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즐거움, 그 사이의 모순
지난 10여 년간의 식음료 트렌드는 단순히 '무엇을 먹을까'를 넘어, 건강(기능성, 윤리)과 즐거움(쾌락, 사치)이라는 두 상반된 가치가 충돌하거나 결합하며 시장을 이끌어 왔습니다. 2010년대를 기점으로 시각적 즐거움, 기능성, 그리고 윤리라는 세 가지 핵심 가치 아래에서 음식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알아볼까요?
이 시기는 인스타그램의 도래와 함께 음식이 '경험'이자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면서, 극단적인 사치와 건강 추구가 동시에 유행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A. 건강 및 기능성
- 클린 리빙 및 다이어트 (2011)
1) 팔레오 다이어트 (Paleo Diet)가 로렌 코데인 (Loren Cordain) 박사 이론을 기반으로 유행하며 글루텐 프리, 무곡물 식단이 확산되었습니다. 팔레오 다이어트는 구석기시대에 사냥과 채집을 하던 조상들의 추정 식단을 기반으로 한 현대식 식단으로 살코기, 생선, 과일, 야채, 견과류, 씨앗과 같은 가공되지 않은 통곡물을 강조하는 다이어트 이론입니다. 곡물, 콩류, 유제품, 가공식품, 정제 설탕 및 소금과 같이 농업과 함께 등장한 식품군은 제외됩니다 (Cordain et al., 2000; Cordain et al., 2005).
2) 주싱 다이어트 (Juicing Diet)는 디톡스와 해독을 상징하는 트렌드가 되었으며 그린 주스와 주스 클렌즈가 대표적입니다.
이 트렌드들은 소비자들의 건강 의식과 함께 아몬드, 캐슈 우유 등 유제품 대체 식품의 수요를 증가시켰습니다.
B. 즐거움 및 사치 (2010)
1) 프리미엄 디저트 (Premiun Desserts)는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정교하교 세련된 마카롱과 같은 디저트가 인기를 얻으며 시각적 즐거움 (Visusal Appeal)과 작은 사치 (Small Luxury)를 추구하는 소비 심리가 폭발했습니다.
2) 분자 요리 (Molecular Gastronomy)는 파인 다이닝 분야에서 분자 요리 기술이 혁신적인 테크닉으로 각광받으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분자 요리는 재료의 맛과 향을 보존하면서 식품의 분자 구조를 변형시켜 완전히 다른 식감과 맛을 선사하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최현석 셰프가 분자요리를 활용한 연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얼마 전 Netflix 흑백요리사에서 유튜버 승우아빠가 액화 질소 냉각 법으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선보이기도 했죠.
보는 즐거움 (Visual Appeal)을 중시하는 SNS 문화의 확산과 더불어 기술적 혁신의 결합에서 나온 트렌드로 보입니다.
건강 트렌드가 고단백 저탄수화물로 심화되면서 본격적으로 탄수화물에 대한 인식이 변하게 됨에따라 식사 행동 양식의 변화도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또한, 인스타그램의 대중화로 시각적 매력이 결합한 예쁘고 건강한 음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A. 건강 및 기능성
- 실용적 식단 및 윤리적 관심의 등장
1) 아보카도 토스트 (2016)는 호주∙뉴질랜드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습니다. 건강하고 비건 친화적이며, 밀레니얼 세대의 작은 사치(Small Luxury)와 클린 리빙(Clean living) 운동이 겹치며 대중화되었습니다. 이 무렵 한국에서도 아보카도를 사용하는 브런치 메뉴들이 소개되며 차츰 익숙한 식재료로 인식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2) 아사이 볼 (Açai Bowl) (2016)은 브라질의 슈퍼푸드와 눈에 띄는 보랏빛 색감의 비주얼이 결합되어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3) 퓨전 캐주얼 패스트푸드 (Fusion Casual Fast foods) (2017)는 건강한 재료를 가성비 있게 선택하고, 개인 선호도에 맞추어 조합 (Customization)할 수 있으며 빠르고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어 포케 볼 (Poke bowl), 스시 브리또 (Sushi burrito)와 같은 퓨전 음식이 흥행하였습니다.
4) 식물성 고기 (Plant-based alternative meats) (2018)가 초기 부상했던 시기로 Beyond meat, Impossible food 등의 회사가 등장하며 채식주의자 (Vegetarian)를 넘어 고기 섭취량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플렉시테리언 (Flexitarian)에게도 어필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 인식이 높은 세대가 주도한 이 트렌드는 건강과 미용을 동시에 추구한다면 일시적 유행을 넘어 지속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B. 즐거움 및 사치
- 건강 포장과 노골적 쾌락의 공존
1) 프릭셰이크 (Freakshake) (2016)는 2015년 호주에서 시작되어 2016년 경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과도한 토핑과 크기가 특징이며 먹방 콘텐츠와 시너지를 내며 순수한 쾌락을 극대화했습니다.
2) 유니콘 푸드 (Unicon Foods) (2017)는 베이글, 토스트 등 다양한 식품에 극도로 밝고 비현실적인 무지개 색상을 입혀 사진용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우선시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의 좋아요를 위한 순수 비주얼 쾌락 추구로 볼 수 있겠습니다.
3) 스페셜티 커피 (Specialty coffee) (2017)를 통해 원두의 산지, 로스팅 등을 중요시하는 전문화된 커피 문화가 확산되었고 일상 속의 작은 사치로 자리 잡았습니다. 커피를 통해 개성을 표현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으며 우리나라에는 2019년 일본의 블루보틀(Blue bottle) 상륙으로 찰나의 붐이 일어났었습니다.
4) 경량 주류 (Hard Seltzer) (2018)는 북미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저당 & 저칼로리를 추구하는 음주 트렌드입니다. 이후 2-3년 뒤 생긴 한국의 제로 슈가 소주, 슈가 프리 하이볼 등의 유행은 이 트렌드의 후기 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푸드 트렌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했습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위로를 주는 음식 (Comfort Foods) 소비도 급증했으며, 음식의 기능, 환경적 영향, 그리고 윤리를 중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A. 건강 및 기능성
- 윤리적 소비 및 몸을 위한 기능성 심화
1) 클린 라벨 (Clean Label) (2020)은 식품을 최소한으로 가공하고, 인공 첨가물이나 방부제가 없는 제품을 찾는 클린 라벨 트렌드가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모든 식품 구매의 근본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비자들의 지속 가능성과 투명한 원산지∙성분에 대한 높은 관심에서 기인한 결과입니다.
2) 기능성 식품 (Functional Foods) (2020)은 고단백 저탄수 식단이 자리 잡으면서 더 각광받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프로틴 중심 식품이 시장에 출시되었으며 코티지치즈와 요거트, 김치와 같은 고단백 발효 음식이 장 건강 관심과 함께 인기를 얻었습니다. 한국의 저속 노화 식단도 이 트렌드와 더불어 가는 것 같습니다.
3) 바이오 해킹 (Biohacking) (2021)은 건강의 초점이 '빼는 것'에서 '좋은 것을 의도적으로 채워 넣는 것'으로 전환된 트렌드입니다. 기능성 버섯, 어댑토젠(Adoptogen) 등을 통한 라이프스타일 최적화를 추구하며 기능성 성분을 음식에 추가함으로써 인지 기능, 면역력 증강을 유도합니다.
B. 즐거움 및 사치
- 홈 컴포트 및 프리미엄 소비
1) 간편식의 대중화 (2020)는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증가하면서 식사는 간편화되고 홈베이킹, 홈카페 문화로 디저트는 수제화 추세가 되어 밀키트와 고급 HMR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자기 돌봄과 편안함 추구가 외식의 내식화를 가속화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2) 프리미엄 주류 (2021)는 팬데믹으로 홈텐딩 (Home X Bartending) 문화가 확산되면서 고급 위스키, 와인 (한국에서는 막걸리 등) 프리미엄 주류를 집에서 즐기는 작은 사치 트렌드가 성장했습니다.
3) K-Food 글로벌 확산 (2021)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Netflix의 성장과 더불어 K-콘텐츠의 인기에 힘입어 콘도그, 김치, 양념치킨, 삼겹살 등의 메뉴가 세계적으로 유행했습니다. 이는 문화 콘텐츠를 통한 음식의 노출화를 통해 세계화가 이루어진 케이스입니다.
4) 바이럴 디저트 및 웰니스 럭셔리 (2022)의 대표적인 격으로 말차, 프리미엄 쿠키 및 디저트 (Crumbl 스타일 쿠키, 크루키, 두바이 초콜릿, 터키 벽돌케이크 (Yulker)) 등 고가이면서도 극단적 비주얼을 가진 디저트가 유행했습니다. 또한, 에레혼 (Erewhon) 스무디처럼 주싱 다이어트와 바이오 해킹을 결합한 2만원짜리 프리미엄 럭셔리 디저트도 바이럴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의 트렌드는 '건강'과 '즐거움'이 각각 점진적으로 발전하면서도 양극화가 심화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미래에는 이 두가지 관점이 일부는 기술을 매개로 초개인화된 형태로 융합되겠지만, 동시에 인간의 본능적인 쾌락 욕구는 더욱 극단화되며 그 간극은 점점 멀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1. 초개인화된 기능성 (Hyper-functional)- 기술과의 결합: 소비자는 유전자 데이터, 마이크로바이옴 (장내 미생물)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AI가 추천하는 맞춤형 식단과 기능성 식품을 찾고 소비하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바이오 해킹은 보편적인 건강 트렌드에서 나만을 위한 영양 관리 시스템으로 진화하며 AI + 클린라벨과 결합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2. 미래 쾌락의 양면성 (Two sides of future pleasure)
- 지속 가능한 쾌락 (Guilt-free luxury) & 본능적 하이퍼 쾌락 (Hyper-palatable luxury): 윤리적∙사회적 만족감을 중시하는 SNS 주도 트렌드로 지속될 것입니다. Upcycling or Sustainable protein foods가 첨단 기술과 결합하여 죄책감 없이 즐기는 사치품으로 자리 잡는 동시에, 인간의 근본적인 맛 욕구 충족을 위한 초고도 가공식품 시장도 더욱 발전할 것으로 보입니다. 극도로 맛있는 초콜릿, 고당도∙고지방 가공식품 등이 중독적인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며 먹방 컨텐츠를 통한 노출과 더불어 굳건한 시장을 유지할 것입니다.
Reference
Cordain, L., Miller, J. B., Eaton, S. B., Mann, N., Holt, S. H., & Speth, J. D. (2000). Plant-animal subsistence ratios and macronutrient energy estimations in worldwide hunter-gatherer diets. The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 71(3), 682-692.
Cordain, L., Eaton, S. B., Sebastian, A., Mann, N., Lindeberg, S., Watkins, B. A., ... & Brand-Miller, J. (2005). Origins and evolution of the Western diet: health implications for the 21st century1, 2. The American journal of clinical nutrition, 81(2), 341-354.