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면서 문득 깨달았다.
나는 늘 삶에 감사한다고 말해왔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것을 미워하고, 억울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고스란히 내 글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내가 이런 일들을 겪었으니, 세상을 원망해도 되는 거야.’
나는 그런 태도로, 감정을 여과 없이 토해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이들의 글을 읽게 되었다.
그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나의 글을 되돌아보았고,
그 순간, 깨달았다.
어쩌면 내 글은 나만의 감정 쓰레기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후로 글쓰기가 두려워졌다.
생각을 말로 꺼낸다는 것 자체가 무서워졌다.
내가 바라보던 세상의 관점이 흔들렸다.
그 변화는 낯설었고, 불편했고, 무엇보다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왜 내 힘듦에 몰입한 채,
스스로를 안쓰럽다 여기며 방어하고 있었을까.
왜 세상을 비판하며, ‘내가 겪는 일이 곧 진실’이라는 편협한 시선으로
글을 써왔을까.
그 질문 끝에,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외출했을 때,
젊은 커플은 아이를 귀엽다며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었고,
중년 부부는 조용히 나를 배려해 주었다.
같은 부모들은 서로를 살피고, 나누고, 기다려주는 모습도 보였다.
좋은 기억보다 상처가 오래 남는다는 말처럼,
나는 자꾸만 부정적인 장면들을 떠올려
‘요즘은 다 그렇다’는 식으로 말해왔던 것이다.
그런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세상은 다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불편한 세상이기도 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지만,
함께 고민하고, 조금씩 바꿔갈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누군가 조심스럽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때,
“괜찮습니다”라고 웃으며 답하는 사람들.
그 한마디 속에 깃든 다정함이
지금의 나를 서서히 바꾸고 있다.
글을 쓰고, 다른 이의 글을 읽으며
내 가치관과 시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내가 겪었던 어떤 순간들에도
그 사람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내 사정이 있었던 것처럼.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라는 걸,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외치지 않기로 했다.
‘육아는 불공평하다’고,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느냐’고,
억울함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가 겪어온 일들과 앞으로 마주할 일들을
조용히 기록하며,
함께 살아가는 법을 고민하는 글을 써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