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반려동물 전성시대였다. 도시에는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인구가 아이를 낳는 인구를 추월하면서 키즈카페보다 애견카페가 더 많이 생겼다. 애견 전용 미용실이나 강아지 유치원도 성업했다. 머리를 자르고 싶은데 인근에 새로운 미용실이 생겼으면 반드시 전화해서 확인해야 한다. “거기 사람 머리 잘라주는데 맞나요?” 핸드폰 너머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사장이 잠깐 곤혹스러움에 잠긴다면 십중팔구 애견 미용실이었다. “아…. 아뇨, 손님. 저희는 강아지 손님만 받습니다…. 왈왈왈.” ‘사람 손님’ 받는 곳을 찾아 전화를 걸어야 실패하지 않는다.
개와 고양이는 점점 선호하는 품종이 단순해졌다. 맹견들은 더 이상 집을 지킬 필요가 없어서 목소리가 작아지고 이빨이 무뎌졌다. 고양이도 사람한테 친화적인 종이 인기를 끌었다. 보다 함께 살기 쉬울 것이 사람이 동물을 기르는 첫 번째 기준이 되었다. 같은 종끼리 모임이 만들어지고 다른 종인데 커뮤니티에 안 들어가 있으면 쉽게 배척당했다. 흔히 믹스라고 부르는 잡종견은 모임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에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공식적으로 멸종됐다고 알려진 지 수년이 지났다. 다시 나타난 늑대는 회갈색 털이거나 검붉은 빛이 흐르거나 눈처럼 흰 털을 가졌다. 덩치는 작아졌지만 서늘한 눈빛이 살아 있었다. 늑대가 나타났을 때 조금 큰 개로 생각하고 다가간 사람들이 뒷걸음치며 넘어졌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비명이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머지않아 사람들은 늑대에 익숙해졌다. 물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 늑대를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도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늑대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새로운 반려동물로 각광받았다. 늑대가 나타나고 집 안에 들이기까지 단기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누가 시작했을까.
누가 처음 늑대에게 먹이를 주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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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는 한국인 엄마와 일본인 아빠 사이에 난 외동딸이다. 그는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서 태어났다. 한국인 엄마 수아는 미국으로 귀화해 직업군인이 되었고 오키나와로 발령받았다. 그는 캠프 내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 나가와를 만나 하룻밤에 로사를 가지게 되었다. 엄마 수아는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로사를 키웠다. 같이 살자고 매달린 쪽은 나가와였지만 수아는 일본을 곧 떠날 생각이었다. 나가와가 딸을 보고 싶어 해도 한 달에 한두 번만 만나게 했다. 매달 수아는 미국 캠프로 근무지 이전신청을 써냈다. 로사는 엄마가 매일 아침 출근 전 머리를 빗으면서 하던 말을 기억했다.
‘우린 떠날 거야. 곧.’
수아의 바람이 무색하게 그들은 그로부터 십 년이나 더 오키나와 캠프에 머물게 된다. 미군들 대부분은 일 년 내지 이 년 정도 머물다가 본국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수아는 팀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일을 잘해서 떠날 수가 없었다.
로사는 가로로 찢어진 일본인 아빠의 눈과 뭉툭한 한국인 엄마의 코를 닮았다. 로사는 인종적으로 구십구 프로 동양인이지만 영어를 쓰고 이중국적을 가졌다. 캠프에 수많은 백인들과 소수의 흑인들, 더 적은 아시안들 사이에서 로사는 자주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로사 옆에는 친구가 있을 때도 있었지만 없을 때가 더 많았다. 로사와 같은 학교를 다녔던 한 친구는 그를 이렇게 증언했다.
‘로사. 귀여운 친구죠. 늘 조용했어요. 몸도 작은 데다 어깨도 둥글게 말려있던 것 같아요. 저는 종종 로사와 밥을 먹었죠. 우리 집에 놀러 오기도 했어요. 그때 작은 강아지를 길렀는데 로사가 참 좋아했죠.
저는 물었어요.
너는 강아지 키울 생각 없어?
로사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어요.
나는 곧 떠날 거야. 강아지를 기를 일은 없을 거야.
저는 가끔 그 애를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여기까지가 로사의 어린 시절을 분명히 기억하는 외부의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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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오키나와에 주둔하면서 진급을 거듭했다. 나가와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위해 도쿄로 떠났다. 나가와가 도쿄로 떠난 뒤에도 일 년에 한두 번은 부녀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가와가 방학을 맞아 오키나와에 오면 수아는 로사를 나가와가 묵는 호텔에 데려다주었다. 그는 로사에게 돌아올 시간을 일러주면서 나가와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예전에 끝났다.’
나가와는 이렇게 시작하는 일기를 썼다. 나가와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번 더 수아에게 결혼하자고 했다. 수아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메시지가 수아로부터 온 마지막 메시지였다. 나가와는 오키나와를 벗어나야 수아를 향한 마음을 접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로사를 이렇게 보기 힘들 줄은 몰랐겠지만 말이다.
로사는 나가와를 만날 때 이전보다 긴장했다. 나가와가 도쿄로 이주한 뒤 부녀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은 더 짧아졌기 때문이다. 로사는 자신이 ‘언젠가는’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고 믿었지만 현실에서는 그가 주로 남겨지는 쪽이었다.
“도쿄파파. 갈 시간 다 됐어요?”
로사가 호텔 침대에 걸터앉아 습관적으로 시계를 봤다. 그는 나가와를 도쿄아빠라고 불렀다. 나중에 만나게 되는 엄마의 남자친구들에게도 지역명과 아빠를 결합시켜 무슨무슨 아빠라고 부르게 될 것이었다.
“아니 로사. 비행시간은 저녁이야. 오후에 파인애플 농장 갈까?”
나가와는 여유 있게 웃어 보였다. 그는 종일 캠퍼스 내 기숙사와 실험실을 오갔고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에서 일하며 배운 영어로 영어학원 강사 자리를 얻었다고 했다. 수아를 만날 때만 해도 풋내기 시골청년이었던 그는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종종걸음 하면서 어느새 한 뼘 더 자라 있었다. 귀엽기만 하던 눈웃음이 깊어진 것만 봐도. 로사는 문득 나가와도 자신처럼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요.”
나가와와 로사는 렌터카를 타고 파인애플 농장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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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애플은 키가 너무 작아.”
나가와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은 일 차선 도로로 달리고 있었다. 파인애플 농장은 이미 몇 번이나 다녀왔기에 부녀는 농장의 전경을 다 외웠다. 파인애플 나무를 봤을 때도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이내 심드렁해졌다. 파인애플의 삐죽삐죽한 잎은 어른 허벅지에 닿을까 말까 했고 파인애플 열매는 잎사귀 정중앙에 꼿꼿이 매달려 있었다.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들에 비하면 파인애플 나무는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다.
“흠. 하지만 키가 작은 게 어때서.”
나가와는 자신도 모르게 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고 헛기침을 했다. 늘 작은 편인 딸이 신경 쓸까 봐 작은 키의 이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로사는 다른 생각 중이었다. ‘도쿄파파는 언제 가서 언제 올까.’ 그는 이 질문을 영원히 입 밖으로 낼 수 없으리라 여겼다. 차 안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나 애견보호소에서 강아지를 한 마리 데려왔어.”
“뭐? 진짜?”
나가와가 주변을 환기하려고 꺼낸 말에 로사가 어깨를 틀고 나가와를 바라봤다. 나가와의 작전은 성공했다.
“이름이 뭐야? 어떻게 생겼어? 언제부터 키운 거야? 기숙사에 데리고 가도 되는 거야?”
“저번 달에 데려왔지. 모찌처럼 흰색이야. 이름은 스노우(여기서 로사는 엄청 웃었다) 아아. 비웃지 않는 거야. 로사.”
“그래… 스노우. 보고 싶다.”
“사진은 다 흔들려서 보기 어려울 거야. 가서 영상통화할게.”
아참. 몰래 키우는 거야. 나가와는 검지 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소리를 냈다. 로사가 학교에 걸리면 어떡할 거냐고 물으니 태평한 대답이 돌아왔다.
“로사에게 보내줄게.”
“책임감이 없어!”
로사는 반려동물을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나가와를 혼내면서 파인애플 농장은 보는 둥 마는둥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스노우 생각뿐이었다.
‘혹시라도, 혹시라도 도쿄파파가 못 키우게 돼서 스노우가 집으로 오면 어쩌지. 엄마가 싫어할 텐데. 하지만… 빈 방이 있으니까 거기서 보살필 수 있겠지. 용돈도 있으니까 그걸로 밥도 사고 집도 살 수 있을 거야.’
로사는 나가와와 이른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캠프로 들어가는 길에도 스노우를 상상했다. 수아와 로사가 사는 타운하우스는 캠프 안의 주거단지 끝에 있었다. 똑같이 생긴 주택들을 지나치며 엄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여기는 진짜 우리 땅이 아니야. 잠깐 빌린 곳이야.’
‘그러니까 우리는… 떠날 거야. 곧.’
로사는 애써 머릿속 생각을 지우려고 얼굴을 움켜쥐었다. 그럴수록 눈송이같이 작고 하얀 스노우가 머리 위에 동동 떠다녔다. 로사는 이후로 밤마다 스노우랑 노는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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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 더 흘렀다. 초등학생이 된 로사는 키가 자랐고 머리가 허리춤만큼 길었다. 캠프 내 초등학교는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로사는 유달리 눈에 띄었다. 모델같이 다리가 긴 수아를 닮아 로사의 다리도 가늘고 길게 뻗어나갔다. 진한 흑발에는 빛나는 윤기가 흘렀다. 마침내 같은 반이었던 대니가 로사에게 고백했고 둘은 사귀었다. 어느 나라나 그렇듯 초등학생들끼리 잠깐 사귀고 헤어지는 일은 흔했다. 남과 여를 알아보기 시작한 어린이들의 사교생활이었다.
봄 방학이 시작되었다. 대니와 로사는 요거트나 크래커를 챙겨 공원에서 햇볕을 쬐었다. 로사는 수학이 어려웠고 대니는 한 친구와 자주 부딪혔다. 그들은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잔디밭을 굴렀다. 반 친구들은 데이트하러 가냐고 물었지만 로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봄 방학의 마지막 날에 대니는 로사를 집으로 초대했다.
“어서 와. 우리 집은 개를 키워. 물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로사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조그만 강아지가 로사를 반겨주었다. 강아지는 무릎까지 오는 긴 원피스 자락에 매달리며 침을 묻혔다.
“와우! 귀여워. 이름이 뭐야?”
“벨. 벨이 울리면 득달같이 뛰어와서 벨이라고 불러.”
둘은 한참 동안 강아지와 놀았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했던 집이 아이들이 꺄르륵 거리는 소리로 채워졌다.
“로사. 너는 강아지 기를 생각은 없어?”
벨은 아이들과 놀다 지쳐 낮잠을 자기 시작했다. 대니는 로사에게 우유를 가져다주며 물었다.
“글쎄…”
로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곧 떠날 거야. 강아지를 기를 일은 없을 거야.”
“떠난다고? 엄마 발령받으셨어?”
미군 가족들에게 근무지 이동은 흔한 일이었다.
“아직. 하지만 엄마는 늘 떠나고 싶어 하셨어. 언젠가는 다른 나라로 갈 거야.”
“한국으로?”
대니는 로사의 엄마가 한국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로사는 대니를 째려봤다.
“너는 그럼 아일랜드로 갈 거야? 아니잖아. 나는 한국인이 아니야. 한국은 잘 모른다고.”
대니는 빨간 곱슬머리를 벅벅 긁었다. 대니의 부모는 아일랜드 출신이었지만 대니 역시 부모의 고향에 가본 적 없었다. 그래도 대니는 언젠가 아일랜드로 가보고 싶었으니 로사가 왜 저렇게 반응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음. 그럼 어디로?”
“글쎄…”
로사는 잠든 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집 안은 다시 적막해졌다.
‘살아있는 동물은 이렇게 따뜻하구나.’
로사는 강아지 스노우가 떠올랐다. 그가 영영 알 수 없던 강아지. 나가와가 도쿄로 돌아가고 몇 주 뒤 수아에게 편지가 왔다. 부고장이었다. 스노우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보호소에서 떠돌이견을 분양받았으니 기생충 감염일 거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나가와의 흐릿한 필체 너머에는 슬픔만이 가득했다.
수아와 로사는 비행기를 타고 도쿄로 향했다. 나가와에게서 건네받은 스노우는 너무 뻣뻣하고 차가웠다. 나가와 말대로 티끌 없이 하얀 스노우를 끌어안고 로사는 소리 없이 울었다. 로사는 더 이상 스노우에 대한 꿈을 꾸지 않았다.
낑. 단잠에서 깨어난 벨이 끙끙거리며 일어났다.
대니는 분위기를 바꿔 뒷 산에 올라가 보자고 제안했다. 캠프의 북 쪽에는 야트막한 산맥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아이들과 벨은 타운하우스를 나와 높은 담장에 난 철문을 지나쳐 걸었다. 담장을 따라 둘레길을 걷다 보면 경사진 도로가 있는데 그곳부터가 산 길이었다. 신이 나서 앞장을 선 벨 뒤로 아이들이 숨을 헐떡거리며 산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여긴 좀 어둡네.”
로사는 상수리나무 옆에 잠깐 서서 땀을 닦았다. 대니는 벨을 따라 벌써 저만치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로사는 늑대를 만났다.
처음에는 강아지인 줄 알았다. 가만히 자신을 지켜보는 감색 눈동자 주위로 형형한 빛이 감돌았다. 로사는 가까이 다가갔다.
“악!”
로사가 늑대를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썩은 낙엽을 밟고 넘어졌다.
“무슨 일이야, 로사?”
대니와 벨이 다시 로사가 있는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늑대는 천천히 로사의 발치로 다가왔다.
“악! 늑대다.”
가까이온 대니가 소리를 질렀다. 저 동물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무의식적으로 떠오른 것이 늑대였다. 벨이 늑대 보고 짖기 시작했다. 컹컹 컹컹!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대니는 로사의 손을 잡고 무작정으로 달려 내려갔다. 조그만 강아지 벨은 거의 낙엽 위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들은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다. 그들이 타운하우스에 도착해 어른들에게 늑대와 비슷한 동물이 나타난 것을 알렸지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커다란 양치기 개를 두 마리나 키우는 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 개를 본 건 아니고? 걔네들은 매일 똥 싸러 밖을 떠돌아다닌단다!’ 하지만 조네 개는 아니었다. 이후에 대니와 로사는 각각 늑대의 첫인상을 증언한 적이 있지만 둘의 의견이 달랐으므로 사람들은 아이들의 상상력이 뒷 산을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덩치가 조금 크고, 털이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고, 갈색이고…”
“아니 흰색이었잖아! 내가 먼저 봤다고!”
“그렇지만…”
대니는 로사에게 결별을 고했다. 더 이상 로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로사도 대니가 이해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초등학생들에게 결별이란 다음 날 만나서 이제 우리끼리만 얘기하지 말고 친구들이랑 다 같이 얘기하자는 사인이었으니 로사는 전과 다름없이 학교생활을 보냈다. 다만 로사는 자기가 본 게 흰색 늑대가 맞는지 궁금했다.
‘분명히 스노우처럼 새하얀 늑대였는데…’
로사가 하도 흰색 늑대에 대해 말하고 다니니 수아마저 로사의 환상동물 이야기에 질렸다.
“로사! 늑대는 없어! 정 그러면 엄마랑 같이 산에 올라가서 찾아보자.”
주일 오후 모녀가 산에 오르는 길에 또 조를 만나 한 소리 들었지만 -어이, 내가 그쪽에다 우리 집 똥개들을 풀어놓았다고!- 로사는 흰색 늑대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수아한테서 멸종된 늑대종이 얼마나 위험한 동물이었는지 들었지만 그가 만난 흰색 늑대는 자신을 해칠 것이라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발 밑에서… 내 냄새를 맡았어.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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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와 수아는 해질 무렵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타운하우스 사람들 누구도 귀가하는 그들을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그저 땅거미가 내리자 로사네 집 부엌에 불이 켜졌기에 사람들은 허탕 쳤을 모녀에 대해 웃어넘기고 말았다. 그 시간 수아는 부엌에서 생고기를 꺼내느라 바빴다. 로사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쉬, 쉬, 소리를 냈다. 로사의 주의 깊은 목소리에 집중하고 있는 한 동물이 있었으니, 거실 바닥에 앉아 있는 회색 늑대였다.
“쉬. 쉬. 절대. 절대 짖으면 안 돼.”
“잠깐. 곧 다 돼 가.”
로사는 신선한 닭고기를 아주 잘게 썰었다. 로사가 낮은 쟁반에 닭고기를 깔아 주자 늑대가 긴 혀로 끌어 모아 맛있게 해치웠다. 늑대는 아주 잘생긴 동물이었다. 전체적으로 회색빛 털이었지만 털끝이 묘하게 붉었고 몸통 쪽은 하얀색이었다. 동그랗고 감색빛은 눈은 깊었다.
“얘,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지.”
“인정할 수 없지만 그런 것 같네.”
늑대는 닭고기를 다 먹고 우유까지 마셨다. 수아는 산에서 늑대를 만났을 때 군대에서 배운 맨손 타격법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곧 늑대가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을 거란걸 알았다. 로사는 수아가 경계를 풀자 바로 늑대를 끌어안았고 늑대는 가만히 안겨 있었으며, 수아가 경악하는 사이, 로사와 늑대가 사이좋게 산 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렇게 무언의 이야기가 오가며 늑대는 홀린 듯이 로사의 집으로 들어왔다.
“로사. 이건 정말 늑대가 맞아.”
동물도감을 찾아보던 수아가 말했다.
“그래. 하지만 흰색 늑대가 아닌 건 아쉬워.”
로사는 어리광을 피웠다.
“얘는 스노우가 아니야.”
“그건 나도 알아!”
로사의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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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는 피곤한 얼굴로 근무지 이전 신청서를 꺼냈다.
“로사… 우리 드디어 떠나게 됐어.”
서류에는 통과 도장이 찍혀 있었다. 행선지는 한국이었다. 이후 로사가 울다가 웃다가 하며 어떤 말을 꺼냈는지 모른다.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떠날 거라는 말을 하던 엄마와 드디어 떠나게 됐는데 집에는 방금 데리고 온 늑대가 있었다. 수아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았다. 그는 한국에 좋은 감정을 두고 미국으로 건너간 게 아니었다. 한국은 자신이 너무나도 미워했던 엄마 아빠가 살아계시는 고향이었다. 어쨌든 이제 한 달 후 한국으로 간다.
“엄마. 늑대도 나라가 정한 ‘반려동물’에 들어갈까?”
로사는 주거지를 같이 옮길 수 있는 반려동물 규칙이 궁금했다.
“글쎄…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잘 길들여봐. 반려동물이란 잘 길들여진 동물이니까.”
로사는 늑대를 쓰다듬으며 사람의 온기를 전달했다. 우리 같이 한국으로 가자, 되뇌며.
그렇게 늑대가 처음으로 길들여지게 되었다.
이 것은 함께 살고자 했던 사람과 동물 간에 태곳적 이야기이자 설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