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마주한 나
첫째 아이는 정말 성심성의껏 돌봤다.
시간도, 여유도 충분했고, 온 마음을 다해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둘째 임신 때부터 여러 일이 겹치기 시작했다.
임신과 동시에 쏟아지는 스트레스, 출산 후에도 육아와 가게 일을 병행해야 했고, 결국 아이가 돌이 지나자마자 어린이집에 보내야 했다.
둘째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멈출 수 없었다.
보육교사 일을 시작하며 남편은 회사를 퇴사하고 가게를 맡았다.
나는 둘째를 데리고 어린이집에 출근했고, 퇴근 후에는 가게 회계 처리와 물품 정리 등을 해야 했다.
그 와중에 대학원 공부까지 병행하면서 하루하루가 정신없는 나날이었다.
모든 걸 혼자 감당할 수는 없었다.
결국, 평일 오후 2시간씩 공공형 아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나는 집 안에서 업무를 보며, 짧은 시간 아이를 맡기는 정도였기에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5월 중순부터 이상한 변화가 시작됐다.
아이의 수면이 불안해졌고, 자다 비명을 지르며 깨는 일이 반복됐다.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서는 마치 공포에 질린 듯 뒤로 넘어가며 울부짖었고, 집에 들어가길 거부했다.
처음에는 환경의 변화 때문이라 생각했다.
새로운 어린이집, 낯선 사람들, 엄마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가까이할 수 없는 낯선 구조.
성장 과정 중 겪는 자연스러운 불안이라 여겼고, 오감놀이 등 아이와의 교류를 더 늘리며 천천히 지켜보았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더 아이돌보미 선생님을 거부했다.
그렇다고 바로 중단할 수는 없어 5월부터 7월 말까지, 약 50일간 아이의 변화를 지켜봤고, 스스로를 탓했다.
‘내가 너무 많은 일을 해서 아이가 힘들어하는 걸까’ 하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그러다 7월 말, 차량 타이어에 문제가 생겨 잠시 외출을 해야 했다.
짧은 시간이었기에 아이를 아이돌보미에게 맡겼다.
그 시간 동안 아이가 돌보미 얼굴을 긁었다.
아이는 평소 손톱이 잘 정리돼 있었다.
혹시라도 어린이집에서 친구를 다치게 할까 늘 신경 쓰던 부분이었다.
돌보미 선생님의 얼굴은 살짝 긁힌 상태였고, 2~3일이면 아물 정도의 상처로 보였다.
나는 메디폼을 전달하며 사과했고,
“선생님 잘못은 전혀 없어요. 아이가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제가 앞으로 더 잘 돌보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며 정중히 종료 의사를 전하며 마무리했다.
그렇게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돌보미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에게 긁힌 상처로 병원에 다녀왔다며 치료비를 요구하는 내용..사진도 보내겠다고 했다.
금전적인 이야기에 당황한 나는 “선생님, 이런 문제는 돌봄 센터를 통해 정식 절차로 진행해주셔야 해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갑자기 목소리가 높아지며 “내가 뭘 잘못했는데, 갑자기 그만두라 하고, 이게 뭔 짓이에요”라며 언성을 높이는 듯 했고
그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 잠시만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혹시 아이에게도 이렇게 하신 적 있으신가요?”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했고, 통화를 종료한 뒤 센터에 상황을 알렸다.
그리고 집에 설치된 홈캠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얼굴은 달아올랐고, 머리는 터질 듯 부풀었다가 식었다.
차가움과 뜨거움이 번갈아 나를 휘감았다.
그 영상 속에서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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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실제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회고록입니다. 등장인물 및 사건은 개인의 기억과 해석에 따라 서술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식별하거나 비방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모든 표현은 공익적 기록과 자아 회복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