.”

“그 사건에서는 내가 당사자는 아니잖아… 이건 필요이상으로 몰입하는 거지.”


나는 손가락 관절을 꺾으면서 우두득하는 소리를 냈다. 지완이 혀를 끌끌 찼다.


지완인 식빵과 우유를 사다 두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나는 지완이가 오기 전까지 몇 주 동안 병원을 두 번 갔다. 한 번은 수술하러. 한 번은 경과 보러. 내 몸은 한 번 더 변하고 있었다.


-


다섯  사십오 분. 나는 병원의 마지막 손님이 되어 나를 진찰해 준 의사 앞에 마주 앉았다. 이렇게 자주 만나고 속사정까지 말하는 경우에 그를 주치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때까지 산부인과를 매주 갈 일은 없었으니 산부인과 선생님은 누구보다 환자를 오랫동안 마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있던 일 없던 일까지 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친구끼리 할 수 있는 거짓말이나 꾸중을 하면 되려 우리 사이가 친구는 아니었다고 확인해 버리는 꼴일 것이다.


“잘 지냈어요?”

“잘 지냈어요.” 

의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손 끝을 만지작거렸다. 


“수술하셨네요.”

“네.”

“보니까… 아직 회복 단계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아요. 당분간 관계는 피해 주세요. 술도 조심하고.”

“저 술은 안 마셔요.”

의사는 내 눈을 바라보다가 손 등을 바라봤다. 


-


나는 쥐가 좋았다. 첫사랑 걔도 몸서리쳤듯이 지완이도 징그럽다고 말했듯이 그 밖에 다른 이도 전부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정말 쥐를 좋아해서 내 손에 쥐를 그려 넣었다. 처음에 역 주변에 유명한 타투이스트가 있다길래 예약을 걸고 찾았다. 그는 아주 어린 여자였는데 단칼에 쥐는 안된다고 했다. 미감이 안 좋아요. 그의 양팔은 화려한 동백꽃이 가득 피어 있었다. 돈만 주면 다 해주는지 알았더니 이쪽 업계에도 창작자의 에고가 있는 듯했다. 나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거나 새로 생긴 타투 가게를 찾아봤지만 이번에는 내 쪽에서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중고거래 커뮤니티에서 집에서 취미로 타투를 그려준다는 여자를 찾았다. 한 동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탑층에 그의 집이자 가게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잠깐, 잠깐! 저 남자 아니에요. 여자 맞아요.” 


벨을 눌렀는데 얇은 콧수염이 있는 사람이 나와 바로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는 자기가 여자라고 했다. 가슴이 불룩하니 튀어나와 있으나 보정 속옷인지 알 수 없었고 더구나 바지 앞섬도 볼록했기에 위화감이 들었다. 


“죄송한데, 저는 무섭네요.”


그 말에 콧수염은 쾌활하게 답했다. 


“눈앞에 대고 말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다시금 돌아 나가려고 하는 길에 그가 한 번 더 나를 잡았다. 자신은 진짜 ‘여자’라고 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타투 기계를 들고 나와 보여 주었다. 쥐를 원하신다고 했지요, 하며 도안까지 그려와 보여줬다. 망했다. 그 도안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쥐의 포인트인 가느다란 꼬리가 손가락을 타고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쥐인 지 강아지인지 애매하게 보이지 않고 생쥐 그대로인 모습도 좋았다. 나는 도안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그 집에 들어갔다. 


그는 손을 씻고 나와 커피를 타왔다.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가정용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아 보는데 이상하게 잠이 왔다. 격의 없이 편하게 해주는 것이 이 사람이 가진 매력인 것 같았다. 물론 눈을 뜨면 기이한 콧수염이 보여 애써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나의 개인정보를 캐지 않으면서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와중에 그려준 쥐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살가죽이 얇아 아플 거라고 했는데 아픈지도 몰랐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요? 실례가 안 된다면. 노코멘트하셔도 돼요!”

“네.”

“쥐를 얼마큼 좋아하시나요?”


그 질문은 정말 당혹스러울 정도로 따뜻한 말이었다. 몸에 새기니까 당연히 좋아하는 것일 텐데 이걸 좋아하는 정도를 묻다니. 나는 떠듬떠듬 내 태몽이 쥐였다는 이야길 했다. 그러니까 중간중간에 쥐가 뱀을 잡아먹고 복숭아 밭을 파괴하고 결국에 엄마아빠까지 잡아먹는다는 무서운 이야기는 빠지고 쥐의 모험담을 위주로 끊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아름답네요.”

“네… 그렇죠.


나는 콧수염한테 쥐를 그려 받은 뒤로 쥐가 더 좋아졌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쥐 사랑에 대해 한 발 뒤로 물러선다는 것은 여러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나는 의사한테 쥐를 사랑하기 시작한 첫 이야기와 쥐를 새겨 넣게 된 마지막 이야기까지를 해보기로 했다. 


-


의사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도 별 말이 없었다. 한 달 이내로 한 번 더 방문해 달라는 말을 끝으로 그는 차트를 정리했다. 나는 병원이 곧 문 닫을 시간이란 걸 알고 잠깐 머뭇거리다가 혹시 담배 피시냐고 물었다. 불편했을까. 그는 눈썹 앞머리를 찡긋했다. 잠깐만 옥상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이거 그린 라이트인가. 몇 해 전 모 예능 프로그램에서 서로의 의견이 일치되었을 때 그린 라이트를 누르는 게 유행이었다. 주로 이성 간 사랑하는 마음이 눈 맞았을 때 얘기였지만. 


초록색 방수 페인트가 칠해진 병원 옥상에는 식물 하나 없었다. 옆 집처럼 화분이라도 몇 개 두면 좋을 텐데. 나는 슬쩍 병원보다 층수가 낮은 옆 건물 옥상을 보면서 바람을 맞았다. 시원했다. 의사는 담배와 라이트를 꺼냈다. 전자담배 피우는데요. 했더니 의사가 또 눈썹을 찡그렸다. 


“전자담배 피운다고 착각하지 말아요. 그거 담배랑 똑같아요.”


나는 끄덕였다. 지완이도 그런 말을 했었다. 


“여러 사람을 봐요. 이 일 하면. 대부분은 눈을 반짝이며 파트너와 들어오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다짜고짜 들어와서 화내거나 울지요. 그리고 이고은 씨처럼.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도 간혹 있지요. 저는 화내거나 우는 건 괜찮은데 무심한 게 제일 걱정돼요.”


그는 나의 어깨를 콕 찔렀다. 


“신경 쓰인다 이 말이죠.”

타투를 한 사람도 신경 쓰이나요?”

타투는…”


의사는 의외의 말을 했다. 


“저는 타투해보고 싶은데 의사가 타투를 하면 환자들이 어떻게 보겠어요. 못할 거니까 한 번 더 쳐다보는 거죠.”


얼마 전 내게 중절 수술을 해준 의사가 떠올랐다. 수술을 하려고 찾아간 병원에는 개인실이 많았다. 나는 어렵사리 내 이름이 적힌 방을 찾아 들어갔다. 누구의 설명도 없었지만 개어져 있는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베드에 누웠다. 약속시간 십분 늦게 수술실로 들어온 의사는 이름을 확인하고 바쁘게 가운을 입었다. 그는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 누운 채로 의사를 내려다보면 흰머리 밖에 안 보였다. 크게 숨을 들이쉬니 희미하게 담배 냄새가 났다. 흡연가 코 끝에는 달큼하게 느껴졌겠지만 환자로서는 불쾌할 일이다. 나는 찝찝하게 아래를 쳐다봤다. 여전히 흰머리만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 병원에 있는 그 누구도 내게 더 많은 이야기를 물어보지 않았다. 직원에게 현금을 주고 나오니 세상이 아주 밝았다. 나는 잠깐 내가 여기에 무슨 일을 하러 왔었는지 까먹었다. 눈이 부셔서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것 밖에는.


“타투해 보세요. 엉덩이 같은 안 보이는 곳으로…”

소개해줄게요.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냈다. 비록 안 어울리는 콧수염을 하고 있지만 그는 좋은 타투이스트였다. 


의사가 명함을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선선히 건네준 걸 받았다. 


“병원에는 몇 달 더 나오세요.”

“왜요?”

“원래 산부인과도 분기마다 한 번씩 다녀야 해요. 여성 성기에는 왜 이리 관심이 없는지 몰라. 자주 아프다고요. 눈가가 뻑뻑하거나 팔목이 아픈 것처럼, 거기도 내 몸이에요.” 


나는 미리 예약된 날짜를 캘린더에 입력했다. 우린 조금 더 옥상 위를 서성거리다 헤어졌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십사 시 사우나를 갔다. 붐비는 온탕과 샤워실을 지나 아무도 없는 냉탕에 들어갔다. 자꾸 뜨려는 몸을 억지로 숙여서 머리끝까지 담갔다. 손 등 위에 쥐가 헤엄치는 것처럼 보였다. 저릿한 속 끝으로 쥐를 쓰다듬어 보았다. 나는 한참 동안 쥐와 숨을 참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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