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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Oct 13. 2020

행복하게 해 주세요

몇 년 전부터 나의 소원은 항상 '행복하게 해 주세요'뿐이었다. 생일 촛불을 끄기 전 소원을 빌 때도, 보름달이 뜨는 그 어두운 밤하늘 밑에서도 나의 소원은 항상 행복이었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지만 누군가 내게 '가장 행복했던 적이 언제인가요?'물으면 자신 있게 답할 순간이 존재하지 않음에 스스로 울상을 지었다. 억지로 쥐어짜 낸 그 순간은 기껏해야 어릴 적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어느 먼 순간이어서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나의 소원을 듣던 한 지인이 내게 '그건 조금 슬픈 일이네'라고 말했다. 왜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으니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뜻이잖아'라는 말에 나는 먹고 있던 입을 멈추고 젓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으며 '듣고 보니 그렇네요'라고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내게 행복은 무엇일까.


얼마 전은 다른 지인과 소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소원을 말해주었다. 주변 사람들이 건강하고 돈걱정 없이 살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 했다. 이어 내 소원을 말하니 정말 행복했던 순간이 단 한 번도 없었냐고 기억 속의 저 끝까지 캐물었다. 그렇게 조각조각 저 밑바닥까지 타고 내려간다면 하나쯤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알게 되는 게 행복이라면 내가 소원으로 빌만큼의 행복은 아니지 않을까.


내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그때에 나는 잠시 그를 행복이라 불렀다. 애정 어린 말을 맘껏 해주는 그 사람, 내가 퇴근하고 올 때면 지하철 역에 마중 나와 기다리던 사람, 내가 숨을 쉬지 못할 만큼 끅끅 거리며 울 때에도 가만히 내 곁을 지켜주던 사람, 나는 그 사람을 행복이라 말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없다고 사라지는 것이 행복이라면 이것마저도 내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아니지 않을까.


우리 엄마는 내게 인생에서 좋은 일만 있다면 행복을 모르고 살 것이라고 말했다. 가끔은 시련과 슬픔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행복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진정한 행복을 알기 위해 이렇게나 아프고 슬픈 것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언제쯤이면 나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매일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그래도, 그래도 숨통이 트일 만큼, 인생 정말 살아볼 만 하구나 싶을 만큼 그런 행복은 언제쯤 느끼게 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행복을 빌어본다. 보름달이 아니더라도, 생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오늘도 행복을 빈다. 이제는 저만치 먼 곳이 아니라 한 발자국 앞에 있을 것이라 믿으며 살아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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