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시국인지라 나는 활동성 집순이가 되었다. 하루 종일 집에서 가만히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켜고 보는 일은 잘 못한다. 문득 떠오른 유튜브 알고리즘의 영상 하나는 나에게 또 다른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당장 오일 파스텔과 드로잉북을 구매했다. 영상을 보며 무작정 따라 했다. 7살에서 그림 실력이 멈춘 나는 생각보다 잘 나온 완성작을 지인들에게 보여줬다. 지인들은 전부 놀랐다. 나는 잘 그린 완성작은 내 방 한쪽 벽에 마스킹 테이프로 잘 붙였다.
어느 날은 아크릴화를 그리는 영상이 떴다. 그려보고 싶다고 말하자 지인이 아크릴 물감과 캔버스를 내게 선물했다. 또다시 무작정 물감을 짜고 붓질을 했다. 생각보다 큰 캔버스에 압도되었으나 완성작을 보고 내심 뿌듯했다. 몇몇 지인들은 그림을 달라고 할 정도였다. 자신의 방에 달아놓고 싶다고. 부끄러워 차마 그러진 못했지만 대신 내 방의 다른 벽 한쪽에 전시했다.
한 때는 동대문에 가서 직접 부자재를 다 사다가 디자인을 하고 액세서리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스마트 스토어를 열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들이 많이 있었다. 뿌듯했다. 내가 가진 재주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 같아 마음이 벅차올랐다.
글을 쓰면서도 자주 느꼈다. 나는 창조하는 일이 재밌다. 노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고, 글을 쓰고. 내가 만들어낸 그 모든 것들이 사람들의 긍정적인 리액션으로 이어질 때면 그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참 많구나 느꼈다.
한 때 연애에 푹 빠져 있을 때는 나만의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있어도 뭘 해보겠다는 생각은 굳이 안 해봤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게 새로운 취미나 창조에 대한 시간을 권유하는 사람은 없었다. 데이트가 없는 날이면 그저 밀린 집안일을 하고 책을 읽고 전 연인에 대해 연락을 기다리는 일을 제외하고는 내가 무엇을 재밌어하는지 조차 몰랐다. 나는 이렇게나 재주가 많고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내 삶을 알록달록하게 만들고 싶다. 많은 것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내가 되고 싶다. 점점 커지는 이 마음은 자꾸만 나를 가슴 뛰게 만들었다. 아, 이제야 나는 나를 알아간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나의 숨겨진 재능, 즐거워하는 것, 좋아하는 향기와 색깔, 어느 날의 분홍빛 노을 지는 하늘까지도. 시간이 지나간다. 내가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