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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Oct 20. 2020

감정에 마주할 것.

평범한 하루를 보냈던 그 어느 날에 갑자기 그럴 때가 있다. 한바탕 눈물을 쏟아내고 시원해지고 싶은 날. 그런데 눈물은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하는 그런 날. 무언가 차오르는 어떤 감정을 흘려내지 못하고 참아내느라 목울대만 아픈, 누군가의 품에 안겨서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가장 힘든 건 이런 내가 안겨 울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타지에서 홀로 산다는 외로움, 오늘도 간신히 살아내느라 힘겨웠던 나의 하루, 일하면서 지었던 억지 미소들. 힘내느라 오히려 힘을 다 써버려서 체력이 바닥난 기분이다. 왜일까, 요즘의 나는 문제없었는데 말이야. 괜히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끝나버린 과거의 사랑과 모질었던 나의 언행에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 나를 떠난 사람들과 내가 떠난 보낸 사람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친다.


요 며칠 내게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웃기다."라는 말을 자주 하기 시작했다. 메신저를 할 때에도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나는 웃기다는 말을 습관처럼 했다. 그러나 표정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사실 나는 즐겁지 않았고 상대의 기분에 맞장구치기 위한 리액션일 뿐이었다. 그런 버릇이 생겼다는 것에 서글펐다. 온통 마음이 깊은 파란색 물감으로 뒤덮인 기분이었다. 평소엔 좋아하던 노래들도 전혀 위로가 되질 않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무언가 결핍된 건 아닐까 스스로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는 그런 날이었다. 


입술이 아플 정도로 깨물며 힘을 내어본다. 속으로 괜찮다는 말을 몇 백번이고 수없이 속삭이며 일어나 본다. 우울이란 바다는 그 속이 꽤나 깊어서 자꾸 발버둥 치며 헤엄쳐도 숨 쉴만한 육지를 발견하기 어려웠다. 대충 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잠식된 이 우울을 어떻게 하면 될까. 이마를 짚어본다. 그러다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는 이제 막 늦은 저녁 식사를 다 하시고 설거지를 하려고 하셨다. 내 우울의 침식을 알아챈 엄마는 어디 아픈지부터 물어보셨다. 아무 일도 없는데 난 왜 힘든 걸까 엄마. 울먹거림을 들킬까 목을 가다듬는다. 엄마는 내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 사실 방법은 간단했다. 힘내지 않으면 된다. 우울한 기분에 맞서지 않아도 된다. 왜 우리는 슬픈 감정을 원수처럼 여기고 맞서 싸우려고만 하는 걸까. 이 기분을 느끼는 지금의 나도 나 자신이다. 내가 느끼는 지금 이 감정을 오롯이 바라보면 안 되는 걸까. 슬픈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정면으로 바라보면 안 되는 걸까.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우산을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맞대고 걸어야 우산이 뒤집어지지 않는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다. 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것, 그것이 무너지지 않는 방법이다. 기쁠 땐 충분히 기뻐할 것, 슬픈 땐 충분히 슬퍼할 것. 웃음이 터질 땐 까르르 소리 내어 웃고, 눈물이 흘러나올 땐 소리 내어 엉엉 울어볼 것. 힘이 들 땐 힘들다고 말하고 놓을 줄도 알아야 하고, 외로울 땐 외롭다는 말하고 다른 두 손을 맞잡아 볼 것. 그래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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