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입구요.”
짧은 가죽스커트에 격자무늬 스타킹을 신은 여자가 술 냄새를 휙 풍기며 앉았다.
“네. 지하철 역 앞에서 내려드리면 될까요.”
“네네…”
여자는 몽롱하게 답하며 핸드폰 화면을 쳐다봤다. 핸드폰 조명이 환히 눈가를 비추고 지워진 아이라인 사이로 눈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2차 가시나 보죠.”
“네네…”
“춥진 않으시고요.”
택시 기사는 창문을 닫았다. 벚꽃이 떨어지는 초봄이었지만 밤바람이 차가웠다. 그제야 여자는 얼굴을 들어 택시 기사를 봤다.
“여자네요?”
“아. 그렇죠.”
“잠깐만. 할머니네요?”
여자는 두 번 놀란 것 같았다. 여자 택시 기사도 처음 보지만 나이까지 들었다는 사실이 술을 완전히 깨게 한 것 같았다.
“택시 한 지 오래됐어요.”
놀란 건 택시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스크를 눈 밑까지 올려다 쓰고 모자를 푹 눌렀다. 할머니라는 걸 들키다니.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목소리로 눈치챘으려나. 택시 기사는 목소리를 가다 듬었다.
“이진진… 이름이 이진진이에요?”
여자는 보조석 뒷머리에 붙어 있는 택시 기사 정보를 읊었다. 거기엔 소속 택시회사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택시 기사 이름이 있었다. 친절택시기사는 이름을 찍어 문자로 남겨달라는 문구와 함께였다. 택시 기사는 잔기침으로 응답했고 택시 안은 기묘하게 조용해졌다. 여자는 핸드폰으로 뭔가를 썼다. 이윽고 찰칵하며 사진 찍는 소리가 났다.
택시는 빠르게 미끄러져가며 홍대입구 역에 도착했다. 2번 출구 앞에 비스듬히 서니 여자가 느리게 벨트를 풀었다.
“감사합니다.”
“....”
“그런데. 할머니. 조심하세요.”
여자가 핸드폰을 들어 올려 기사를 보여줬다.
-노인 취업 금지 시대, 기본급여 수령 후 불법 취업 만연-
-일하는 노인 최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까지-
“... 안녕히 가세요.”
여자가 비틀거리며 내렸고 곧 술집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택시 기사 이진진은 손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아이고. 손녀 같아서 신경을 좀 쓴다는 게 그만.”
그는 후회막심하며 캔커피 뚜껑을 따서 한 모금 마셨다. 다음 손님한테는 절대 말 걸지 말아야지 하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ㅡ
올해 칠십으로 이제 막 고희를 넘긴 이진진은 택시 기사로 삼십 년 넘게 일했다. 그와 그의 남편은 택시 기사로 일하면서 아이를 키웠다. 여성 택시기사는 지금도 드물었지만 그때는 손에 꼽힐 만큼 적었다. 투잡은 물론이고 쓰리잡까지 뛰는 시대. 언제나 씩씩한 편이었던 이진진은 낮에는 아이를 돌보고 밤에는 야간 택시를 운전했다. 야간에는 할증료가 붙어 수입이 좋아서 아이한테 백화점 브랜드 옷도 사입힐 수 있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이진진의 수입을 듣고 배달보다 택시가 낫다며 입 모았다. 게다가 이진진이 운전하는 택시는 소위 총알택시로 정속주행을 하지 않고 빨리 도착할 것을 담보하는 택시였다. 밤 운전이 특히나 더 어렵다는데 척척 해내는 이진진이 대단하다고들 했더니 이진진이 손사래 쳤다.
“저도 처음이 있었어요.”
이진진도 처음에는 손 떨며 시속 오십 킬로로 천천히 다녔다. 그러나 늦게 간다고 손님한테 욕먹고 벌이도 시원치 않자 마음을 고쳐 먹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남편보다 아니 그 어떤 택시 기사보다 운전을 잘했다.
그는 억척스러웠고 용감했다. 그런 이진진에게 닥쳐진 몇 차례 고비는 사실 인생 전반으로 놓고 보자면 사소한 것들이었는데. 새벽에 시외로 나가는 손님을 모시는 중에 딸 나라가 고열로 응급실에 가는 중이라는 전화를 받을 때라던지, 남편이 교통사고가 나서 몇 달간 수입이 절반 이하로 끊겼을 때라던지, 만취한 할아버지가 이진진의 목을 졸랐을 때라던지 그런 일들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큰 파편을 남기지 않고 해결되었다. 좋은 일들은 더 많았다. 나라가 손녀딸 민이를 낳았을 때, 올해의 친절 택시기사 상을 받았을 때라던지. 이런 충격에 가까운 기쁜 일이 드문드문 일어나기도 했지만 일상에도 소소한 기쁨은 스며들었다. 엄마와 같이 탄 어린이가 추파춥스를 건네었을 때, 꽃송이가 잔뜩 쌓인 포대자루를 들고 탄 학생이 장미꽃 한 송이를 주고 갔을 때 이진진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삶에 감사하고 사람이 좋았다.
하지만 몸을 움츠리게 드는 일은 소리 소문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출생률이 매년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인구 구조의 절반이 육십오 세 이상 노인인구로 변화하면서 사회는 충격여파를 그대로 맞았다. 세금부담이 가중화 된 청년들은 누구를 미워할지 골랐으며 이는 약자혐오 노인혐오로 이어졌다. 그들은 노인을 숨만 쉬어도 기본급여가 나가는 돈 덩어리로 여겼다. 정부에서는 노인에게 돈을 줄 테니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사회로 일하러 나오는 노인들은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일하지 말라는 의제가 권장사항으로 그치던 게 법으로 제정되며 많은 노인들이 잡혀갔다.
이진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그렇게 미워한다는 것이. 이해가 제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남편은 암 투병을 시작했다. 이진진은 또래 택시 기사들이 일을 그만두어도 계속 야간 운전을 했다. 자녀는 독립해 가정을 이뤘지만 겨우 식비만 충당가능한 기본급여로는 미래가 없었다. 이진진은 처음으로 자신의 택시를 샀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딱 십 년만 해보자는 다짐을 했었다. 십 년이 이 십 년이 되고 삼 십 년이 되고 나서는 그는 다른 미래를 생각했다.
‘몸의 기능이 정지될 때까지 해보자.’
이진진은 복근이 있었고 시력도 좋았다. 그는 자신을 믿었다.
-
“언니가 뭔 노인이야. 언니는 내 딸보다 힘이 세다고.”
지난달 말 이진진과 후배 택시 기사 김소망은 폐차장에 서 있었다. 김소망은 택시 기사 조합을 탈퇴하고 자신의 택시를 정리했다. 그는 택시를 그만두고 수도권으로 내려갈 예정이었다.
“노인인증제도는 나이 먹은 것들은 한적한 곳에서 뜨개질이나 하라는 말이야.”
이진진과 김소망은 얼마 전에 노인인증제도를 갱신하고 왔다. 사진을 찍고 나이를 확인받고 기본급여를 수령하려는 절차지만, 이 제도 하에서 노인은 낙인과 같았다.
“난 평생 뜨개질 해본 적 없어.”
“나도. 바느질도 한 적 없어. 수선실 맡기면 될 일 아니야?”
이진진과 김소망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우리의 손 발을 묶어둘 셈인 거야. 나는 어쩔 수 없지만… 언니는 계속 이 일을 하겠지.”
“...”
“잘 도망 다녀. 언니 차는 누구보다 빠르잖아.”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줄래?
김소망은 무슨 그런 소리를 하냐는 듯 이진진의 어깨를 세게 내리쳤다. 그리고 속삭였다. 약한 소리 하지 마 언니. 할머니들이 얼마나 빠른지 보여주자고.
김소망이 도시를 떠난 이후 분위기는 더 침울해졌다. 택시 기사 조합에서 노인인증을 받은 노인은 전부 탈퇴시켰다. 택시 기사 조합에 속해 있지 않으면 택시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이진진은 어렵사리 가짜 이름과 나이를 받아 택시 기사 조합에 새롭게 등록했다. 김소망의 도움이었다. 이름은 이진진. 나이는 육십 살로 실제와 무려 십 년이나 차이나는 젊은 나이였다. 노인인증제도에 노인으로 등록되려면 아직 오 년 정도의 시간을 보장받은 셈이었다.
이진진은 해가 완전히 져야만 밖으로 나갔다. 항상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누군가 잡혀가고 누군가 낙향하는 나날이 이어졌기 때문에 주변인들도 이진진이 일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부산에 투룸 아파트가 있어. 거기로 가서 잠깐 쉬어. 아빠는 내가 챙길게.’
얼굴을 꽁꽁 싸맨 이진진이 차키를 챙겨서 출근을 하려는데 딸 나라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노인인증제도가 시행된 이후 나라와 대화가 부쩍 줄었었다. 이진진은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커피와 과자를 가방에 넣고 출근했다. 그렇게 젊은 여자를 태우고 홍대로 가는 택시가 움직인 것이다.
-
“안녕하세요.”
이진진의 택시에 네 번째 손님이 탔다. 홍대 근처에서 술 취한 사람들을 근거리로 옮겨주고 난 다음이었다. 뿔테 안경을 쓴 젊은 남자는 술 냄새 없이 말끔했다.
“서울역으로 가주세요.”
표준말을 쓰고 있었지만 사투리 억양이 묻어났다.
“... 흠흠. 부산 분이신가 보죠.”
“엇. 어떻게 아셨어요. 애들이 서울말 잘 쓴다던데!”
남자는 쾌활하게 웃었다. 그는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진진의 꽁꽁 얼었던 마음이 살짝 풀렸다.
부산은 이진진의 고향이었다. 이진진은 부산에서 나고 자라면서 결혼하기 전까지 거기서 일했다. 진학 실패도 첫사랑의 아픔도 다 부산에서 고이 간직한 경험이었다. 이진진은 자기 고향 부산에 대해 말할 때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곳의 산과 바다, 국밥과 밀면을 나열하면서 아름다운 추억만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나라가 그곳으로 가라고 하니 유배지가 된 것 마냥 기분 좋게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서울은 자의로 선택한 곳이었지만 부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진진은 대화하지 말자는 생각을 잊고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도 부산에서 태어났어요.”
“와. 동향이네요. 부산 할머니. 반가워요.”
흠흠. 이진진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핸드폰을 바라보며 흥얼거렸다. 그는 부산에서 대학까지 나온 후 취직해서 서울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친구들한테 자랑했어요. 택시 기사님이 할머니라고. 저도 나이 들어서도 일하고 싶은데. 짱 멋지잖아요.”
“아…네.”
“근데 요즘은 세상이 말세다 그렇죠. 애들은 평생 놀고 싶어 하지만 저는 일하는 게 좋아요. 할머니처럼 계속 일할 거예요.”
이진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누가 나이 든 사람을 내몰고 있는 걸까. 이 남자와 같이 긍정적인 사람도 있기야 했다. 보기 드물었지만.
택시는 부드럽게 이차선 도로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자정을 한참 넘긴 시각이라 가끔 총알처럼 달리는 차만 있을 뿐 도로는 한적했다.
“으흐흥. 으흐흥. 으흐흐흥.”
“...”
“억!”
갑자기 남자가 묵직한 소리를 질렀다.
“왜요? 왜 그래요?”
“저기 저 차! 과속이에요. 여기 단속 카메라 없다고 팔십 킬로 넘게 가잖아요.”
“아…네.”
이진진의 택시도 속도 좀 내볼 요량이었다. 이진진은 살며시 브레이크를 밟았다.
“카메라 달라고 건의해야겠네요. 이런 건 부지런히 계에 올려야죠.”
“아…무슨 일 해요?”
“별거 아니고요. 경찰이에요. 하하.”
이진진은 머리끝이 쭈뼜 섰다. 이 남자는 경찰이다. 이진진을 언제라도 수감시킬 수 있는 공권력을 가진 자였다. 이진진이 그간 어떤 불법행위를 저질렀던가. 허위 신분으로 택시 조합에 등록을 해 일하고 있었으니 그의 이름, 그의 나이, 택시기사 이진진은 모든 게 가짜였다. 혹시 자신이 잡혀가면 자신을 도와준 김소망이 위험해질 수 있다. 나라도 문제 될 수 있다. 나라는 공무원이었다. 이진진은 방금 전의 대화를 후회했다. 혹시 걸리면 어떡하지.
‘약한 소리 하지 마 언니.’
‘할머니들이 얼마나 빠른지 보여주자고.’
폐차장에서 김소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진진은 다시 한번 입을 꾹 다물기로 마음먹었다.
-
남자는 이후 별 말이 없었다. 이진진은 법정 속도를 지키며 빠르게 서울역 가까이 왔다. 오늘은 후회로만 채워진 날이었다. 이진진은 자신의 어깨를 콩콩 주물렀다. 남자를 내려다 주고 퇴근해 버리자. 그리고 내일은 나라가 말해준 부산 아파트로 가보자. 영원히 머무르는 건 아닐 것이다. 몇 주, 아니 몇 달 정도는 쉬면서 상황 돌아가는 걸 보는 건 괜찮을 것이다. 그는 빈 커피 캔을 살짝 흔들었다. 갈증이 일었다.
“어어. 이건 뭐지.”
“...”
남자는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읊조렸다.
“홍대에서 제보가… 노인이 운전하는 총알택시… 여성… 젊어 보이고…”
그는 눈가를 찌푸렸다. 이진진은 고개를 살짝 흔들고 집중하려 애썼다. 아니야. 할 수 있다. 도망갈 수 있다.
“흠흠.”
이진진은 기침으로 도착했음을 알렸다.
“저… 기사님 죄송한데요, 다시 홍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일이 생겨서요. 아잇, 오늘 부산 가기는 글렀네.”
남자는 투덜거리며 안경알을 닦았다. 이진진은 핸들을 꽉 잡았다. 여기서 이 남자를 내리게 해야 한다.
“미안하지만… 저도 급한 일이 있어요. 오늘은 여기까지만 영업해요…”
목소리 끝이 떨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 이것 참. 알겠어요. 다시 택시 잡아야겠네요.”
남자는 제보받은 사건에 몰두하느라 금방 단념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더니 재킷과 가방을 챙기며 투덜거렸다. 당장 홍대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내 고향 부산에서 온 할머니. 잊지 않을게요.”
남자가 씩 웃어 보이며 택시에서 내렸다.
이진진은 남은 기름을 확인하고 IC로 내달렸다.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달렸다. 정속 따윈 무시했다. 갈라지는 목을 가다듬으며 자고 있을 나라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음. 나라야. 엄마야. 지금 부산으로 가는 중이야. 일어나면 아파트 비밀번호 보내줘. 당분간 거기서 지낼게. 아빠를 잘 부탁해. 엄마는…”
이진진은 울컥하며 올라오는 기운을 힘들게 삼켰다.
“엄마는. 다시 택시 일을 할 거야. 엄마가 얼마나 빠른지 알지? 말도 못 하게 잘 달리잖아. 연락 줘. 있다가… 연락해.”
화물트럭이 몇 개 지나가고는 또 암흑같이 컴컴한 도로가 이어졌다. 이진진의 택시가 고속도로를 올라타 질주하기 시작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