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척 살아온 나, 그 끝에선 용기
나는 내 인생을 살아내며
늘 '평범한 삶'을 동경했다.
결핍 있어 보이는 아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감추면 감출수록
숨기면 숨길수록
오히려 더 드러났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란 그런 것이었다.
어릴 때 나는 무시당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씻고 다녔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름대로 ‘잘하는 법’을 익혔다.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잘 씻고 다니는 건 기특한데,
머리를 감을 땐 귀 뒤도,
그리고 팔꿈치 안쪽도 꼼꼼히 씻어야 해.”
말은 조심스러웠고, 배려로 느껴졌다.
그 말을 들은 이후,
나는 귀 뒤와 접히는 부위를
더 열심히 씻는 이상한 강박을 가지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그런 식이다.
무심한 말 한마디,
조금의 배려,
그리고 끊임없이 되풀이된 상처들.
"나도 널 이렇게 안 좋아하는데,
너 같은 애를 누가 좋아하겠어."
엄마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
그 말에 익숙해진 나는
미움받지 않기 위해
늘 안간힘을 쓰며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되었다.
나는 삐뚤어졌고,
무던하지 못했고,
사람들에게 맞춰 살며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려 애썼다.
그렇게 사는 법은
어릴 적 읽던 책들에 다 나와 있었다.
나는 그 속에서
삶의 지혜와 살아남는 방식을 배웠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엄마를 쉽게 끊어낼 수 없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둘째 아이의 일을 겪고 나서야
엄마와의 인연을 끊을 용기가 생겼다.
그토록 미움을 받았는데도
왜 그 관계를 끊어내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평범해 보이고 싶은 열망'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는 집.”
“사랑받으며 자란 아이.”
그렇게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또는,
“그래도 낳아준 엄마잖아.”
그런 말들 앞에 쉽게 흔들리던 나.
그리고, 어쩌면
복수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모진 마음도 없으면서
복수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던 시절도.
하지만 나는 지금 말하고 싶다.
우리는 끊어낼 자격이 있다.
그들이 ‘자식’이라는 이름을 빌려
멋대로 휘두른 권력과 폭력,
그 관계를 더는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누군가는 “그래도 그렇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계속 얼굴을 마주하며
과거의 기억을 되새기고,
섭섭함을 쌓고,
내가 병들어 가는 것보다는
그 끈을 끊는 게 나를 위한 일이었다.
영상 속 아이를 보며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너무 불쌍했고,
너무 안쓰러웠고,
동시에 대견했다.
그리고 문득,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동학대의 피해자였지만
책이 있었고,
그 책이 나를 살게 했고,
그 배움 속에서
나는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냈다.
가끔은 생각했다.
‘다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을 했고,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나는 지금도
남에게 기대는 법을 모르고,
기대를 허락하는 법도 모른다.
그저, 조용히
혼자서 해결해 가며 살아가는 법만을
오랫동안 배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