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게는 많은 스트레스가 쌓여있었다. 번아웃 증후군, 그 말이 딱 맞았다. 회사에서는 나의 승진과 함께 업무와 책임에 대하여 많은 변화가 생겼고 그로 인해 굉장히 바쁘고 정신없는 하루들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날은 너무 바빠 밥을 챙겨 먹을 생각조차 하지 못해, 보다 못한 팀장님이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 와 전자레인지에 데워주고 내 손에 숟가락까지 쥐어주고 나서야 퇴근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마저도 다 삼키지 못해 거의 다 버리기 일쑤였고 나머지는 화장실에 가서 구역질을 하며 게워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내가 우울함을 느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약이 다 떨어져 주말에 정신과를 방문했다. 요즘 어떤 상태인지 묻는 의사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조차 하기 피곤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꾸역꾸역 말을 뱉었다.
"그냥 요즘 너무 바빠요. 회사에서 말수도 줄고 웃음도 많이 사라졌어요. 억지로 웃느라 입꼬리가 떨리는 게 느껴져요. 근데 우울하다고 느끼지는 않아요. 이 또한 시간이 지나가면 괜찮아질 거란 것도 알고요. 근데 그냥 빨리 지나갔으면 해요."
의사 선생님은 내가 하는 말들을 들으며 컴퓨터에 열심히 받아 적으셨다. 언제나처럼 나는 그 화면에 나에 대해 어떻게 적혀있는지 모른다.
"얘기를 들어보니 제가 그 자리에 있어도 상당히 스트레스겠는데요? 절대 이로 씨가 잘못된 게 아니에요. 상황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우울하거나 하진 않다는 거죠? 그럼 가장 작은 약 한 알만 빼볼게요. 일단 2주 정도 먹어보고 우울하다고 느껴지면 다시 추가해볼게요."
나는 이 판단이 무책임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인지 도전하게 되는 것 같아 차라리 오기마저 생겼다. 나 역시도 내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약이 줄어도 나아질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하루빨리 이 많은 알약들이 줄기를 바랐다.
또다시 바쁜 2주가 흘렀다. 여전히 나는 밥 먹을 시간조차 아껴가며 일을 했고, 외근을 다녀오면 멀미로 인해 하루 종일 메슥거렸다. 예약시간에 맞춰 병원을 방문했다.
"2주간 어땠어요? 약이 줄었더니 많이 우울했나요?"
"아뇨. 괜찮아요. 추가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어쩌면 나는 정말로 오기를 부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겨내고 싶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우울함과 괴로움, 자괴감, 열등감 등 느끼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나는 약 없이도 이겨내고 싶었다. 약에 의존해서 버티는 것보다 조금씩 내가 내 스스로를 토닥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대신 조금은 힘을 빼보라는 조언을 하셨다.
"시속 180km로 계속 달리지 않아도 돼요. 120km로 달려도 되는 구간에서는 말이죠. 물론 60km로 달리면 문제가 생기겠지만요. 제가 봤을 때 이로 씨는 책임감 때문에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은 힘을 빼도 돼요. 아무 문제 없을 거에요."
10알에서 9알, 아직 많이 남은 나의 알약들. 그러나 나는 스스로 다독이며 일으키는 법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언젠가 오지 않아도 된다는 의사선생님의 그 말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스트레스를 이겨내려 애쓰고 있다.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몇 번이고 속으로 되새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