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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그로부터 꼭 일주일이 지나고 우리 집에 다시 왔다. 엄마, 저번 주에 왔었잖아. 내일 김치도 담아야 한다면서 집에서 좀 쉬지. 아빠가 차 태워줄 때 같이 오면 편하고 좋잖아. 버스에 사람 많아서 앉지도 못한다며. 아니 아니 반찬은 아직 많이 남았다니까. 나는 택배박스와 일회용 커피 컵을 정리하면서 전화를 받았다. 간곡히 오지 말라고 해도 올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다. 결론은 오지 마시라는 얘기였지만, 그 이유는 정말로 걱정되는 일이었다. 성한 곳이 없다면서 올해도 꾸역꾸역 김장 행사를 준비하고 또 한 시간 거리의 딸 집에 올 생각을 하다니. 옛날 사람들은 어찌 이렇게 미련한 걸까. 나는 차가운 콜라 한 캔을 뜯어 한 번에 마시고 시원하게 트름을 했다. 얼른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야 했다.
" 걱정 마. 이번엔 아빠가 많이 도와준다고 했어. 올해는 무가 좋아서 총각무김치가 잘 될 것 같아. "
엄마의 양손은 웬일로 가벼웠다. 그는 작은 백 팩 하나만 메고서 소녀처럼 웃었다.
" 이건, 정수기 아줌마가 김 보내줬더라고. 여수 돌김인데 맛있어서 들고 왔어. 쩐내가 하나도 안 나더라고, 밥 있어? 한 입 먹어보면 좋은데. "
" 밥 없어... "
" 그렇겠지. 너희 집 밥솥은 참 고생이 많다, 야. 한낱 미물이라도 다 자기 일이 있는 법이거든. 밥솥이 밥을 안 지으니 얼마나 고난이야. "
나는 원래 햇반 먹으려고 했다고, 밥솥은 엄마가 하도 사라고 해서 떠밀려 산 거라고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엄마 말에는 지나칠 수 없는 뼈가 있었다. 모든 존재가 본분의 일이 있다면 엄마의 일은 뭘까. 어릴 적 엄마는 엄마로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하나의 사람으로 보였다. 실없이 웃고, 호기심이 많고, 아마 흘린 눈물도 많았을 정 많은 사람. 나는 슈퍼맨 같던 엄마가 힘과 역할을 잃어버리는 게 속상했다. 엄마가 엄마를 이탈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왜 엄마에서 사람이 됐지.
" 세희야. 내 말 듣고 있어? "
" 응? "
" 엄마 너네집 오다가 기원이 봤어. "
장기원? 왜? 절로 헛기침이 나서 가슴을 콩콩 두드리니 엄마가 살풋이 웃었다.
" 걔 머리 밀었더라? 안경도 엄청 두꺼운 거 쓰고 있어서 하마터면 몰라볼 뻔했지. 이제 공부는 그만두고 출가했다니? "
나는 폭소가 터져서 얼굴이 곧 벌게졌다. 머리는 왜 삭발해서는. 앞짱구가 심했는데 훤히 드러난 못난 두상이 어찌나 웃겼을지 못 본 게 아쉬웠다. 충격적인 소식이 가져온 파문은 그 후로도 한참을 웃게 만들었다. 간신히 웃음을 진정시키고 냉동실에서 떡을 꺼냈다. 엄마, 엄마, 걔가 어떤앤지 알아? 그 개새끼 진짜 웃기다니까. 나는 전자레인지에 떡을 해동하고 믹스커피를 타면서 전 남자친구의 기행에 대해 토로했다. 미처 고백할 수 없던 거짓말도 사과하면서. 엄마는 이야기하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