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의 육아

by 이서연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이기적으로 변했을까.

지금 우리는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으려 하지만,

어떤 불편도 감내하지 않으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작은 손해에는 보상을 요구하고, 사소한 불편에도 책임을 묻는다. 그 중심에는 ‘개인주의’라는 말로 포장된 감정의 분리와 관계의 단절이 있다.


이건 단순한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끊임없는 노출과 비교, 그리고 ‘보이는 것’이

곧 생존이 된 시대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변했다. 아이의 일상은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고, 아이의 성취는 부모의 능력으로 여겨진다. SNS는 경쟁의 무대가 되었고,

나 역시 커뮤니티를 뒤지며 남의 삶을 부러워하고, 동시에 누군가가 부러워할 만한 장면만 골라 올린다. 보여줄 수 있는 것만 남고,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은 지워진다. ‘노출’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며, 때로는 칼날처럼 타인을 겨눈다.


>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게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른 채, 사람들은 오늘도 자신을 콘텐츠처럼 연출한다.

좋아요, 구독, 공유, 소비, 평가, 보상… 우리는 점점 더 철저히 ‘개인화’되어 간다. 사람과 부딪히는 일은 귀찮고, 소통보다는 클릭이, 만남보다는 배달이 익숙해진다.


직접 가서 물건을 고르기보다 로켓배송을 누르고, 불편한 일은 점원과 이야기하기보다 리뷰에 남긴다. 기분이 상하면 반품하고, 불쾌한 경험은 캡처해 공론화한다. 감정은 이제 말로 교환되지 않고, 디지털로 송달된다.


그 흐름 속에서 우리는 감정을 지체 없이 처리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데 익숙해졌다.

시간을 들여 감정을 소화하거나, 스트레스를 가라앉히는 일은 점점 낯설어진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초등학교 운동회의 소리가 시끄럽다며 민원이 들어오고, 어린이집은 혐오시설로 취급된다.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먼저고, 아이들의 존재는 점점 불편한 요소로 여겨진다.


“아이는 나라의 미래”라는 말은 이제 껍데기만 남았다.

지금 이 순간, 내 하루와 내 공간이 더 중요하다. 미래는 중요하지 않다. 다음 세대는 내 곁에 없는 ‘먼 타인’ 일뿐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아이 키우는 건 부모 책임인데,

왜 남에게 피해를 주느냐고.

어쩌면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아이들이 웃고 뛰노는 일이 그렇게까지 불편한 일일까?


육아 현장에 들어온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뉴스에서나 보던 말들이 현실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분명히 깨달았다.

지금의 육아는 단지 힘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고립된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


물론 부모의 문제도 있다.

모든 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아닌 것도 아니다.

자신의 방식만이 옳다고 믿고,

선생님들은 자신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다.


최근 어떤 커뮤니티에서 본 이야기처럼,

근로자의 날에도 출근하는 맞벌이 부모들을 위해 운영된 어린이집에, 해당 대상이 아님에도

다른 아이가 어린이집을 가는 걸 보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맡긴

학부모의 글이 올라왔다.


그 아이의 마음은 어땠을까.

놀이터에서 놀다가 갑자기 어린이집으로 보내진

그 순간, 그 어린 마음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그 글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부모도 쉼이 필요하다.

그 사실에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 역시 매일 아침 어린이집에 ‘출근’하고, 그 속에서 사회적 관계와 규칙을 감당해 낸다.


그 아이들이 쉴 수 있는 날조차,

어른들의 편의를 위해 또다시 기관에 보내진다면,

그 마음은 어디에서 안정을 얻을 수 있을까.


가끔은 아이들의 눈빛이 안쓰럽다.

사랑을 받아야 할 시간에,

기관에서 선생님의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은

왠지 씁쓸하다.

물론 선생님들의 사랑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부모가 아닌 타인의 사랑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육아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대신 키워주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함께 키워야 한다.

부모는 부모로서의 사랑을 주고,

사회는 사회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런 공존의 인식 없이,

우리는 결코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보여줄 수 없다.


나는 점점 더 두려워진다.

내가 낳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내가 마주하는 아이들이 자라 갈 세상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소음이 되고,

아이들의 놀이 활동은 민폐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아이를 낳는 것보다 아이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더 어려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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