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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Oct 23. 2020

싫어요

나의 첫인상: 밝다. 정이 많아 보인다. 잘 웃는다. 선 해 보인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을 것 같다. 예의가 바르다. 애교가 많아 보인다. 사교성이 좋을 것 같다.


그랬다. 주변 지인들에게 들은 나의 첫인상은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다 맞는 말이었다. 그중에 하나는 '거절을 잘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꽤나 많이 들었는데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이것을 사람이 좋아 보인다는 뜻으로 내 멋대로 해석했는데, 세상 살다 보니 착한 것은 순진한 것이고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호구되는 길이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니 모든 업무는 내게로 과중되고, 그만큼 정당한 대가조차 받지 못하고 제 풀에 지쳐서야 그 회사를 나왔다. 1년을 넘게 일했지만 퇴직금조차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사회생활에서만 나타나는 문제는 아니었다.


남녀 관계에서도 번번이 일어났다. 나는 그저 친절히 대하고 싫다고 말하지 못했을 뿐인데 그들의 집착은 더 심해졌다. 심지어는 연인 관계가 아닌 사람마저도 내게 늦은 밤에 택시비를 줄 테니 자신의 집으로 어서 오라는 요구도 있었다. 오랜만에 하는 연락은 안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료하거나 외로울 때만 내게 전화를 했다. 거절하지 못한 나의 업보였다.


싫다고 말하는 것이 단순히 사이에 벽을 치는 것,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나를 보호하는 것, 내가 상처 받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것이었다. 나는 예의 바르게 거절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나는 싫다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정중하게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되, 관계가 틀어지지 않는지 고민했다.


싫다고 말하되, 나의 기분과 상황을 덧붙여 말했다. 그랬더니 아무렇지 않게 그들은 알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더 놀라운 사실은 떨어져 나갈 인연은 알아서 떨어져 나갔다. 찔러보기 식으로 나를 건드려 보았다가 반응이 없으니 자연스레 연락이 없었다. 반대로 나의 상황과 기분을 이해한 사람들은 정중하게 사과하고 더욱 신중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싫다고 말하는 용기가 생기니 내 곁에 남아있을 인연을 골라내게 되었다. 덕분에 나는 나의 감정 또한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거절하는 용기, 그것은 어쩌면 올바른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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