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없는 시대의 육아

by 이서연

사과는 지는 것이 아니다

요즘 사람들은 왜 이토록 사과에 인색할까.

사과는 곧 '인정'이고, 인정은 '책임'으로 이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일까.

장나라가 주연한 드라마 《굿 파트너》

9화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 "어른들은 자기 잘못을 남한테 돌린다.

어른의 사과에는 늘 조건이 붙고,

진심이 없다. 잘못하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는, 그 간단한 사실을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린다."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배려를 잊은,

아니 잃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과는 단순한 말이 아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감정을 공감하고,

책임을 나누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정 → 책임 → 불이익’이라는 공식 속에서 사과를 회피한다. 특히 위계가 분명한 조직일수록, ‘먼저 사과하면 진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 인식은 사과를 '굴복'으로 만든다.

---

나는 지금, 법적 절차 속에 있다. 24개월 미만의 내 아이를 맡긴 아이돌보미로부터 학대 정황이 발견됐고, 공적 기관에 의해 일부가 '아동학대'로 판단되어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시작은 단순했다. 나는 진심 어린 사과를 바랐다. 처벌이 아닌, 책임 있는 태도를 원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회피와 반박뿐이었다.

1차 공판 후, 나는 아이 돌봄 센터와 시청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상대측 변호사가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 "아동학대를 다수결로 정하는 게 맞습니까?" "이게 아동학대라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애를 어떻게 돌보겠습니까?"


내가 피해자임을 언급하자, 그는 다시 말했다.

> "피해자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겠죠." "보육교사 할아버지가 와도 학대는 아니에요."


그 자리에 있던 시청 직원이 나서서 말했다.

> "여기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만 돌아가 주세요."

그제야 대화는 끝났다. 그날 이후, 나는 변호인을 선임했다. 더는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

나는 처음부터 '진심 어린 사과'를 원했다. 그러나 그 바람은 무시되었고, 2차 가해로 돌아왔다.

피해자는 계속해서 자신의 상처를 입증해야 했다. '그게 정말 학대인지', '피해자가 맞는지'를 끊임없이 설명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사과하지 않으면, 상대가 모든 걸 증명해야 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진심은 자주 무시된다는 사실을.

"무조건 아니다"라고만 말하면 된다. 그러면 상대는 증거를 들고, 감정을 말로 풀고,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 진실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쪽이 남는 구조. 그 안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조용히 사라진다.

---

사과는 지는 게 아니다. 사과는 공감이고, 책임이며, 성숙한 사회의 기초다. 그런데 우리는 사과하지 않는 사회, 사과를 두려워하는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나는 아이도 없고, 육아와 상관없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당신이 늙고 병들어, 억울한 일을 겪고도 말할 힘이 없을 때 그 사회가 당신에게도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건 여전히 당신의 일이 아닐까?


---

진심 없는 사회에서 남는 건 단 하나다. 끝없이 증명해야 하는 피해자와 침묵 속에 남는 가해자.

우리는 사과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들이는 법도 함께 배워야 한다.

나는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내가 낳은 아이들을 위해, 작은 목소리라도 내고 싶다.

이 글은 내가 옳다고 주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다.

누군가를 탓하고 헐뜯는 사회가 아닌,

책임을 나누고 이해를 확장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 육아하고,

살아가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keyword
이전 02화예민한 시대의 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